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2. 14. 18:31

평양 사정 좋아져? 북한 당국 연출과 시장경제 발전의 혼합물

ㆍ‘아시아프레스’ 북한 취재팀 22년째 이끌고 있는 이시마루 지로 팀장… ‘꽃제비·장마당’ 등 북한의 민낯 그대로 전해

북한 전문가들에게 세계 최고의 북한취재팀을 들라면 독립 저널리스트 집단 ‘아시아프레스’를 꼽는 데 주저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북한인 저널리스트를 동원해 북한 내부를 취재한 영상과 음성파일을 토대로 꽃제비, 장마당 등 북한의 ‘민낯’을 전해온 아시아프레스의 취재력은 독보적이다. 이시마루 지로(石丸次郞·52·사진) 아시아프레스 북한취재팀장은 일본 좌파 지식인들이 대개 그렇듯 식민지배에 대한 속죄의식과 사회주의 북한에 대한 호기심에서 북한 취재를 시작해 22년째 팀을 이끌어오고 있다. 지난 10일 오사카시 기타(北)구에 있는 사무실에서 이시마루를 만나 4시간 동안 그의 취재이력과 북한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한국어로 진행했다.

이시마루 지로 아시아프레스 북한취재팀장이 지난 10일 오사카 시내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아시아프레스 제공


■ ‘불법취재’로 중국 공안에 10차례 적발

“중국에 들어가서는 안경을 벗고 수염을 깎습니다. 언론에 노출된 인상과 조금이라도 다르게 보일 필요가 있어서요.”

이시마루는 사진촬영을 하려 하자 책상 위에 벗어둔 안경을 서둘러 썼다. 북한인들이 취재해온 영상과 취재 내용을 전달받기 위해 중국에 자주 들어가야 하는 그로서는 중국 공안이나 군부대의 감시를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평균 네 차례쯤 관광비자로 중국에 들어가 ‘불법취재’를 하는 그는 그간 공안이나 군에 10차례나 적발됐다. 중·북 국경지대는 일본인 거주자가 거의 없어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 “아직도 중국에 입국할 때는 두근두근합니다.”

- 북한 내부 취재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가.

“북한 내부 취재원들에게 건네준 중국 휴대폰으로 연락한다. 중국 휴대폰은 북한 내륙에서는 외부와 연결되지 않지만 중·북 국경 부근 2㎞까지 접근하면 중국이나 외국과 통화할 수 있다. 북한 내 협력자들이 국경지방까지 와서 일본이나 한국으로 전화해 취재보고를 한다. 중국 휴대전화로 연락을 한 지 10년이 넘었다.”

평양에 있는 협력자들이 출장이나 친척 방문을 위해 중국으로 나와 취재영상과 메모를 갖다주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는 대부분 이시마루가 직접 중국에 가서 그들과 만나 취재성과를 보고받는다.

“내가 만난 950명의 북한인들은 세상의 빛이 한번도 비치지 않은 존재였다.
그들이 어떻게 살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려 그들에게 빛이 되고 싶었다”

- 북한 당국 입장에서는 일종의 반역행위일 수도 있는데 위험하지 않나.

“한때는 국경경비대나 보위부 사람들 대부분 중국 휴대전화를 갖고 있었다. 중국과 거래하기 위해서인데 그 바람에 내부 정보가 많이 유출되고 외부 정보가 유입되면서 단속이 강화됐다. 최근에는 방해전파를 발사하거나 보안원들이 전파탐지기를 갖고 돌아다니며 적발하지만 대부분 뇌물을 주면 무마할 수 있다. 통화내역까지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벌금만 내는 선에서 마무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북한인 저널리스트는 어떤 식으로 양성했는가.

“1993년부터 북한 취재를 하면서 탈북자 혹은 단순 월경자(탈북해 잠시 중국에 건너왔다가 되돌아가는 사람)를 950명가량 만났다. 이 중에 ‘북한이 이런 상태로 가면 안되니 바깥세상에 진실을 전해달라’며 ‘필요하면 내가 하겠다’고 자청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런 이들을 선발해 2003년부터 함께 일했다. 희망자들 중에서 직접 만나 검증해 5명을 저널리스트로 선발했다. 운전사나 행정기관 공무원, 장사꾼, 농민 등 직종이 다양하다. 취재 협력자는 5~6명쯤 되는데 고위급으로 분류되는 인사도 1~2명 있다.”

이시마루는 인터뷰를 잠깐 멈추고 노트북에서 2월6일자로 된 오디오 파일을 찾아 들려줬다. 북한 북부지방인 량강도에 사는 여성이 국경지대에 나와 탈북자 출신의 취재팀원에게 북한의 최근 대중교통 사정을 보고하는 전화통화 내용이다. 혜산에서 함흥까지 100원이라는 음성이 들렸다. 100원이면 너무 싸지 않냐고 묻자 “중국 인민폐 단위”라고 설명했다. “명목상 요금은 혜산~평양이 북한돈 900원이지만 실제로는 10만원이나 합니다.”

- 북한 내부 영상을 취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특별한 기술이 있나.

“촬영장비 자체는 아주 단순하고 특별한 기술도 없다. 하지만 그냥 찍으라고 맡겨두는 게 아니라 사전에 충분한 토론을 통해 취재방향을 잡아준다.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북한을 취재하는 만큼 증거 능력이 강한 취재를 할 필요가 있고, 그게 사진과 영상·음성 파일이다.”

한국, 북한 제대로 보기보다 이랬으면 좋겠다는 선입견 갖고 보고 있어
김정은 체제의 북한 장성택 처형으로 공포 커져... 김정은을 ‘지도자’ 아닌‘지배자’로 생각

오사카, 한국, 중국에 취재팀을 두고 있는 아시아프레스는 1998년 세계 최초로 북한의 기아 실상을 촬영한 영상으로 주목받았다. 북한인이 비디오 카메라로 꽃제비들이 길바닥에서 낟알을 주워 먹는 가슴 아픈 장면을 찍은 것을 공개했다. 지난해에는 5명의 북한인 저널리스트들이 봄부터 혜산과 평성 등 6개 도시를 돌면서 취재한 영상을 토대로 한 김정은 정권 2년을 평가하는 보도 프로그램을 제작해 일본 방송을 통해 공개한 바 있다. 북한이 지난해 6월부터 유일영도 10대 원칙에 대한 사상교육을 실시하고 있음을 정치집회 잠입취재로 확인하는 성과도 거뒀다. 

이시마루 지로가 1995년 12월 북한과 중국 국경지대 두만강 상류에서 인민군 장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아시아프레스 제공


이시마루는 자이니치(在日)로 불리는 재일동포들이 많이 거주하는 오사카에서 자랐다. 교원노조의 파워가 강했던 시절이라 초등학교 때부터 도덕시간에 자이니치, 장애인 차별문제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교토(京都)의 도시샤(同志社) 대학에 들어간 뒤 학생운동에 가담해 한국의 민주화를 돕는 한·일연대 운동을 이끌었고, ‘전두환 대통령 방일 반대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한국에 건너가 1년반 어학을 배웠고, 틈틈이 지방을 돌며 사람들을 만나 어울렸다. 그의 한국어는 일본인 특유의 억양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유창하다.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일본인들에게 북한은 잘살진 못해도 자주적으로 당당히 사는, 쿠바 비슷한 나라라는 이미지가 있었지요.” 하지만 이런 환상은 아시아프레스에 입사한 뒤 1993년 7월부터 두 달간 중·북 국경지대를 취재하면서 산산이 무너졌다.

- 국경취재를 통해 얻은 결론이 지금의 취재방식을 결정한 것인가. 

“두 달간 서쪽 단둥(丹東)에서 두만강 하류까지 북·중 국경을 훑으면서 월경자들을 만났다. 직접 목도한 북한과 북한 매체에 비친 북한과는 엄청난 괴리가 있었다. 이후 세 번 북한에 들어갔고, 운좋게 함경북도 은덕(옛 아오지)에서 1주일간 감시원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기회가 있었다. 꽃제비와 장마당, 30대 남성이 굶주려 맥없이 주저앉아 있는 모습들을 지켜봤다. 그때 생각이 외국기자들이 북한을 제대로 볼래야 볼 방법이 없다는 거였다. 감시와 체제 선전의 벽을 넘어 핵심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직접 넘지 못하면 북한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느꼈다.”

그는 북한을 무거운 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 비유했다. “국제사회는 병을 고쳐주고 싶어 하지만 진찰 자체를 거부해 병이 더 악화되는 상황인 셈이죠. 북한에 대한 보도는 단편적이나마 어디가 아픈지를 제시해 치료법을 찾는 데 도움을 주는 재료를 제공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 한국의 북한 담론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북한을 제대로 보자는 것보다 북한이 이랬으면 좋겠다는 선입견을 갖고 보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치료방법도 다르고, 서로 ‘당신이 틀렸다’고 논쟁을 계속해온 것이다. 하지만 탈북자들이 증가하고 북한에 대한 정보가 조금씩 축적되면서 한국의 시각이 많이 차분하고 냉정해진 것 같다. 다만 한국 언론의 북한 보도는 국정원이나 국회의원, 대북단체에 의존하는데 특정 방향으로 결론을 유도하는 정보도 섞여 있다. 이걸 검증할 수 있는 능력이나 평가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그는 북한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이었다. ‘2000년대 들어 갈수록 실망만 커지는 상태’라고 그는 표현했다. “김정은 시대로 접어들면서 체제가 더 취약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2012년 새로운 경제관리조치라는 걸 내놨는데 어느 정도 합리성은 있지만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있어요.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꿀 생각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 최근에 평양 사정은 좋아졌다는 이야기들이 많이 들린다.

“정확히 말하면 평양 이외는 포기한 상태다. 평양도 외형적인 변화는 있지만 협력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근본적으로 나아지지는 않았다. 지난해에는 평양 시민들에게 쌀배급을 거의 100% 했다. 하지만 비누, 양말 등 여타 생필품을 지급하지 않으니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시장에 들어가야 한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대에 배급제가 무너지고 많이 굶어 죽으면서 저절로 시장이 확대됐다. 이건 노동당이 지시한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다 알아서 배운 것이다. 북한이 관영매체를 통해 선전하는 평양은 기본적으로 연출된 무대일 뿐이다. 하지만 시장에서 돈과 물건의 유통이 활성화되면서 생활이 향상된 점도 분명히 있긴 하다. 지금 서방에 비치는 평양은 북한 당국의 연출과 시장경제의 발전이 반반씩 섞여 있는 셈이다.”

- 더 큰 문제는 김정은 체제가 결국 유일영도체제를 강화하는 쪽을 선택한 것 아닌가.

“김정일 사망 이후 북한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독재의 고도화’, 다시 말해 가장 낡은 방식의 유일영도체제를 포기하고 노동당 1당독재, 즉 본래의 공산주의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래야 개방·개혁도 가능하다. 하지만 지난해 유일영도체제 10대 원칙을 선포함으로써 가장 후진적이고 세계에서 통용되지 않는 체제를 선택했다. 절대주의 사회에선 새로운 움직임이 나올 수 없다. 지난해 장성택 처형은 이 체제를 더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 북한 내부에서 김정은의 유일영도체제에 순응할 것으로 생각하나.

“김정은 시대가 시작되면서 적지 않은 이들이 기대한 듯하다.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이 죽자 ‘10년 안에 변화가 올 것’이라고 중국인들이 기대했던 것과 비슷한 심리였던 것 같다. 하지만 2년이 지난 뒤 대부분 낙담하고 있다. 결국 인민들은 생각 안 해주고 김정일 시대보다 더 통제가 심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장성택 처형으로 체제에 대한 공포가 더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정은이 지도자가 아니라 ‘지배자’라는 생각이 많이 퍼지고 있다.”

■ 수요 줄어 어렵지만 좋은 뉴스 초심 여전

독립 저널리스트 집단이라는 조직형태를 20년 이상 꾸려나가면서 저축은커녕 빚만 쌓였다. 일본 방송들이 돈이 많던 시절엔 북한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으로 그런 대로 버텼지만 2008년 국제 금융위기 이후 수요가 급감했다. 최근엔 거래처를 넓혀 미국·영국·독일·한국 방송과도 일을 하고, 온라인 회원제도 도입했다. 북한인 저널리스트들이 직접 내부소식을 전하는 잡지 ‘림진강’의 판매량도 기대에 못 미친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좋은 북한 보도를 하겠다는 초심은 여전하다.

- 이 일을 20년간 지속하도록 해온 동력은 뭐라고 생각하나.

“기자를 하면서 당국의 발표에 의존하는 ‘발표 저널리즘’보다는 한 번도 세상의 빛이 비치지 않은 곳을 찾아내는 탐사 저널리즘을 하고 싶었다. 내가 만난 950명의 북한인들은 세상의 빛이 한 번도 비치지 않은 존재였다.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그들에게 빛이 되고 싶었다.”


Posted by 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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