칼럼

노년세대여 증세를 말하라

서의동 2013. 1. 24. 10:38

오이 시로(大井四郞·88)는 지난해 여름 집에서 열사병으로 쓰러진 이후 공공 노인시설에서 머물고 있다. 자녀가 없는 데다 아내가 6년 전 세상을 떠난 이후 급격히 쇠잔해져 집에 돌아갈 수도 없다. 그가 매달 받는 연금은 6만5000엔. 이 돈으로 지낼 수 있는 곳은 특별노인요양시설 뿐이지만 포화상태여서 3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런 탓에 넉달간 3군데의 단기 입소시설을 전전했다. 입주자들과 얼굴을 익힐만 하면 거처를 옮겨야 하는 신세다. 

 

최근 방영된 NHK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노인천국’ 쯤으로 여겨지던 일본에서도 노인문제가 방치하기 어려운 수준임을 일깨웠다. 일본은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자수가 3000만명을 넘어섰다. 유복한 노년을 즐기고 있는 65세 전후의 ‘단카이(團塊)세대’야 별 문제 없지만 75세 이상의 거동이 불편한 후기고령세대들 중에서 부양가족이 없는 빈곤층은 실로 심각하다. 갈곳을 잃은 노인들은 노숙자들을 수용하는 비영리단체(NPO)의 숙박시설에도 몰려든다. 

 

물론 일본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 정부는 간병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고령자 전용주택을 2020년까지 60만채를 목표로 건설하고 있다. 아파트에 간병요원이 상주해 입주자들의 수발을 들어준다. 기업들은 고령자용주택과 패밀리레스토랑을 결합한 복합아파트를 짓기 시작했다. 2층을 패밀리레스토랑, 3~5층을 고령자용 주택으로 하고 시설내에는 간병사무실을 설치하는 형태다. 민간차원의 움직임들도 눈에 띈다. 일본 수도권의 한 공동주택은 일반 고령자는 물론 일반 요양시설이 받아주지 않는 중증 치매환자까지 어울려 여생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다. 지금까지 13명이 이곳에서 임종을 맞이했다. 생이 얼마남지 않은 노인들이 시설을 전전하지 않고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안심하고 임종을 맞도록 하는 것이 이 공동주택의 목표다. 

 

사정이 심각해 보이지만 사실 일본은 노인복지에서 한국과 비교조차 어려운 수준으로 앞서 있다. 일본은 2000년부터 세계 세번째로 노인들이 요양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개호보험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2008년에는 75세 이상의 노인에게 별도의 의료보험을 적용하는 후기고령자의료보험도 도입했다. 거꾸로 말하면 NHK의 다큐멘터리는 일본 사회가 그래도 생겨나는 사각지대조차 그만큼 세밀한 관심을 쏟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인복지 문제는 막대한 재원부담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가 초점이다. 갈수록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어느 나라든 노인복지 문제는 ‘발등의 불’이다. 저출산·고령화가 초스피드로 진행되고 있는 한국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대통령 선거에서 65세 이상에게 주는 기초노령연금을 월 2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한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이 재원문제로 논란을 빚고 있다. 증세없이 연금을 올리기 위해 국민연금을 헐어 쓰자는 방안이 제기되면서 세대간 갈등으로 번질 조짐도 엿보인다.  

 

엇비슷한 시기에 집권한 보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집권 한달만에 부자증세 방안을 마련했다. 연소득 4000만엔에게 물리는 소득세를 40%에서 45%로 올리고, 상속세 최고세율도 50%에서 55%로 인상하기로 했다. 인상폭이 크지 않은 것도 있지만, 지난해 소비세(부가가치세) 증세 때와 달리 이번 증세에는 보수언론들조차 군소리를 내지 않았다. 기득권층의 지지를 받는 보수정권이기에 더 쉬웠던 것 같다는 인상과 박근혜 정부에게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겹쳤다. 박근혜에게 표를 준 노장년 세대는 이제 대가를 요구할 때가 됐다. 그들이 먼저 ‘증세’를 말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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