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한·일 전문가들 제언 “미·중 갈등 안 휩쓸리려면 한·일관계 개선부터”

서의동 2013. 11. 27. 11:34

한국 외교가 자칫 고립무원에 몰릴 수도 있는 현재의 답답한 상황을 벗어나려면 한·일관계를 정상궤도에 올려놓기 위한 노력이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공동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대결장이 된 동북아시아에서 한국이 양자 택일을 강요당하거나 미·중 관계의 하부 구조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역내 모든 국가와 원활히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한·일 관계 개선은 이를 위한 첫번째 단추에 해당한다.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 방해 요소가 되지 않으면서 미·중의 갈등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으려면 가장 약한 고리인 한·일 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외교·안보 분야에서 한국의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고,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한반도 문제를 포함한 동북아 현안이 미·중의 ‘신형 대국관계’라는 블랙홀로 빨려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더구나 일본은 한반도 최대 현안인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자대화 틀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핵심 플레이어다. 


안보 분야에서 일본의 협력이 필요한 부분은 여전히 많다. 정부 관계자는 “어느 한 쪽이 막혀 있는 상태에서는 균형을 잡을 수 없다”면서 “한·일 관계를 이대로 두고서는 조만간 한국은 더 나갈 수 없는 벽에 부딪치게 될 수밖에 없고, 정부가 추진하는 동북아평화협력구상도 현재의 한·일 관계로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한·일관계 전문가들도 악화된 양국관계가 더 이상 지속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으며 조속히 정상화를 모색해야 하고, 이를 위해 새로운 대일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한·일관계에서 ‘역사인식’과 ‘안보’라는 카테고리를 뭉뚱그리지 말고 분리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역사인식 문제와 집단적 자위권을 결부시켜 판단할 경우 한·미관계에도 균열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집단적 자위권 문제는 한·일관계가 아니라 동북아 안전보장 차원에서 판단해 국익을 최대한 감안해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불필요한 오해를 사면서 감정만 악화시키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일 접근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오쿠조노 히데키(奧園秀樹) 시즈오카(靜岡)현립대 준교수는 “박 대통령의 언행에서 관계회복 의지나 일본에 대한 배려가 보이지 않는다”며 “한·일관계와 한·미·일 공조가 중요하다는 인식을 박 대통령이 분명한 어조로 언급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도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담화’를 확실히 계승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언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 4월 국회에서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지는 않겠다고 했다가 파문을 빚자 계승하겠다고 말을 바꿨지만 ‘전체적으로’라는 단서를 달았다. 양국 정상이 상대방을 서로 배려하는 신뢰적 언사를 교환하면 자연스럽게 대화 무드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양국 간 최대 현안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징용피해자 배상문제에 대해서는 진 센터장은 위안부 문제와 징용배상 등의 문제를 사안별로 접근하기보다는 ‘미래재단’(가칭) 등을 양국 정부와 기업이 공동으로 설립하는 ‘독일식’ 해법을 제안했다.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는 징용배상에 대해 “박근혜 정부는 ‘대법원 판결도 존중하면서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타결됐다고 공표한 우리 정부의 입장도 일관되게 견지한다’는 입장을 천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되 징용배상 문제는 국내 조치로 책임을 이행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하는 것이 일본은 물론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게 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도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것이다.

 

진 센터장은 “정상회담은 모든 현안을 타결하는 자리가 아니라 교섭을 시작하는 자리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면서 “어렵다면 방재나 원자력 안전 등의 의제로 한·중·일이 먼저 정상회의를 하는 방식으로 워밍업을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