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반 히데유키 “도쿄전력 빨리 해체하고, 일 정부가 원전사고 수습 전면 나서야”

서의동 2013. 9. 4. 21:55

ㆍ일본 반핵시민단체 ‘원자력자료정보실’ 반 히데유키 대표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는 매일 25m 길이의 수영장을 채울 수 있는 막대한 양(300t)의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손을 놓고 있던 일본 정부가 2020년 하계올림픽 유치를 앞두고 허둥지둥 대책을 내놨지만 예산만 투여했을 뿐 지금까지 말썽을 빚어온 도쿄전력이 사고수습을 맡는 체제는 손을 대지 않았다. 일본의 대표적인 반핵 시민단체인 원자력자료정보실의 반 히데유키(伴英幸·62) 대표는 “도쿄전력을 조속히 해체하고 일본 정부가 전면적으로 사고수습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인류사적 재앙인 원전사고의 수습을 민간기업에 맡겨두는 상태로는 문제 해결이 요원하다는 게 원전사고 이후 2년6개월 동안 지켜봐온 그의 확신이다.

지난 3일 도쿄 신주쿠(新宿)구 사무실에서 반 대표와 만나 오염수 문제를 비롯한 후쿠시마 원전사고 수습 상황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반 대표는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의 사고대책에 우선순위가 바뀌거나 빠진 것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면 오염수를 장기간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는 대용량의 저장탱크 건설과 지금도 하루 1000만베크렐(㏃)에 달하는 방사성물질의 방출을 막기 위해 원전건물에 덮개를 씌우는 작업 등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반핵 시민단체인 원자력자료정보실의 반 히데유키 대표가 3일 도쿄 신주쿠 사무실에서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수습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반 대표는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가 근본적인 사고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오염수 해양 방류 계획을 세워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도쿄 | 서의동 특파원



- 후쿠시마 제1원전의 오염수가 매일 300t씩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바다로 들어가는 오염수에는 세슘 말고도 스트론튬, 아메리슘 등 여러 가지 방사성물질이 섞여 있다. 핵연료를 냉각하면서 생성된 물질들이 다량 녹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당국은 세슘 외에 여타 방사성물질이 어느 정도 방출되는지 공개하지 않는다. 후쿠시마 제1원전 앞바다는 방조제로 둘러싸여 있고 펜스를 쳐놔 통제는 해놨지만 오염수들은 서서히 바깥쪽 바다로 확산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저장탱크의 유출사고라고 반 대표는 강조했다. “매일 저장탱크에서 나오는 오염수 300t이 바다로 그대로 흘러가는 것이 현재로선 더 심각하다. 문제는 350기에 달하는 볼트형 탱크에서 비슷한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철판을 볼트로 이어붙이고 고무패킹을 끼워 만든 탱크라 내구성이 나빠 언제든 사고가 재발할 수 있다. 도쿄전력은 이 문제의 분명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 정부가 사고종합대책으로 오염수의 바다 유출을 막기 위해 땅을 얼려 동토벽을 구축하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도쿄전력은 동토벽을 내년 말까지 완공하겠다고 밝혔는데, 그동안에는 계속 오염수가 수백t씩 방류될 수밖에 없다. 그 전에 차수벽을 만들어 유출량을 줄이겠다고는 하지만 원전 전체를 다 둘러치지 않으면 효과가 적을 것이다. 동토벽은 동결관을 1m 간격으로 지표에서 20∼30m 깊이까지 박은 다음 냉각재를 동결관에 집어넣어 순환시켜 주위땅을 얼리는 방식인데, 1m 간격 사이의 땅이 얼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또 이런 계획들이 사고 직후 2년6개월여간 왜 진행되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 이는 엄중하게 비판받아야 한다.”

- 지난 2년반 동안 오염수 대책이 나오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도쿄전력은 원전 부지의 잔해를 치우는 작업 때문에 늦었다고 설명하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도쿄전력은 아마 우물을 파 지하수를 퍼올려 바다로 방출하는 (가장 돈이 안 드는) 방안을 생각해왔던 것 같다. 하지만 원전사고로 몇 년씩 조업을 못하게 된 어민들이 방사성물질을 기준치 이하로 낮췄다고 해도 오염수를 바다로 버리는 데 동의할 리 있겠나. 도쿄전력의 사고방식은 안이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 원자력규제위원회가 지난 2일 외신 기자회견에서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하는 방안을 시사했는데 어떻게 평가하는가.

“방류해선 안되고, 대형 저장탱크를 만들어 10년 이상 저장해야 한다. 방사성물질을 다핵종 제거장치로 제거한다고 해도 트리튬(삼중수소)은 남는다. 결국은 저장할 수밖에 없다. 가능한 한 빨리 오염수의 장기 저장대책을 세우는 것이 맞다.”

2년반 안이한 대책 납득 안돼… 도쿄전력 해체하고 국유화를

350기 달하는 오염수 탱크유출… 사고 재발 가능성 우려
대용량 저장시설이 급선무… 잔해 철거보다 덮개 작업해야


반 대표는 삼중수소에 대한 일본의 규제기준이 지나치게 무르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삼중수소를 ℓ당 6만㏃까지 허용하고 있는데, 유럽에서는 절반 이하로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삼중수소는 물의 형태로 돼 마셔도 몸에 농축되지 않고 배출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유럽의 최근 연구결과 체내에 농축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면 유전자 변형이 발생해 발암 위험도 커진다.”

오염수가 계속 늘어나는 이유는 멜트다운(노심용해)된 핵연료를 냉온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냉각수를 계속 들이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 대표는 앞으로 2~3년쯤 지나면 핵연료를 물 대신 공기로 냉각시키는 공랭식 냉각시스템이 도입될 수 있으며 이럴 경우 오염수가 근본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공랭식이 가능해지면 오염수 문제는 줄겠지만, 아직은 핵연료가 뜨거워 앞으로도 1~2년은 물로 냉각시켜야 할 것이다. 그때까지 불어날 오염수는 약 80만t에 달할 것이고, 탱크에 담아 장기 저장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보다 크고 튼튼한 오염수 저장시설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 일본 정부의 대책이 발표됐지만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의 목소리가 많다. 불신을 사고 있는 도쿄전력에 맡겨놓는 방식도 바뀌지 않았다.

“유출을 근본적으로 막는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사고대책은 도쿄전력과 건설회사, 경제산업성과 연구기관, 원전 건설업체 등으로 구성된 대책위에서 만들어 이를 원자력규제위가 평가하는 식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봐온 대로 기술적 한계가 있는 만큼 외국 기술자와 기업 등이 참여해 공동으로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

반 대표는 대기중으로 배출되는 방사성물질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가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후쿠시마 원전의 폐로 일정에 집착해 그보다 더 중요한 방사성물질 저감대책에는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 후쿠시마 원전의 수습작업은 잘 이뤄지고 있는가.

“일본 정부는 원전을 향후 40년 안에 폐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지나치게 폐로 공정에 집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 수소폭발을 일으킨 건물 잔해를 치우는 데 집중하고 있는데 그보다는 하루 1000만㏃에 달하는 방사성물질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필터가 달린 덮개를 씌우는 일이 급선무다.”

핵연료를 공랭식으로 냉각시킬 수 있는 상태가 된다면 원자로 해체나 연료반출 계획은 좀 더 늦추고 10~20년간은 방사선량이 낮아지는 것을 기다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 반 대표의 생각이다. 또 폐로과정에서는 멜트다운된 핵연료를 반출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반 대표는 기술상 가능할지 회의적이었다.

“거대한 집게를 사용해 녹아붙은 핵연료를 조그맣게 잘라서 용기에 넣어 꺼내는 방식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스리마일 원전사고 당시에도 이런 방법이 사용됐지만 스리마일은 실험용이어서 규모가 작았기에 가능했다. 후쿠시마 원전은 1호기의 핵연료가 60t인 데다 격납용기도 높이가 30m에 달한다. 이렇게 거대한 연료를 집게로 꺼낼 수 있을까.”

- 도쿄에서 생선초밥을 사먹어도 되는가.

“현재 정부가 검사를 해서 방사성물질이 기준치인 ㎏당 100㏃을 넘는 것은 출하를 금지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 전수검사도 하지만, 세슘만 검사할 뿐 검사에 2주가 걸리는 스트론튬 등 여타 방사성물질은 검사하지 않는다. 스트론튬은 세슘과 비슷하게 있을 것으로 추정하는 수밖에 없다. 후쿠시마나 미야기, 이바라키 등에서 잡힌 생선은 어찌됐건 피해야 한다.”

반 대표는 인터뷰 내내 도쿄전력이 중심이 되는 ‘사고수습의 민영화’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수습대책을 내놨지만 도쿄전력을 민간기업 형태대로 유지한 채 정부 예산을 투자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로 의문이다. 도쿄전력을 해체하고 완전히 국유화해 정부가 전면적으로 책임지고 사고수습을 하는 것이 맞다.” 인류사적 재앙인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수습을 민간기업에 맡겨두는 일본 정부의 무책임성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 반 히데유키는 누구
후쿠시마 사고 예견 ‘반핵운동가’… 한국 입국 거부당하기도


반 히데유키(伴英幸·62)는 일본의 원전정책을 비판해온 대표적인 반핵운동가로, 일본 최대 반원전 시민단체 원자력자료정보실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핵화학자 다카기 진자부로(高木仁三郞, 1938~2000)가 1975년 설립한 원자력자료정보실은 원자력 업계의 이해관계로부터 독립해 원전 정책을 조사·연구·제언하는 비영리법인으로, 공개연구회와 심포지엄 등을 통해 일본 원전정책의 문제점을 국내외에 알리고 있다. 특히 지진대국 일본에서 원자력 재해가 일어날 수 있다고 꾸준히 경고해왔으며 후쿠시마 제1원전에 대해서도 지진에 의한 사고 가능성을 일찌감치 예견했다.

반 대표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직후인 2011년 4월 한국을 방문해 도쿄전력이 밝히지 않은 후쿠시마의 현실을 폭로한 바 있다. 그는 지난 4월19일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의 교보환경대상을 수상하러 한국에 오려다 법무부에 의해 인천공항에서 입국이 거부됐다. 이 때문에 동행했던 원자력정보자료실 스태프들이 대신 상을 받아야 했다. 반 대표는 “일본에 돌아온 뒤 주일한국대사관 등을 통해 입국불허의 이유를 물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