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한일비교](17)복면을 좋아하는 일본

서의동 2013. 10. 30. 14:12

최근 일본에서 '베비카 오로슨쟈(ベビーかおろすん者)'라는 복면 선행청년이 화제가 되고 있다. '베비카 오로슨쟈'는 우리말로 풀면 유모차를 들고 계단을 내려가는 것을 돕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도쿄 스기나미구 호난초(方南町)지하철역은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지 않아 아이엄마들이 힘겹게 유모차를 들고 내려가야 한다. 


베비카 오로슨쟈 http://www.kotaro269.com/


이 사정을 딱하게 여긴 정체불명의 청년이 울트라맨 엇비슷한 복장(얼굴도 철저히 가린다)을 하고 출근전 2시간 동안 무료로 자원봉사를 한다. 유모차 뿐 아니라 무거운 짐을 든 노인들도 도와준다. 그의 선행을 우연히 알게된 동네주민들의 제보로 매스컴을 타긴 했지만, 이 청년의 정체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2010년 겨울 일본 각지에서는 '타이거 마스크'만화의 주인공인 '다테 나오토(伊達直人)'를 칭하는 인물들이 어린이들을 위해 쓰라며 책가방을 몰래 보내는 '사건'이 빈발했다. 그해 크리스마스 군마현 마에바시시 중앙아동상담소 정면출입구앞에 초등학생용 책가방 10개가 들어있는 종이가방이 발견됐다. 보낸이의 주소나 연락처는 없고 "책가방입니다. 아이들을 위해 써주십시오. 다테 나오토"라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만화 <타이거 마스크>주인공 다테 나오토 http://peaceman.jugem.jp/

 

다테 나오토는 1960년대 말1970년대 초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끈 프로 레슬링 만화 <타이거 마스크>의 주인공 이름이다고아원 출신인 다테 나오토는 복면을 쓴 레슬러로 활약하며 대전료를 고아원에 기부해 왔다. 이 선행이 보도되면서 가나가와현 오다와라, 나가노현 나가노시의 아동상담소에서도 아이들을 위해 쓰라는 다테 나오토 명의의 책가방이 발견돼 일본사회를 훈훈하게 했다.  


다테 나오토 사건이 발생한지 약 1년 뒤인 2011년 11월. 이번에는 '울트라 세븐'을 자칭한 기부천사가 홋카이도 무로란시의 한 어린이보호시설에 현금 100만엔을 보냈다. 동봉 된 편지에는 "하찮은 선물입니다. M78성운에서 울트라세븐 보냄"이라고 돼 있었다. "지구에 3분이상 있을 수 없으니 언짢게 생각하지 마시길..."이라고도 쓰여 있었다. 


울트라세븐은 1967~68년 일본TV에서 방영돼 인기를 끈 특촬(특수촬영) 애니메이션으로 울트라세븐이 우주인의 침략으로부터 지구인을 돕는다는 줄거리다. 편지에 등장한 M78성운은 울트라세븐의 고향으로 은하계에서 300만광년 떨어진 것으로 설정돼 있다. (물론 타이거 마스크를 쓰거나 울트라세븐 복장을 하고 나타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엄밀하게 복면선행으로 분류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다)


이런 복면선행도 있는가 하면 최근에는 '복면소설'이 등장했다. 엘리트 관료가 일본의 원자력정책을 고발하는 소설 <원전 화이트아웃>이다. 저자의 프로필은 도쿄대 법학부 졸업, 일본 국가공무원 1종시험 합격, 현재 모 정부부처에 근무한다고만 돼 있을 뿐 구체적인 신상은 밝히지 않았다. 


일본은 왜 복면문화가 발달해 있는걸까? 복면소설의 경우는 자신의 신상이 드러날 경우 관료사회에서 도태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에 비해 복면선행은 '비록 선행일지라도 주변에 '폐'를 끼칠 수 있다'는 심리 탓으로 보인다. 선행이라도 튀는 행동이기 때문에 주변이 그로 인해 부담감을 느끼게 될 것을 우려한 듯 하다. 예를 들어 내가 아는 사람이 지하철역에서 유모차 계단내려가는 일을 도와주고 있다면 나도 '도와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게 되고, 그런 부담을 주는 것이 메이와쿠(迷惑)가 된다고 여기는 것 아닐까.


지인은 자선이나 기부에 '유희'적인 요소를 가미해 자연스럽게 확산시키려는 동기가 있다고 해석한다. 유희정신(일본말로는 아소비고코로(遊び心)쯤 될까)을 통해 무겁지 않게 선한 행위를 권유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인데 그것도 그럴 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