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집단 자위권’ 주변국과 갈등… ‘비밀보호법’은 일본 내 반발-아베 1년

서의동 2013. 12. 11. 15:10

“국회 취재 40년간 이렇게 지독한 (법안) 처리방식은 본적이 없습니다.”

 

일본 TBS 메인뉴스의 캐스터인 기시이 시게타다(岸井成格·69) 마이니치신문 편집위원은 특정비밀보호법 날치기 사태를 접한 당혹감을 이렇게 표출했다. 집권 자민당이 지난 6일 국민의 알 권리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특정비밀보호법을 강행 통과시킨 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지지율은 일시에 10%포인트 추락했다. 전후 일본 국회사상 유례가 드문 여당의 폭주에 충격을 받은 여론이 등을 돌린 것이다. 


마이니치신문은 11일 칼럼에서 특정비밀보호법 강행통과가 빚은 지지율 하락사태를 “1년간 경기개선 노력으로 쌓아둔 저금을 한번에 토해낸 격”이라고 비유했다. 두번의 선거승리로 장기집권의 토대를 굳힌 것으로 여겨졌던 아베 정권이 집권 1년만에 위기를 맞은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집권 초기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자제하고, 경제정책에 역점을 두는 절제된 행보를 보였다. 지난 4월 국회에서 “침략의 정의는 없다”는 발언으로 한때 물의를 빚긴 했지만 “참의원 선거에서 이기더라도 개헌보다는 디플레이션 탈출에 집중하겠다”(6월26일 기자회견)고 할 정도였다. 일본은행이 대규모로 돈을 푸는 ‘아베노믹스’로 엔화가 떨어지고 주가가 오르자 아베 지지율은 한때 74%(요미우리신문 4월조사)까지 올랐고, 기세를 몰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했다. 9월8일 도쿄가 2020년 하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하면서 아베 정권은 상한가를 쳤다.



아베 정권은 그러나 참의원 선거 이후 평화헌법 취지를 거스르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자위대 전력증강, 교과서 정부개입 등을 추진하며 본색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10월 임시국회에서 선거공약에도 없던 특정비밀보호법안을 돌연 제출해 통과시킨 것은 ‘목적을 위해선 수단을 가리지 않는’ 1차 내각(2006~2007년)의 수법으로 회귀했다는 질타를 낳았다. 아베 정권은 대외관계에서도 집권초기 무라야마·고노담화를 부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전후체제 탈피’를 공언하며 재무장 준비를 서둘러 동북아 긴장을 격화시키는 데에도 한몫했다.

 

아베노믹스도 기로에 섰다. 엔화약세와 주가상승은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일부 수출 대기업과 부유층에게만 혜택을 안겨주는 정도에 그쳤다. 여러 여론조사에서도 ‘경기회복을 체감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더 높게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올들어 지난 8월까지의 일본 국내 소매판매액은 전년대비 0.1% 감소했다. 엔저로 수입물가가 오른 것을 감안하면 실질 민간소비는 상당폭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아베 정권이 민간소비를 늘리겠다며 실적이 호전된 기업들에게 종업원 임금 인상을 주문하고 있지만, 기업들은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총인구는 물론 취업자수가 감소하는 인구구성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고 그저 돈을 대량으로 풀면 디플레이션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다는 발상이 문제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일본은행의 대규모 양적완화가 일본 경제를 역습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고바야시 게이치로(小林慶一郞) 게이오대 교수는 ‘뷴게이슌주’ 최근호에서 일본은행의 대규모 금융완화를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의 전력차를 감안하지 않은 채 감행한 ‘진주만 공습’에 비유하며 “(출구전략을 생각하지 않고) 지금처럼 금융완화를 계속하면 몇년 뒤 금리 혹은 물가가 지나치게 올라 통제불능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