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해외연수 논문

서의동 2005. 8. 9. 18:09

고이즈미政權의 安保정책에 대한 日本언론의 반응연구

                        -朝日新聞과 讀賣新聞의 사설을 중심으로



Ⅰ. 들어가는 말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모색돼온 일본 안보정책의 변화는 미국의 부시행정부 및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부출범을 계기로 가속화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해 미일동맹의 강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신방위대강의 작성을 완료한데 이어 전쟁포기 조항을 담고 있는 평화헌법의 개정을 위한 작업을 가속화하는 등 안보정책 재구축을 향해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은 일본의 이런 행태에 우려를 감추지 않으면서도  부시행정부들어 강화되고 있는 일본의 국제적 위상, 일본과의 경제협력 등이 얽혀 있어 과거에 비해 대응태도가 약화돼 있는 상황이다.(주1)


특히 한국내에서는 일본의 안보정책 재구축 흐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한 판단기준도 마련돼 있지 않다. 일본의 우경화현상을 위험시하는 시각이 우선 지배적이지만 단순히 ‘군사대국화=우경화=동북아안보위협’ 의 도식으로 파악해야 할 것인지, 그럴 경우 한국의 안보전략이나 국익차원에서 어떠한 긍․부정적 효과가 발생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진지한 검토가 부족한 상황이다. 일본의 움직임을 관성적 혹은 감정적으로만 파악, 치밀한 대응방안도 없이 비난의 목소리만 높여도 되는 것인지 등을 냉정하게 판단해야 할 시점이라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고이즈미의 안보정책의 추진과정과 안보관련상황의 전개, 그리고 이에 대한 일본언론의 반응을 검토하기로 한다. 먼저 2004년에 작성된 신방위대강과 주일미군 재편움직임 등 안보정책의 흐름, 납치문제와 관련한 대북제재 움직임, 개헌논의 등을 개괄한 뒤 각각의 상황에서 언론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여왔는지를 주로 살펴볼 것이다.

언론분석이 중요한 것은 일본의 시민사회운동이 한국과는 달리 비정치적, 부문별 운동중심으로 치우치면서 정국의 흐름이나 여론을 선도하는 기능을 사실상 상실하고 있고 노동운동도 기업별 노조의 한계속에 안주, 보편적 정치운동과 결합하고 있는 여타 선진국과는 뚜렷이 구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인터넷을 통한 여론형성도 한국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 있어 신문 방송 등 기성매체외에 일본의 여론

을 파악할 수 있는 대안을 찾기가 어려운 사정도 있다.


본고에서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사히(朝日)신문과 요미우리(讀賣)신문의 사설이다. 두신문 모두 발행부수가 800만부를 넘는 대신문(주2)이면서 양자의 논조는 정반대를 달리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아사히 신문과 요미우리신문간의 ‘대결’은 1952년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주3)체결을 둘러싸고 아사히신문은 구소련 등 공산권을 포함한 전체 교전(交戰)국이 참여하는 전면강화를 주장한데 반해 요미우리는 단독강화를 주창한데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어  60년 안보조약 개정, 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참가여부, 80년대 후반 소비세 도입 등 정치외교, 경제, 사회 등 전분야에서 논전(論戰)을 지속해오고 있다.(주4) 아사히신문의 논조가 진보적이라고 하면 요미우리신문의 논조는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는 이밖에 마이니치(每日), 산케이(産經)신문,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 등을 합해 전국적으로 유통되는 5대 신문이 있으나 나머지 3개 신문은 발행부수나 영향력면에서 앞의 두 신문에 비해 떨어지고 있으며 제각기 논조의 차이가 있으나 일본 사회의 진보-보수흐름을 뚜렷하게 보여주는데는 적절치 않아 다루지 않는 것으로 한다.(주5)




Ⅱ-Ⅰ. 일본의 2004년 안보정책의 개괄



1.신방위계획 대강


(1)신방위대강의 주요내용


일본정부는 2004년 12월 10일, 1995년 개정했던 방위계획대강을 대체하는 신방위대강(이하 신대강)과 이에 기반해서 2005년부터 2009년 일본의 군비정책을 좌우할 차기중기방위력계획을 각료회의에서 의결했다. 신대강의 가장 큰 특징은 미일간의 군사적 협력을 미영동맹 수준으로 격상시키는 질적전환에 있다. 아울러 자위대의 해외활동을 본래임무로 격상시키는 한편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무기체계 증강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중국과 북한을 새로운 위협요인으로 명시했다는 점이다.





<표1> 일본 방위계획 내용의 변천과정

시기별

국제정세

방위력

76년 방위계획의 대강

-미소를 중심으로 한 동서대립구도

-일본 주변에는 미소의 세력균형과 미일 안보체제가 일본에 대한 침략방지에 중요한 역할

-기반적 방위력 구상을 바탕으로 한정적이고 소규모 침략에 대해 원칙적으로 자력대처함

-자력대처가 곤란한 경우 미국으로부터 지원받아 대처

95년 방위계획의 대강

-냉전의 종결에 따른 동서 군사대립 구도의 해체

-세계적 규모의 무력분쟁이 발발할 가능성은 낮고 대량살상무기, 미사일 등의 확산에 따른 새로운 위협이 증대함

-기반적 방위력 구상을 답습하고 스스로 ‘힘의 공백’을 만들지 않음

-일본 주변지역에서 일본의 평화와 안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미일 안전보장체제의 효과적 운용을 통해 적절히 대응

04년 방위계획의 대강

-대량살상무기,탄도미사일 확산의 진전. 국제테러조직의 활동 등 새로운 위협에 대한 대응은 국제사회의 당면과제

-북한은 지역안전보장의 중대한 불안정 요인

-중국은 군 현대화와 함께 양활동범위의 확대를 도모하고 있으므로 금후 주목할 필요가 있음.

-일본방위에 이어, 국제안보 환경의 개선을 새로운 목표로 추구함

-새로운 위협과 다양한 사태에 대비해 국제평화협력 활동에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참가

-일본 군사력의 다기능,탄력성,실효성을 추구함

출처: 배정호 ‘일본 신방위계획의 대강의 주요내용과 한반도 안보’(2004-12-20)


  신대강의 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신대강은 우선 대량살상무기 및 탄도미사일의 확산의 진전, 국제테러조직 등의 활동을 포함한 새로운 위협이나 평화와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사태에 대한 대응이 국제사회의 당면과제가 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종래의 억지방법으로는 국제테러조직에 대해 유효하게 기능하기 어려움을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신대강은 일본주변의 동북아 안보환경에 관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및 탄도미사일의 개발, 배치, 확산과 특수부대의 존재 등에 따른 지역안보의 불안정성, 중국의 핵, 미사일 전력과 해공군의 전력현대화의 추진, 해양활동범위의 확대 지향 등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신대강은 새로운 위협이나 다양한 사태에 대한 효과적인 대비를 위한 정부의 노력을 강조하는 한편 미일안전보장 체제를 한층 전략적으로 강화시켜 나갈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일본의 군사력이 다기능, 탄력성을 지향할 것을 역설하는 한편 탄도미사일에 대한 대응으로 미사일방어(MD)체제의 구축에 향후 방위력 정비의 역점을 둘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일본정부는 신방위계획 대강이 발표되던 날인 12월 10일 ‘무기수출 3원칙의 완화’에 관한 관방장관의 담화를 통해 미사일 방어의 구축 등 미국과 공동 개발하거나 생산하는 무기와 테러·해적 대책 지원을 위한 무기 수출 등은 ‘개별안건’으로 규정, 사안별로 판단토록 함으로써 장차 수출규제 완화폭을 넓힐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주6)



(2)신방위대강에 대한 평가


신대강은 일본이 군사혁신을 통해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군사대국으로서 국제적으로 공인받겠다는 의도를 명확히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아울러 테러 등 국제안보환경에 대해 주목하면서 자위대를 전수방위의 틀에서 빼내 국제활동을 본격화하겠다는 구상도 내비치고 있다.


신대강이 표명하고 있는 위협인식이나 방위정책방향은 미일동맹의 강화구상과 떼어놓고는 판단할 수 없다. 신대강이 중국과 북한을 새로운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미국 외교안보정책의 위협인식과 일치하고 있으며 아시아에서 대중국 포위전략을 추진중인 미국의 국익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중동에서 동아시아에 이르는 지역에 대해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이지역의 안정은 극히 중요하다”면서 이 지역의 안보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해나갈 것임을 제시한 것은 이 지역을 ‘불안정한 호(弧)’라고 부르면서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미국의 인식과 꼭 맞아 떨어진다.

이전까지 일본방위정책은 유엔중심주의, 즉 1차적으로 미일동맹에 의존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유엔을 중심으로 국제사회의 도움을 통해 국가의 안전을 도모해 왔으나 이번 방위계획의 대강에서는 ‘유엔이 유효하게 대처할 때까지’라는 단서를 삭제, 미일동맹 우선주의를 사실상 표명하고 있음도 주목된다.

 

특히 눈여겨 봐야할 점은 ‘무기수출 3원칙의 완화’이다. 이는 미사일 방어시스템의 생산에 장애가 되는 족쇄를 걷어내는 효과가 있다. 무기수출 3원칙은 공산권국가,유엔이 금지한 국가, 국제분쟁 당사국에 무기수출을 금지한 원칙으로 1967년 사토에이사쿠(佐藤榮作)내각당시 발표된, 전후 안보정책의 중요한 축이었다. 그러나 이 정책을 둘러싸고 그간 방위산업관련 업계와 방위청, 그리고 그들과 연결된 ‘방위족’의

원들의 완화, 재검토 압력이 계속돼 왔다.


물론 이번 3원칙의 완화는 미사일방어 관련기술에 국한된 것이라는 단서(주7)가 붙었지만 여타 무기의 수출완화는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일간 무기공동생산 및 판매가 가능해질 경우 일본형 군산복합체가 출현하면서 일본의 무기수출이 확대되는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2. 주일미군재편  


현재 논의되고 있는 주일미군 재편구상은 미국의 해외주둔미군 재배치계획(GRP : Global Posture Review)의 일환으로 이뤄지고 있다. 미국은 9.11이후 테러 등  새로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신군사전략의 구상과 함께 냉전시대의 해외주둔미군을 해외기동군으로 전환하려는 구상을 추진중이다.

이 구상에 따르면 해외주둔 미군기지를 대규모 병력전개의 근거지인 전력전개거점(PPH), 대규모병력이 장기주둔하는 상설기지인 주요작전기지(MOB), 소규모 상주간부와 상당수 교체근무 병력을 포함한 전방전개기지(FOS), 소규모 연락요원과 훈련장만 유지하고 상황에 따라 필요한 지원을 외부에서 확보하는 안보협력 대상지역(CSL) 등 4개 그룹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 구상에서 주일미군기지는 대규모 병력전개의 근거지로서 전력전개거점(PPH)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고 따라서 일본은 미군의 동아시아에서의 전력중추가 된다.(주8)

일본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주일미군 재편구상의 주요내용을 살펴보자. 우선 인도양까지 담당하는 제1군단을 보다 전선가까이에 두기 위해 제1군단 사령부를 워싱턴주에서 일본 가나가와현의 자마(座間)지역으로 옮기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전체를 총괄하는 중추기능의 강화를 위해 괌의 제13공군사령부와 도쿄(東京)도 요코타(橫田)의 제 5공군사령부를 통합, 사령부를 요코타에 두겠다는 것이다.


재편구상에서 볼 수 있듯이 주일미군의 재편은 일본의 전략적 위상제고와 미일동맹이 대서양의 미영동맹과 같은 수준으로 격상하게 됨을 의미한다. 미일동맹의 강화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아시아태평양에서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발판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지만 일본으로서도 이를 통해 얻는 이익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우선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역할증대를 꾀하고 정치대국 및 국제지도국으로 성장하는데 전략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자연스럽게 뒷받침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가 될 수 있으며 UN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 등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주9) 아울러 군사대국화에 대한 주변국가의 우려에 대해 ‘미일동맹체제의 강화’라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다는 점도 꼽힌다.


미국과 일본 양국은 이상과 같은 전략적 이해관계에 의해 미일동맹을 미영동맹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아래 ‘역할분담’ 또는 ‘책임분담’에서 ‘지도력 및 권한의 분담(Power-sharing)을 향해 전략적 상호의존관계를 한증 강화시켜 나가고 있다. 요컨대 미국에 대한 지지자로 행동해 왔던 일본이 본격적으로 미국과 함께 국제사회의 안정화세력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가 미일동맹의 재편구상에 담겨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Ⅱ-Ⅱ. 2004년 안보관련 상황의 전개



1. 대북관계

여기에서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와 관련한 일본 정치권의 대북제재 추진과정, 이라크 자위대 파병기간 연장, 일․중관계 및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문제 등 안보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2004년 한해 어떻게 전개돼 왔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납치문제와 관련한 대북제재 움직임에 대해서는 우선 지난해 특정선박 입항금지법과 개정외환법 등이 제정됐다. 5월 제정된 특정선박입항금지법은 평화와 안전유지를 위해 특별히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다른 절차없이 각료회의의 의결만으로도 특정국 선박의 입항을 금지할 수 있다는 내용이며 앞서 2월 제정된 개정외환법은 조총련 등에 의한 대북송금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북일 관계는 고이즈미 총리의 지난 5월22일 2차 평양방문때 납북 일본인 하쓰이케 카오루(蓮池薰), 지무라 야스시(地村保)씨 가족 5인의 귀국, 이어 소가 히토미(曾我ひとみ)씨의 남편 젠킨스씨와 두 딸의 귀국(7월18일) 등으로 한때 관계개선 조짐을 보이기도 했으나 같은해 11월 북한이 피랍자 요코타 메구미(橫田めぐみ)의 것이라며 일본측에 전달한 유골이 일본 데이쿄오(帝京)의대의 DNA감식결과 다른 사람의 것으로 판명되고 이에 여론이 들끓기 시작하면서 또다시 대북 제재 목소리가 힘을 얻어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자민당과 민주당 양대 정당이 북한인권법을 추진하고 나섰다. 민주당의 납치문제 대책본부는 작년 11월25일 총회에서 북한인권법안 제출방침을 결정, 당대회의 승인을 얻었다.

민주당 납치문제 대책본부가 발표한 법안의 골자는 일본정부의 책무로서 ①납치문제의 해결 ②재외공관으로 피난한 탈북자의 보호 ③탈북자를 지원하는 NGO에 대한 자금지원 등이 포함돼 있다. 고이즈미의 대북 대화노선에 병행해 신중한 입장을 취해오던 자민당도 지난 12월24일 북한인권법 제정에 대한 검토에 착수했음을 발표했다.

정치권내 ‘납치의원연맹’은 대북경제제재를 실시했을 경우 상정한 시뮬레이션과 현장방문 등을 통해 그 효과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에 들어갔으며 이러한 행보를 통해 정치권과 내각을 압박하고 있다. 특히 아베신조 자민당간사장대리 등 일부 강경파

의원들은 매스컴을 통해 ‘북한체제 전복(regime change)’까지 거론하는 등 선동적인 언동을 일삼으며 가짜 유골파문으로 격앙된 여론에 편승하고 있다. 반대로 대북제재 신중론을 펼쳐왔던 고이즈미 총리의 지지율은 하락세를 보였다.(주10)



2. 자위대 파병


당초 1년 기한이던 일본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을 둘러싸고 민주당은 물론 자민당내에서도 반발하는 움직임(주11)이 있었지만 고이즈미 총리가 12월 9일 이라크 파병기한 연장을 발표함으로써 일단락됐다. 파병연장 문제와 관련한 논란의 핵심은 자위대가 활동하고 있는 지역의 불안정성 여부, 자위대활동지역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네덜란드군이 철수하기로 한데 따른 자위대의 안전보장 문제 등이었다.

고이즈미 내각의 결정은 재선에 성공한 부시 미국대통령에 대한 선물의 성격이라는 분석있었다. 또 자위대의 해외역할 확대와 미일동맹 강화라는 일본 안보정책의 기본틀을 감안할 때 자위대 파병기한 연장에 대한 자민당 일부의 반발은 여론을 의식한 ‘짜고치기’였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3. 중일관계


‘정냉경열(政冷經熱)’이라는 조어가 상징하듯 중일간 외교관계는 좀처럼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양국정상이 각국을 방문해 갖는 정상회담이 지난 3년간 한차례도 열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일관계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나타내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1월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APEC총회에서 후진타오(胡金濤) 중국국가주석과 고이즈미 일본총리가 몇시간의 짧은 회담을 가졌으나 이 자리에서 후주석이 고이즈미 총리에게 야스쿠니 신사참배의 중단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나섰다. 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참배가 전쟁을 다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지기 위한 의식일 뿐이라고 둘러댔지만 싸늘한 분위기는 회복되지 않았다.

이밖에 2004년 중일관계는 여러 가지 사건이 겹쳐 좀처럼 회복의 기미를 찾기 힘들었다. APEC회담이 있기 직전인 11월10일 중국의 원자력 잠수함이 오키나와 부근 일본영해를 침범한 사건이 대표적이며 앞서 3월에는 중국인 활동가 7명이 댜오위다오(釣魚島)(주12)에 상륙한 사건 등이 있었다.

한편 고이즈미 총리는 올해초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생략했는데 이는 지난해 후진타오 주석의 참배중지 요구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4. 헌법개정 문제

2003년 11월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의 개헌과 민주당의 창헌(創憲), 공명당의 가헌(加憲), 사민당의 호헌 등이 맡붙으며 본격적인 흐름을 타게 된 개헌작업은 자민당이 당내 헌법조사회가 작성한 보고서를 토대로 지난해 11월17일 ‘자위군’의 설치와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 및 국제공헌활동에서의 무력사용 용인 등을 담은 일본헌법 개정안 초안을 발표하면서 본궤도에 진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개헌안에 상원격인 참의원을 무력화시키는 내용이 포함돼 있고 육상자위대 간부가 초안의 일부를 작성해 헌법개정 초안 기초위원장인 나카타니 겐(中谷元) 전 방위청 장관에게 전달한 사실이 폭로되는 등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또 연립여당인 공명당이 헌법전문에 ‘애국심 함양’이라는 문구를 삽입하자는 자민당의 주장에 반발하고 있는 등 여권내부에서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표2> 자민당 개헌안 초안의 요지

 

현행헌법

개헌초안

의미

군대

불인정

자위대를 ‘자위군’으로 인정

군대보유, 명실상부한 군사대국으로 부상

자위대 해외파견

규정없어 파견시 특별법 제정

자위군의 국제협조 활동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

자위군이 해외 무력행사 활동에 손쉽게 참가할 수 있는 근거마련

자위대 교전권

교전권 금지

교전권 금지조항을 폐지

현재는 방어 등 극히 제한적으로만 교전이 허용되지만 앞으로는 무제한 허용

집단적 자위권

헌법규정에는 없으나 해석상 금지

명시하지 않았으나 해석으로 허용키로

동맹국이 무력분쟁에 휘말릴 경우 일본이 지원할 수 있는 근거마련

정치,종교 분리

국가 및 공공기관의 모든 종교활동과 종교기관에의 공금지출 금지

‘사회적 의례범위내’에서 허용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둘러싼 논란해소 의도로 분석

헌법개정 발의

중,참의원에서 각각 3분의 2이상이 찬성

각각 2분의 1 찬성

헌법개정 절차 완화  

 

출처: 중앙일보(2005-8-3)


자민당은 창당 50주년인 올해 11월까지, 민주당은 연내 초안 골자를 마련한 후 2006년까지 초안을 마무리 한다는 계획이다.(주13) 공명당도 프라이버시권과 환경권 등을 명시한 개헌안 초안을 마련중이다. 비교적 중도적인 입장에 속하는 마이니치(每日)신문이 지난해 4월에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개헌에 찬성하는 의원은 전체의 78%, 일반 국민도 59%가 ‘개헌을 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고위관료들이 일본 평화헌법이 미일 관계의 저해요인이라는 견해를 잇따라 밝히고 나선 점은 미일동맹 관계의 강화 움직임과 맞물려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콜린 파월 전 미 국무장관은 지난해 9월 “일본이 ‘전수방위’ 원칙을 명시한 헌법을 개정하지 않고 상임이사국에 진출할 경우 군사적 동맹강화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주14)


헌법개정 움직임과 관련해 일본 경제계의 동향도 주목을 끌고 있다. 일본 최대 경제단체인 게이단렌(經團聯)은 2005년 1월 18일 ‘전력’(戰力)보유와 해외에서의 군사력 행사를 의미하는 ‘집단자위권’의 허용을 골자로 한 ‘개헌요구 보고서’를 18일 공식 발표했으며, 앞서 경제동우회와 일본상공회의소도 개헌에 관한 의견서를 마련하는 등 재계들이 개헌요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주15)경제계의 이런 움직임은 방위비가 장기적으로 감축기조에 들어감에 따라 매출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군수산업의 숨통을 틔워주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주16)





Ⅲ.일본 언론들의 반응



여기에서는 2004년 3월부터 2005년 2월 사이의 아사히(朝日)신문과 요미우리(讀賣)신문의 사설을 비교 검토하면서 일본국내 여론이 각각의 안보현안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왔는지를 짚어보기로 한다. 들어가는 말에서 소개했듯이 아사히는 진보적 색채를 보이고 있고 요미우리는 보수적인 논조를 전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두 신문을 비교하면서 일본 보수우익과 상대적 진보세력들이 각각의 안보현안에 대해 어떤 판단기준과 설득논리를 갖고 있는지를 관찰할 예정이다. 개헌에 대한 입장, 국가전략, 대북태도, 안보문제에 대한 입장 등으로 나눠 살펴본다.



1.개헌문제

요미우리는 헌법 9조를 포함한 헌법개정을 전면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반면 아사히는 개헌에 대한 분명한 입장표명은 유보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요미우리는 특히 ‘전후 민주주의’의 총체적 극복을 위한 수단으로 개헌이 필요하다는 논지를 전개하고 있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1)요미우리

요미우리는 2005년 1월1일자 ‘탈전후(脫戰後) 국가전략을 구축하라’라는 장문의 사설을 통해 개헌문제를 비롯, 쟁점현안에 대한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이 사설에서 눈길을 끄는 단어는 단언 ‘전후(戰後)민주주의의 잔재’라는 표현이다. 다소 길지만 인용해 본다.


“세계는 지금 새로운 역사적 격동기에 들어서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국가적 대응을 그르친다면 일본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중략) 그러나 우리가 신속,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지 어쩐지에 대해서는 우려도 있다. 현재의 일본에는 지금까지 ‘전후’사고를 벗어버릴 수 없는 ‘수구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수구’적 사고에는 글자 그대로 ‘전후’ 수십년간 연합국 총사령부(GHQ)의 대대적인 검열, 언론통제, 매스컴 조작에 의해 배양된 ‘전후 민주주의’의 잔재가 있다.”


한마디로 ‘전후 민주주의’적 사고에 빠져 있는 ‘수구세력’들 때문에 세계적인 격동기를 제대로 헤쳐 나가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의미다. 2차대전 패전후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들어온 ‘민주주의’는 일본국민의 자발적인 수용이라기 보다는 언론통제와 여론조작의 과정을 거쳐서 강제로 주입된 것이라는 논리다. 패전에 의해 군국주의 체제가 붕괴된 자리에 들어선 ‘전후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이 ‘전후 민주주의’의 현실태(現實態)는 평화헌법을 가리킨다.


“GHQ가 작성한 헌법전문은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국민’을 신뢰만 하면 나라의 안전은 보장된다는 취지로 돼 있다. 여기에 ‘전력포기’의 9조 2항이 겹쳐, 세계의 실상과는 관계없이 일국(一國) 평화주의가 관철될 수 있을 것 같은 전후(戰後)의 환상을 만들어냈다.”


즉 평화헌법에 안주하면서 일본국민들의 안보의식이 희미해졌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전후 민주주의의 잔재’에는 ‘안보의식의 부재’도 포함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요미우리는 사흘뒤인 1월 4일자에 ‘전후를 넘어서-신헌법으로 큰 걸음을 내딛을 때다. 국가 목표를 정하라’ 라는 사설에서도 흥미있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우선  전후 60년인 2005년을 맞아 냉전구조와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주축으로 한 ‘전후 민주주의’ 시대가 가고 있다면서 새로운 시대에 맞는 국가상을 정립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헌법제정때는 상상도 못했던 역사적 변화를 헤쳐나갈 지침이 될 새로운 국가상을 그려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헌법개정은 ‘전후(戰後)’의 사고를 넘어 21세기 일본의 확실한 기반을 구축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이는 ‘새술은 새부대에 담으라’는 논리인데, 요미우리는 자체 여론조사에서 ‘개헌이 필요하다’는 응답자가 65%에 이르고 있음을 들어 ‘현행헌법의 이념과 규정이 현실과 크게 괴리돼 이제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인식이 국민들사이에 넓게 정착되고 있다’ 며 개헌요구의 근거를 여론에서 찾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개헌의 이유로 내세운 ‘공공성’이라는 담론이다.


“공정, 정의라는 관념이 희미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사회나 공동체의 유대가 상실되고 사회존립의 기초가 흔들린다는 불안도 확대되고 있다. 사회의 기초단위인 가족의 붕괴도 그 한 예다. (중략) 나라, 지역, 기업, 학교, 가족 등 다양한 공동체의 유대를 어떻게 재구축할 것인가. 헌법개정은 그 답을 찾아내는 작업이기도 하다.(중략) 현행 헌법은 (의무보다는) 권리에 편중하고 있다.”


매우 흥미로운 논리전개다. 전후 평화헌법하에서 살아온 일본 국민들이 ‘개인’의 존중에 치우쳐 국가와 사회 등 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방기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가족의 붕괴, 아동 및 고령자에 대한 학대 등의 사회병리 현상이 만연한다는 것이다. 은연중에 현행헌법의 ‘개인’ 및 ‘권리’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공동체와 개인의 사회적 책무를 훼손시키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2차 대전 패전후 미군정은 일본사회에 흐르고 있는 공공성을 해체하기 위해 ‘개인’을 강조하는 헌법을 강요했고 이런 사회가 60년 가량 지속되면서 일본 사회는 공동체의 미덕을 잃어버린 사회가 됐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두 사설의 논지를 종합해보면 패전후 미군정에 의해 제정된 평화헌법하에서 일본사회는 안보의식과 공공성이 마비돼 가고 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매우 위험한 논리전개가 아닐 수 없다. 우선 2차대전 패전이전의 일본국가와  사회가 노정한 문제에 대한 반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반성 또는 사실에 대한 최소한의 진술을 생략하는 일방적인 논리전개 방식을 채택, 독자들로 하여금 ‘전후 민주주의’라는 용어에 부정적 뉘앙스를 갖게 하고, ‘전전’ 즉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군국주의 시대를 미화하는 오류에 빠지도록 할 개연성을 안고 있다.


2005년 1월21일 사설에선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전 총리가 신헌법 시안을 공표하고 게이단렌 등의 헌법개정 의견 등을 제시하고 있음을 계기로 헌법개정의 논의를 가속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새로울 것 없지만 여기서 헌법 9조를 고쳐 자위대를 ‘자위군’으로 해야할 것과 총리권한 강화 등을 제시하고 있다.



(2)아사히


조사대상 기간중 아사히가 사설을 통해 헌법개정 문제에 대한 자신의 논리를 앞서의 요미우리 신문의 경우처럼 정면으로 피력한 적은 없었다. 따라서 아사히가 개헌자체에는 동감하고 있는지 여부는 명확하게 식별하기 어렵다. 다만 아사히는 개헌을 추진하는 주체인 자민당 지도부의 태도, 게이단렌(經團聯) 등 경제단체의 헌법개정 논의(주17)에 대한 비판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개헌론에 제동을 걸고 있다. 아사히의 이같은 태도는 일본내 진보세력들이 호헌론을 고수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다소 뜻밖이다. 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개헌론에 공감하는 여론이 다수를 차지해 가고 있는(주18) 일본사회 현실을 아사히로서도 도외시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아사히는 2005년 1월19일 사설 ‘개헌을 말하려면 진지하게’에서 자민당의 개헌추진과정에서 불거진 문제점을 조목조목 열거하면서 개헌논의가 진지함을 결여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작년이후 자민당의 진지성을 의심하고 싶어하는 사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은 무슨 영문일까. 당헌법조사회는 작년 11월 ‘개헌초안대강’을 종합했다.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와 여성천황의 용인까지 담은 내용이었다. 그러나 공표여부를 둘러싸고 당내의 비판이 분출했다. 참의원의 ‘각료겸직 금지’와 ‘일부의원들을 유식자들의 추천으로 선출’ 등으로 한데 대해 참의원측이 반발했다. 당내 논의마저 불충분한 상태로 설익은 내용을 공표한 졸속함에는 질렸다. 시안을 논의도 거의 하지 않은 채 비판이 일자 철회해 버린 점도 이해하기 어렵다. 또 개정안기초위원장인 나카타니 겐(中谷元) 전 방위청 장관의 믿기 어려운 행동도 발각됐다. 육상자위대 현역간부에게 방위정책에 관한 부분의 기초안을 작성토록 한 것이다.(주19) 문민통제와 공무원의 헌법 존중의무를 생각하면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아사히는 또 연립여당인 공명당과의 의견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는 한편, 고이즈미 정권의 정책우선 순위가 개헌이 아니라 ‘민생’문제에 있음을 환기시키고 있다.


“공명당의 가미자키 다케노리(神崎武法)대표는 개헌에 대해 ‘솔직히 말해 우리들(공명당)과의 사이에는 (개헌에 대한) 의견차가 있다’며 자민당과의 거리감을 입에 올렸다. 작년 가을 본지의 여론조사에서 고이즈미 정권이 가장 힘을 쏟기 바라는 정책은 ‘연금․복지문제’와 ‘경기․고용’으로 80%를 차지했고 개헌은 5%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집권당으로서 헌법논의를 가속화시키려 한다면 적어도 진지함만은 가져줬으면 한다.”


아사히는 또 바로 다음날인 2005년 1월 20일자 ‘경제인들의 육성은 어디에’ 사설에서 게이단렌이 작성한 개헌요구 보고서를 ‘자민당 개헌파 의견의 재판(再版)’이라고 비판했다.


“헌법 9조와 안전보장 정책이라는 국가 방침에 관한 대문제에 대해 경제인이 다양한 의견을 공표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제언이 종합되기까지의 경위를 보면 세계와 일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앞서 우선은 자민당에 대한 배려가 눈에 띄는 인상을 씻을 수 없다. (중략) 이번의 제언에서도 정치에의 발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민당과 보조를 맞추는 것이 득책이라는 계산이 있었던 것 아닌가.”


2. 국가전략

양 신문 공히 2005년 1월1일자 사설을 통해 새로운 국가전략의 구축에 나설 것을 제언하고 있다. 이 신년사설은 2005년이 일본에 있어 전후 60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라는 점에서 두 신문 모두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엿보이고 그만큼 미래의 일본국가 전략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충분히 피력한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이 장에서는 두 신년사설을 비교하는 선에서 정리하고자 한다.

(1)요미우리


요미우리는 ‘전후’를 극복할 수 있는 국가전략의 구축을 서두를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전후민주주의’가 남긴 부(負)의 유산을 청산할 것을 주장한다. 부의 유산은 정치, 경제, 사회전반에 걸쳐져 있으며 여기서는 일국(一國)평화주의에 대한 환상, 공공성을 외면하는 개인주의의 만연, 전통에 대한 경시, 평등주의 사고, 경제규모 축소의 위기, 권리 편중 의식 등이 열거되고 있다.


“미국은 현재 세계적인 규모로 미군재편에 착수하고 있다. (중략) 그 일환으로 아태지역에서 즉각 전개능력을 확충하려 하고 있다. 이 움직임은 일본의 장기적인 국가안전보장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미일 협력, 상호보완관계를 전망하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여러 가지 경우를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 ‘행사’는 헌법을 개정할 것까지 없고 총리의 결단에 의한 헌법해석의 변경에 따라 즉시 가능한 문제다. 총리 및 정치전체가 ‘전후민주주의’적인 군사알레르기 감각과 선을 그을 때다.”


미일동맹 강화에 따른 자위대의 능동적인 운용을 강조하면서 이를 위해서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의 전환, 즉 군사 알레르기 감각을 버리고 필요할 경우 군사적 대응에 나설 수 있는 발상이 요구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수방위(專守防衛)’적 사고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기본법 제정의 과정에서 최대의 초점은 ‘애국심’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있다. 애국심이 옳은가 그른가 등이 논란이 되는 나라가 전 세계에 어디 있는가. 이런 기현상이 생긴 것은 ‘애국심’을 들으면 반사적으로 ‘협애하다’는 형용구를 씌우고 싶어하고 ‘전전(戰前)회귀’ ‘군국주의 부활’ 등이라고 떠들어대는 ‘수구적 사고’가 지금도 일정의 세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기본법의 제정과정에서 GHQ는 일본측이 주장한 ‘전통을 존중해서’라는 부분을 삭제하고 ‘개(個)’의 존중에 역점을 두는 기조를 보였다. 전통의 부정=애국심의 부정은 공공의식의 희박화를 초래하고 지금은 교육의 난맥을 초래하고 있다.”


일본사회의 현안중 하나인 ‘애국심’(주20)의 문제에 관해 요미우리는 교육기본법에 ‘애국심’의 문구삽입은 당연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애국심과 전통을 등치시키는 논리전개를 통해 이에 반대하는 세력을 전후 잔재적 수구세력으로 몰고 있다. 이밖에 이 사설에서는 교육에 대한 평등주의적 사고도 전후체제가 낳은 부의 유산으로 규정하고 있다. ‘지금 일본은 국가의 백년대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전후의 사고양식을 불식하고 내외에 걸쳐 국가, 국민의 활력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대응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된다’고 사설은 끝맺고 있다. 사설은 헌법개정을 직접 거론하고 있지 않지만 이런 부의 유산을 해결하기 위한 첫단추가 ‘헌법개정’이라는 점을 은연중 나타내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2)아사히


아사히는 ‘아시아에서 꿈을 추구하라’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새로운 시대 일본의 국가전략을 ‘아시아 공동체 구축’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아시아공동체를’이라는 목소리가 교차하고 있다. (중략) 2005년을 ‘동아시아 공동체 원년’으로 부르는 목소리조차 들려온다. 1세기전 명치의 한 사상가가 ‘서구의 영광은 아시아의 굴욕’ ‘아시아는 하나’라고 제창한 것처럼 과거에는 아시아주의라는 흐름이 있었다. (중략) 그것이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이름의 일본의 야망으로 모습을 바꾼 것은 아시아의 비극이다. 전후 60년에 아시아제국에서 일컬어졌던 새로운 공동체는 진실로 공영을 추구하는 것으로 정면에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직접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근대이후 줄곧, ‘탈아입구(脫亞入歐)’의 길을 걸어온 국가전략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대전제가 사설의 바탕에 깔려 있다. 일본국내와 동양권에서 아시아주의의 흐름이 있었음을 언급하면서 이를 되살려 나가자는 것이다. 전후에도 미일동맹 편향의 외교정책의 틀을 수정, 근린국가와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으로 임할 필요성을 주창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좀처럼 개선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중일, 북일관계 등을 발전시켜야 할 필요성을 재촉하고 있다.


“북조선의 이상한 태도는 변함없고 조일관계 타개를 추구하는 움직임은 핵과 납치문제로 역류하고 있다. 중국과 대만의 관계는 긴장을 품고 있고 중일사이에도 두터운 구름이 끼어 있다. (중략) 그러나 동아시아의 앞으로의 전망이 불안하기 때문에라도 할 수 있는 것부터 함께 추진하는 의미가 있다. 반미로 가자는 것은 아니다. 일본이 아시아에서 확실한 기반을 만드는 것은 건전한 미일관계에 있어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사설은 이런 구상이 결코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니며 희망의 단초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한 뒤 경제, 환경분야에서부터 관계개선의 단초를 찾아나갈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일본인의 의식을 바꾼 한류붐, 만화와 아니메, 팝 등 아시아에 퍼지고 있는 일본발신의 새로운 문화, 끊기 어려운 중일간 경제관계. 이들은 밝은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중략) 천연가스 등의 해저자원을 공동개발, 관리하는 체제를 만들고 내일의 평화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일본에 있어 결코 남의 일이 아닌 중국의 심각한 환경오염도 함께 대처하면 좋을 것이다.”


고이즈미 정권들어 미일동맹 관계가 더욱 강화되는 현실속에서 아사히의 주장은 일본 사회에서 현실성을 결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가능성도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사설 제목을 ‘꿈을 추구하라’라고 붙인 것 아니냐는 추측도 해볼 수 있다. 그러나  보수화가 진전되고 있는 일본사회의 한쪽에서 이런 목소리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이 사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3. 안전보장


여기서는 2004년 12월 발표된 신방위대강, 자위대의 이라크 파견, 무기수출 완화 등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현안자체가 많았고 양 사설의 대립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분야이기도 하다.

(1)요미우리 


①신방위대강

요미우리는 2004년 12월 11일자 사설에서 신방위대강의 내용을 대체로 환영하면서 자위대의 역할확대, 미일동맹의 강화 등이 왜 필요한가를 비교적 길게 논증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없이 무역입국인 일본의 평화와 번영은 없다. (중략)국제적인 안전보장 환경의 개선은 일본이 주체적으로 행해야할 과제다. 대강이 국제평화활동을 국토방위와 함께 자위대의 본래임무로 위치지은 것은 시대의 요청이기도 하다. 안보환경의 변화에 동반해 미일동맹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는 일본에게  극히 중요한 과제다.” 

요미우리는 한발 더 나아가 이번 신방위대강에서 미흡한 점을 언급하고 있다. 무기수출 3원칙이 공명당의 반대로 미사일 부품에 한정된 것과 지대지미사일 연구개발이 보류된 점 등에 불만을 표시하고 방위청의 ‘성(省)’승격 등도 거론하고 있다.


②자위대 이라크 파견시한 연장

자위대 파견을 1년간 연장키로 한 고이즈미 내각의 결정에 대해 요미우리는 12월 10일자 ‘일본의 책무는 끝나지 않았다’는 사설을 싣고 있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일본도 계속해서 응분의 책무를 완수해야 한다”면서 이번 결정을 환영하고 있지만 파견연장 반대여론이 높은 분위기를 감안, 상황악화가 초래될 경우 철수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정부가 탄력있게 대응해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③무기수출 완화 3원칙

12월 10일자 사설에서 간단히 다뤘지만 사실은 앞서 12월 3일자 ‘무기수출 완화 미사일방어만으로 충분한가’ 사설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정부안이 ‘무기수출 완화범위를 대폭 늘려 다국간 무기공동개발, 생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부품 등의 수출을 완화하는 원안을 제시했음’에도 공명당의 주장으로 미사일 방어(MD)부품에 한해 수출완화가 결정된 것을 여러 논거를 통해 비판하고 있다. 사설은 “세계적인 군사기술수준을 유지할 수 없으면 자위대의 능력이 저하되고 미일동맹에 기반한 공동작전이 원활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고 “‘국가분쟁을 조장하는 무기수출은 안된다’는 3원칙의 기본이념을 견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안전보장환경의 변화화 군사기술의 진전에 맞춰 무기수출 정책도 끊임없이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2)아사히


①신방위대강

아사히는 2004년 12월 11일자 ‘이 선택이 좋은 것인가’ 사설에서 신방위대강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아사히는 대강의 성격을 “고이즈미 수상이 말한 ‘세계속의 미일동맹’에 일본의 방위정책을 짜맞추려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대강은 “대량파괴무기의 확산과 국제테러 등의 새로운 위협에 지구적 규모로 대처하려는 미군에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라는데 중심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규정뒤에 따르는 비판은 미국편중의 방위정책에 대한 것이다.


“일본의 방위정책은 신대강이 제시한 방향 그대로 나아가도 되는 것일까. 미국과 동맹관계라고 해도 위협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구체적 대응까지 미국의 군사전략을 그대로 받아들여 협력하는 것이 반드시 일본의 이익이 되지 않는다. 지금 미국과 세계의 현실은 미일동맹을 강화하면 모든 것이 잘 될 정도로 단순하지 않다.”


이 주장의 근거로 이라크 전쟁을 둘러싼 미국과 나머지 국가와의 균열, 미국과 유엔간의 대립 등이 현실화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런 가운데 “자위대의 해외전개를 확대하는 일본을 향한 아시아국가들의 미묘한 시선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일침을 가하고 있다. 한마디로 미국만 추종해 나가는 방위정책의 흐름이 결코 최선의 선택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짚은 것이다. 그러나 사설의 전체적인 톤은 그리 강하지 않다. 미일동맹 강화를 시대적 대세로 받아들이는 일반 여론의 흐름을 의식한 것 아닌가 생각되는 지점이다.


②자위대 이라크 파견시한 연장

2004년 12월 10일 ‘큰 불안을 남긴 채로’라는 사설에서 이라크 파병시한 연장을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나섰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6할 이상이 연장에 반대”하는 가운데 고이즈미 총리의 결정에서 “씻기지 않는 불안”을 느낀다고 밝히고 있다. 사설이 제시한 불안은 “대미관계를 위해 파견연장까지 강행한 총리가 불의의 사태가 일어났다고 해서 자위대를 철수시킬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결국 미일동맹을 위해서는 자국국민의 안전까지도 희생할 수 있다는 발상을 준엄하게 꾸짖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주둔명분이 점차 약화되고 있고 파견된 자위대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역할이 극히 제한돼 있는 점 등도 거론했다. 사설은 “일단 발을 빼는 용기와 현명함을 정치가 지니지 못했던 점이 유감이다”이라고 맺고 있다. 그 용기는 당연히 미국을 향한 것이다..


③무기수출 3원칙

아사히는 무기수출 완화방침이 확정되기 20일전인 2004년 11월 20일자 사설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 정부의 완화범위가 미사일방어 시스템뿐 아니라 미국간 또는 미국을 중심으로 다른 나라도 가세하는 무기 공동 개발 및 생산도 예외로 하고 있고, 테러대책이나 동남아시아 해적대책에 필요한 무기 수출은 인정하는 등 지나치게 광범위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무기수출 3원칙을 견지하는 것은 외교의 장에서 일본에게 강한 무기로 돼 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유엔 소형무기회의 의장인 이노구치(猪口邦子)가 “의장에 취임하게 된 것은 무기를 수출하지 않는 일본이 인도와 함께 군축의 기수로 평가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점을 언급하면서 왜 이런 귀중한 외교무기를 함부로 버리려 하는가 힐문하고 있다.

또 전세계적으로 무기의 공동개발 붐이 일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그 대열에 들어가는 것으로 얻어질 이익이 어느 정도인가. 일본은 타국에 무기를 팔지 않고 타국의 무기개발에도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스스로의 안전을 높인다고 생각해 왔다”고 반문하고 있다.

사설은 그러면서도 “북한의 핵, 미사일의 위협이 있는 이상 미국과 미사일을 공동개발하는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필요하다면 그 부품에 한해 3원칙을 완화하는 것도 지혜로운 방법”이라며 원칙의 완화범위를 제한할 것을 주문했다. 이런 주장에 공명당이 부응하면서 결국 12월 10일 발표된 무기수출 완화 3원칙은 미사일 부품에 한정됐다.


4. 대중․대북관계


고이즈미 총리의 2002년 방북에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및 사망 사실이 확인되면서 일본 신문들의 대북태도는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강경한 상태다. 그러나 다소간의 차이는 엿보인다. 고이즈미 내각의 대북정책 기조인 ‘대화와 압력’중 아사히는 대화기조에, 요미우리는 제재수단의 발동에 무게가 실려 있다. 대중관계에서는 중일갈등의 쟁점이 되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를 놓고 두 신문의 입장이 극명하게 대립하고 있다.


(1)요미우리


북한이 일본정부에 전달한 피랍 일본인 요코타 메구미(橫田めぐみ)의 유골이 DNA감정결과 가짜임이 판명돼 여론이 들끓고 있는 가운데 2004년 12월 25일 사설은 제재의 준비를 서두를 것을 촉구하고 있다. “악당국가 북조선에 일본이라는 나라와 국민이 이만큼 우롱당하는 것을 잠자코 있어서는 안된다”면서 “이런 나라가 성의있는 대응을 보일 것이라고 안이하게 기대하면 안되며 엄중한 대응의 준비를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제재에의 환경정비와 외교노력을 병행하는 것 자체가 북한에 대한 압력수단이 될 수 있음도 지적하고 있다. 이어 북한이 요코타씨의 유골이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일본의 감정결과가 ‘날조’라는 문서를 일본정부에 전달한 직후인 2005년 1월 31일에는 우선적으로 부분적인 제재조치, 예를 들면 북조선에의 송금과 현금소지 북한방문 제한, 만경봉호의 입항규제” 등을 즉각 실시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중일관계에서는 칠레 APEC에서 열린 중일 정상회담이 열린 뒤인 2004년 11월 23일 ‘정치교류의 정체는 중국이 원인’ 사설에서 후진타오 중국 주석이 “정치교류의 정체의 주원인은 야스쿠니 참배에 있다”고 한 것을 두고 “중일관계의 정상적인 발전을 저해하는 것은 중국의 내정간섭 아닌가”라고 강력 반박했다.


“일국의 지도자가 전몰자에 대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추도의 뜻을 표시하는 것은 그 나라의 전통과 관습에서 유래하는 문제이다. 다른 나라로부터 이러쿵 저러쿵 말을 들을 것은 아니다.”


사설은 또 후주석이 “일본은 역사를 거울로 미래에 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을 두고 ‘당신들이나 잘하라’는 어조로 반박하고 있다.


“고대이래의 역대왕조와 가깝게는 문화대혁명에 이르기까지 공산당 독재하의 현대중국만큼 역사인식, 역사상 인물의 평가가 어지러울 정도로 달라지는 나라는 드물다. 타국에 ‘역사를 거울로’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가.”


사설은 “아시아태평양지역은 물론 세계의 경제와 안전보장에 대한 중일양국의 역할과 책임을 생각하면 수뇌교류의 중단은 쌍방에게 마이너스”라면서 “그렇기 때문에 더욱 중국은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내정간섭을 그만두고 정치교류 정체의 타개에 나서야 한다”고 맺고 있다.


(2)아사히


아사히도 가짜유골 파문이 일고 있던 2004년 12월 9일자 ‘김총서기는 이 분노에 귀를 기울이라’ 제하의 사설에서 엄중한 어조로 북한을 비판하고 있다.

“언제까지 납치피해자의 가족과 일본국민의 마음을 갖고 놀려 하는가. (중략) 북조선은 거짓말이 통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가. (중략) 일본사람들이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김총서기는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유골임을 그 자신이 몰랐다면 담당자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리고 일본이 납득할 때까지 재조사를 해 납치피해자에 관한 사실을 전부 공표해야 한다.”

또 여론의 제재요구 움직임을 전하고 제재도 선택수단이 될 수 있음을 환기시키고 있다. “요코타씨 등 납치피해자의 가족회는 경제제재의 즉시발동을 요구하고 있다. 정계도, 여론도, 제재실시론에 더욱 기울어지고 있을 것이다. 북조선에 대해서는 ‘대화와 압력’이다. 제재편향이어서는 안되지만 제재도 또한 선택지의 하나임을 김총서기는 잊어서는 안된다.”

아사히역시 APEC 중일정상회담 다음날인 2004년 11월 23일 ‘야스쿠니 문제를 움직여 보자’ 는 제하의 사설을 싣고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에 관한 고이즈미 총리의 결단을 요구했다. 그러나 중국에 대해서도 신중한 태도를 보여줄 것을 언급했다.


“우리들은 총리의 참배를 반대한다. 야스쿠니는 전전의 군국주의의 정신적인 지주였다. 동경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된 사람들을 합사시키고 있기도 하다. 중국측의 참배비판도 이점에 맞춰져 있다. 괴로운 역사라 할지라도 분별을 해야만 존경받는 나라가 된다. 그러나 중국도 생각을 해주기 바란다. 98년 당시 장쩌민 주석이 방일했을 당시 역사문제에서의 사죄를 반복요구, 일본측의 불쾌감을 샀다. 야스쿠니에 한하지 않고 중국은 ‘역사카드’를 써서 일본을 책망해왔던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일본국민에게 갖게 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Ⅳ. 평가 및 시사점



아사히와 요미우리의 사설을 통해 일본 여론이 제반 안보관련 사안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대략 살펴봤다. 이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요미우리로 대표되는 일본내 보수여론이 전개하고 있는 논리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체계화돼 있고 나름의 완결성을 갖고 있다는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헌법개정의 문제만 보더라도 이를 ‘공공성’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 들어가면서 ‘전후 민주주의’가 남긴 부의 유산들을 총체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헌이 필요하다는 식의 논지전개가 돋보인다.


물론 이런 논리구조는 앞서 지적했듯이 ‘전전’의 잘못에 대한 망각과 ‘반성없음’의 토대위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런 망각과 무반성은 반성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교육 등 때문에 일반 국민들 대다수가 마찬가지 상태에 있어 큰 결함이 되지 않고 있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실제로 필자는 일본 체재 당시 만난 다수의 일본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본에서 이뤄지는 역사교육, 특히 근대사 교육이 얼마나 부실한가를 알게 됐다.(주21)  


또 90년대 버블붕괴이후 ‘잃어버린 10년’으로 일컬어지는 경제침체와 함께 이지메, 아동학대 등 사회병리 현상의 확산이 ‘전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파급시키는 데 일조한 것도 사실이다. 침체기의 시대를 견뎌가면서 ‘전전’을 미화하려는 의식이 돋아나게 되고 혹은 ‘전후’시대가 총체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의식이 자라나는 것은 어찌보면 불가피한 현상이기도 하다.


여기에 90년대 중반이후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사건(주22)이 있었고, 2002년 고이즈미 총리의 일본방문 과정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일본인 납치사실을 인정하고 나선 것은 일본의 보수우익에게 또 하나의 기회를 제공했다.  ‘자국민의 안전은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식은 자위대의 ‘자위군’ 승격에 공감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냈다.(주23) ‘애국심’이라는 항목을 교육기본법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보수세력들의 주장도 공감을 얻기에 이르렀다.

요미우리가 사설을 통해 진보세력들을  “전후사고를 벗어버릴 수 없는 ‘수구세력’”이라고 공격하고 “국가, 국민의 활력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대응을 서둘러라”고 주장할 수 있는데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보수세력들의 논거는 풍부해지고 있는 반면 아사히로 대표되는 진보세력들의 주장은 상대적으로 빈약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앞서 살펴본 것처럼 개헌논의에 맞서 ‘호헌론’을 강력하게 펼치는 모습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무기수출 3원칙에 대해서는 아사히 조차 ‘미사일 방어관련 부품’에 국한해 완화하라는 ‘타협안’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때리기’는 두 신문에서 질적인 차이가 보이지 않고 있다.(주24)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일본사회의 전체적인 보수화 경향속에서 일반 국민의 여론형성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언론에서도 보수논리가 대세화되고 있는 상황을 두 신문 사설의 비교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Ⅴ. 결론을 대신하여


여기서 잠시 올해 3월 독도영유권 문제를 통해 불거진 한․일간의 갈등과정과 당시 한국정부와 국민의 태도를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외교전쟁’이라는 용어까지 사용해 가면서 일본에 대한 강경대응 방침을 천명했고(주25), 종로와 광화문 등 서울 도심에선 일장기가 불태워지고 흥분한 시위대가 손가락을 자르는 사태까지 등장했다. 물론 독도가 우리땅임은 역사적으로도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문제는 이 당연한 사실을 어떻게 설득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일본 체재당시 필자가 참석한 한 세미나에서 한일관계를 전공한 한 한국인 교수의 논평에 공감한 적이 있다.

“한일간의 갈등이 불거지면 일본의 매스컴은 한국의 종로거리에서 발생하는 시위장면에 초점을 맞춘다. 손가락을 자르는 등 시위가 과격하면 과격할수록 시청률은 올라가기 마련이다. 그 장면을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소 한국에 별다른 지식도 감정도 없는 사람들이다. 일본에 의한 식민지 지배사실에 대해서는 더욱 관심이 없다. 일본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이런 사람들이 한국의 시위장면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 것인가. 혐한(嫌韓)감정밖에 들지 않는다.”

실제로 많은 일본인들은 한국에 대해 한국과 자신들이 얽힌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무지하다. 그런 일본을 상대로 독도문제 등이 불거질 때마다 과격시위를 되풀이하는 것은 아무런 실익이 없고 분풀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좀더 근본적인 대안을 찾아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와 학계, 언론 관계자들이 나서 일본의 사회 분위기를 진지하게 파고 들어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한 재일교포 강사가 대학강단에서 일본의 ‘전전’역사 문제를 거론하자 한 학생이 ‘자학사관(自虐史觀)’에는 이제 물렸다며 항의했다고 한다.(주26)

일본의 보수우익은 때만 되면 군복복장을 하고 야스쿠니 신사에 몰려드는 노인들만이 아니다. 대다수 신세대들은 별다른 죄의식없이 요미우리 등의 논리를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의 현재 상황에 대한 깊은 고찰이 없는 한 바람직한 대안은 찾아내기 힘들다. 좀더 깊은 성찰을 통해 보다 정교한 대응논리와 전략을 만들어야 할 시기다.

한편으론 일본내 진보세력들이 주창하는 ‘아시아 공동체론’에 힘을 실어주는 작업도 필요하다. 유럽연합의 모체는 1951년에 발족한 석탄과 철강의 6개국 공동관리 체제였다. 독일과 프랑스의 국경에 위치, 오랜 갈등의 빌미가 돼 왔던 지하자원을 평화의 씨앗으로 바꾼 것이다.(주27)

아사히가 제안한 것처럼 중일간의 해저자원 공동개발, 관리체제가 가동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한일간에도 유사한 협력을 통해 역사 및 국경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주1)2003년 6월 방일한 노무현 대통령은 방일직전 일본국회가 유사법제 관련법안을 통과시킨 것과 관련,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 정치권에서는 ‘등신외교’라는 극언이 오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2005년 3월 독도문제를 둘러싼 한일갈등 국면에서는 노대통령이 초강경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주2)아사히 신문 국제부 사쿠라이 이즈미(櫻井泉)기자에 따르면 2004년 현재 아사히 신문은 830만부, 요미우리 신문은 900만부로 추산된다.

(주3)대일강화조약이라고도 한다. 1951년 9월 8일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인되고, 1952년 4월 28일 발효되었다. 미국은 1947년 7월부터 대일강화를 위한 예비회담을 제의하였으나 회의방식에 대한 미국과 소련의 대립으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그 뒤 1950년 6·25전쟁을 계기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수국 강화(분리강화)가 확정되었고, 1951년 9월 4일 조약 서명을 위한 회의(샌프란시스코강화회의)를 열었으며, 주최국 미국과 영국을 포함한 52개국 중 체코슬로바키아·소련·폴란드를 제외한 49개국이 이 조약에 서명하였다.

전문과 본문 27조로 되어 있다. 이중 제3장의 안전조항(5 ·6조)은 미 ·일안전보장조약의 체결을 위해 복선을 깔아둔 것으로 일본을 반공진영에 편입시키는 정치적 성격이 강한 것이었다. 영토와 배상을 포함한 경제문제에서는 상당히 엄격하였고, 국제연합 헌장과의 관계가 깊은 것이 특색이다.

(주4)양 신문의 논쟁史에 대해서는 ‘讀賣vs朝日사설대결 50년’(讀賣新聞논설위원회편 中公新書)를 참조할 것.

(주5)산케이 신문은 강경우익의 논지를 많이 펴고 있고 북한보도의 비중이 높아 한국 언론에 자주 인용되지만 일본내에서의 영향력은 미미한 편이다. 

(주6)朝日新聞(2004-12-11)

(주7)朝日新聞(2004-12-11)

(주8)배정호 ‘일본 신방위계획의 대강의 주요내용과 한반도 안보’(2004-12-20)

(주9)박철희 ‘부시재선이후의 미일동맹-세계적 힘의 동맹 추구와 동맹의 모순’(2004-11-9)

(주10)朝日新聞(2004-12-20)이 18-19일 이틀간 전국 1천86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여론조사 결과 대북(對北) 경제제재 발동에 찬성하는 의견이 63%,반대의견은 25%였다. 대북제재 찬성의견은 여자보다 남자가 높고 연령별로는 30~50대가 70%대로 높게 나타났다. 내각지지율은 37%로 11월 조사때의 39%보다 하락했다.

(주11)이라크 무장세력에 납치됐던 일본인 고다 쇼세이(香田證生)가 2004년 10월31일 참수된 시체로 발견되면서 일본 내에서는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 기간을 연장해야 할지에 대한 논쟁이 일었다. 또 1일에는 이라크 남부 사마와의 자위대 주둔지 근처에서 큰 폭발음이 들려 자위대의 안전여부 등도 여론의 관심이 됐다.

(주12)중국 대륙에서 330km, 대만에서 170km, 오키나와에서 410km 떨어져 있으며 일본명으로는 센카구(尖閣)열도이다.

(주13)최근의 진행상황을 보면 일본 자민당 신헌법기초위원회(위원장 모리 요시로 전 총리)는 2005년 7월7일 헌법개정초안의 요강을 정리해 공표한데 이어 8월1일에는 자민당이 개헌안 초안을 발표했다.

(주14)교도(共同)통신(2004-7-22)에 따르면 리처드 아미티지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군 보유와 교전권, 동맹국과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등을 금지하는 일본 헌법 9조가 미일 동맹과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에 장애물이라고 밝혔다. 아미티지 부장관은 방미중인 나카가와 히데나오(中川秀直) 자민당 국회대책위원장(원내총무)과의 회담에서 일본

의 개헌에 대해 “일본 국민이 결정할 일”이라면서도 “헌법 9조가 미일 동맹 관계의 장애가

되고 있다는 인식이다”고 말했다. 아미티지 부장관은 또 일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해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며 “국제적 이익을 위해 군사력을 전개하지 않으면 상임이사국 진출은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주15)朝日新聞(2005-1-19)

(주16)朝日新聞(2005-1-20)

(주17)朝日新聞(2005-1-19)

(주18)아사히 신문이 2005년 4월24~25일 전국 유권자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면접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쟁포기를 담은 헌법의 개정필요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56%가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고칠 필요가 없다”는 응답은 33%에 불과했다.

(주19)東京新聞(2004-12-5)에 따르면 육상자위대 참모조직인 육상막료감부 소속 2등 육좌(중령급)가 2004년 10월하순 군대의 설치와 집단적 자위권 행사 인정 등을 담은 ‘헌법초안’을 작성, 자민당 헌법조사회 개헌안 기초위원회 수장인 나카타니 겐(中谷元)전 방위청장관에 제출했다. 이 장교는 나카타니 전 장관의 요청에 따라 헌법초안을 작성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20)문화일보(2005-7-7) 일본정부는 교육기본법 개정안 요강에 그간 논란이 돼 왔던 애국심 관련 조항을 자민, 공명 양당의 주장을 모두 싣는 병기방식으로 정했다. 자민당은 교육기본법의 교육목표에 ‘나라를 사랑한다’는 문구를 넣자는 주장인 반면 공명당은 ‘애국’이라는 표현이 국수주의적 인상을 준다는 이유로 ‘나라를 소중히 여긴다’는 표현을 넣을 것을 각기 주장, 논란을 빚어왔다.

(주21)게이오(慶應)대학 여자졸업생 모임인 미타(三田)부인회의 한 50대 회원의 말에 따르면 일본의 국사수업은 1905년의 러일전쟁 정도까지만 교사와 같이 수업하고 나머지는 집에서 자습하는 형태로 이뤄진다고 한다. 이 때문에 많은 일본인들이 한일합방과 일제의 조선강점 사실을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다고 한다.

(주22) 1998년 8월 31일 북한이 발사한 대포동 1호 미사일은 일본 혼슈 북단을 지나 발사지점으로부터 약 1200마일 떨어진 태평양에 떨어졌다. 이는 일본에 커다란 충격이었고 1945년이후 한번도 외국에 군사적 위협을 받아본 경험이 없었던 일본인들에게 “본토가 공격당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심어줬다.

(주23)아사히 여론조사(주18)에 따르면 헌법과 자위대의 관계에 대해 ‘자위대는 지금이 좋지만 헌법을 개정해 존재를 명기해야 한다’는 대답이 58%였고, 12%는 ‘보통의 군대로 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주24)다수의 일본 기자들에 따르면 아사히 신문의 경우 2002년 고이즈미의 방북에서 김정일위원장이 북한의 일본인 납치사실을 시인하기 전까지 북한의 일본인 납치설을 조작이라고 믿는 기자들이 다수였다고 한다. 때문에 납치의혹설이 불거질 때마다 아사히는 강한 논조로 이 설들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보도태도를 견지했다. 따라서 납치사실 인정이후 아사히 신문은 상당한 내부적 혼란을 겪었고 이를 계기로 대북보도 태도가 과거에 비해 현격히 강경해졌다고 한다.   

(주25)노무현대통령은 지난 3월23일 ‘한일관계 관련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일본이 행동으로 반성하고 과거를 청산하지 않으면 정면대결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비쳤으며 특히 “각박한 외교전쟁도 있을 수 있다”며 최악의 경우도 대비하고 있음을 시사해 파문을 빚었다.

(주26)小森陽一,高橋哲哉 “ナショナル ヒストリーを超えて” 동경대학교출판회 편, “내셔날 히스토리를 넘어서” 삼인 편.

(주27)朝日新聞(20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