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한일비교](16)일본 거리의 '등대' 편의점

서의동 2013. 10. 4. 11:14

아침 출근길에 매일 꼬박꼬박 들르는 곳이 콤비니라고 불리는 일본의 편의점이다. 아침식사를 못하고 출근하기 때문에 들러 삼각김밥과 녹차를 산다. 아침 전철에서 신문광고에 실린 '슈칸분슌(週刊文春)' '아에라(AERA)' 같은 시사주간지의 제목을 훑어보고 재미있겠다 싶으면 편의점에서 바로 산다. 일요일 아침에는 동네 편의점에서 간단히 장을 본다. 햇반, 햄, 감자, 양파 같은 걸 사다가 밥을 해먹는다. 수퍼들이 9시 넘어야 문을 열기 때문에 약간 비싸더라도 편의점을 찾게 된다. 


우리동네 편의점(세븐일레븐)에는 60대 쯤으로 보이는 어르신, 70대로 보이는 할머니도 점원이다. 전직 택시운전사였다는 60대는 내가 한국사람인 걸 알고 물건계산을 하면서 이것 저것 물어보며 친근감을 표시한다. 가끔 서비스라며 경품 비슷한 걸 챙겨주기도 한다. 그외에 30~40대의 비교적 젊은 점원들도 2년 넘게 마주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목례를 나누게 된다. 세븐일레븐에서는 가끔씩 사은잔치를 하기도 하는데, 700엔어치 넘는 물건을 사면 추첨을 해서 물건을 주는 식이다. 상자에 손을 집어넣어 표찰을 골라 꺼내 당첨여부를 확인한다. 지난번엔 당첨돼 음료수를 하나 공짜로 챙겼다. 


후쿠시마 현에 있는 한 편의점. 주차공간이 널찍하다. /위키피디아


도쿄중에서도 도심은 땅값이 비싸 주차장이 없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대개는 차를 적어도 5~6대 세울 수 있는 주차장을 끼고 있다. 운전하다 화장실을 가야할 경우 편리하다. 화장실만 다녀오고 물건을 사지 않아도 상관없다. 보행중 흡연에 대한 규제가 심하고, 금연차량을 모는 흡연자들은 편의점 앞에 설치된 재털이에서 일복(一服)하는 경우가 많다. 도심의 오아시스인 셈이다.  


일본 편의점의 역할중에서 요기한 것은 물건을 대신 받아주는 기능이다. 예를 들어 일본의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구입해도 낮에 집이 비어있으면 물건을 받기 어려운데 사무실 근처의 편의점을 수신처로 지정하면 그곳에서 물건을 찾을 수 있다. 전기 수도료 휴대전화 요금 납부는 물론 각종 공연및 전시장 표예매, 야구장 표예매도 이곳에서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주민표(주민등록등본), 인감증명서 발급 등 행정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세븐일레븐), 로손도 전기자동차 충전서비스를 일부 지역에서 실시하고 있다. 


최근엔 채소, 과일, 육류에 특화된 점포들도 늘어나고 있다.


고령화와 인구감소가 동시에 진행되는 농촌이나 산간 지역에선 편의점이 ‘등대’ 역할을 한다. 3·11 동일본 대지진 때 편의점 업체들은 전국 점포망을 총동원해 도호쿠(東北) 지방에 상품 공급량을 늘렸다. 집을 잃은 이재민들에게는 화장실과 온수를 제공했다. 편의점 업계는 매일 들러 물건을 사는 주민들이 큰 재난을 당했으니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365일 쉬지 않고 심야에도 환하게 불을 켜고 주민들을 맞이하는 '등대'지만, 세군데 불이 꺼진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한 곳은 방사성물질 유출사고가 난 후쿠시마 제1원전 10km앞에 있는 편의점(아마 패밀리마트였던 것 같다). 올해 2월에 후쿠시마의 제염상황을 취재하러 간 김에 경찰통제선까지 차를 몰고 갔다가 되돌아오면서 목격했다. 편의점 앞 주차장에는 콘크리트 바닥 틈새를 뚫고 풀이 자라고 있었고, 대형 재털이가 넘어진 채로 있었다.


지난해 3월 후쿠시마 출장취재를 갔을 때 들렀던 이다테무라(飯館村)에도 불꺼진 편의점이 있었다. 이곳은 방사선량이 너무 높아 주민들이 대부분 떠나버린 것이다. 동일본대지진 나흘뒤인 2011년 3월15일 쓰나미로 도심까지 마비됐던 미야기(宮城)현 센다이(仙台)시내의 한 편의점도 굳데 문이 닫혀 있었다. 후쿠시마에서 목격한 문닫힌 편의점의 을씨년스런 풍경은 한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