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일본 도쿄 시내 한 회의장. 한국의 언론노조격인 일본 매스컴문화정보노조회의(MIC) 주최로 열린 외국특파원 초청토론회에 미국 뉴욕타임스, 영국 인디펜던트 특파원들과 함께 패널로 참가했다. 일본의 황금연휴인 ‘골든위크’ 첫 날인 데도 140여명의 청중이 토론장을 빼곡하게 채웠다.
도쿄대 하야시 가오리(林香里)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회의 주제는 ‘외국특파원이 본 오늘의 일본’. ‘일본 언론들은 왜 국민이 알권리를 위해 노력하기보다 권력을 대변하는 보도로 일관하는가.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아베 신조 정권의 우경화에 대한 보도는 뭐가 문제였나. 일본 언론은 저널리즘의 본령에서 벗어난 것 아닌가’라는 문제의식에서 마련된 자리다.
일본의 최근 우경화 현상은 한국 언론들만의 우려는 아니었다. 인디펜던트의 데이비드 맥닐 특파원은 “아베 정권은 브레이크가 듣지 않는 우파정권으로, 아베 총리는 보수가 아니라 과격한 국가주의자”라고 일갈했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 통신원을 겸하고 있는 맥닐은 최근 ‘백투더퓨처(Back to the future)’ 제하로 과거회귀를 꾀하는 아베 정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를 실은 바 있다. 마틴 패클러 뉴욕타임스 도쿄지국장은 아베 정권을 용인하는 일본 사회 분위기에 주목했다. “아베와 자민당은 그리 바뀌지 않았는데, 예전과 달리 일본 사회에서 우경화에 대한 견제장치가 약해진 것이 문제입니다.” 10년 째 체재하면서 일본사정에 정통한 패클러는 일본의 기자클럽 체질이 권력에 대한 감시능력을 저하시킨다고 지적해 왔다.
나는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관련해 일본 언론보도의 문제점을 언급했다. “일본 신문들은 TPP에 대해 개별사안에 대해선 간혹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총론에서는 너나 없이 찬성이더군요. 언론들의 비판이 정부의 교섭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 데 말이죠. 일본 언론들이 미국이 관련된 사안을 ‘성역’으로 여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파원으로 부임하기 전에 가졌던 일본 언론에 대한 신뢰는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여지없이 무너졌다. ‘국민의 알권리가 우선인가, 체제붕괴를 막는 게 급선무인가’라는 갈림길에서 일본 언론들은 후자를 택했다. 흰 연기가 건물주변으로 번지던 1호기 폭발과 달리 시커먼 버섯구름이 수백m 상공으로 치솟았던 원전 3호기의 폭발장면을 공영방송인 NHK가 내보내지 않은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던 것 아닐까. 언론들의 석연치 않은 보도 태도 때문에 지금도 항간에서는 3호기는 ‘수소폭발’이 아닌 ‘핵폭발’이라는 의혹이 불식되지 않는다.방사능 오염 공포가 한창일 당시에도 신문들은 “당장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정부발표를 전하기 바빴다.
우치다 다쓰루(內田樹)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는 원전사고 보도를 ‘다이혼에이(大本營) 발표 받아쓰기’식 보도라고 비판한 바 있다. 태평양전쟁을 총지휘하던 일본 군부의 다이혼에이가 불리한 전황을 빼고 발표하던 것을 그대로 받아적던 전시 일본 언론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자리의 성격상 평소 생각해오던 일본 언론의 문제점을 마음껏 지적했지만 속은 그리 편치 않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언론들의 체질이 조금 바뀌긴 했어도 출입처에 의존하는 보도태도는 일본 언론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언론이 신뢰를 잃으면서 독자가 줄어들자 부족한 수입을 기업광고로 메우는 악순환 속에서 한국의 대기업 총수는 언론의 ‘성역’이 된지 오래다.
‘만약 후쿠시마 원전사고 같은 대참사가 한국에서 발생한다면 한국 언론은 얼마나 제대로 보도할 것인가.’ 토론회가 열린지 열흘이 넘었지만 이 물음은 아직도 머리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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