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은퇴후 자선사업가로 더 유명
“통장에 많은 돈을 남기고 죽는 것처럼 치욕적인 인생은 없다.”
철강왕으로 불리는 미국의 기업가 겸 자선사업가 앤드루 카네기가 자신의 저서 <부의 복음>을 통해 한 말이다. 그는 부의 사회환원이 부자들의 신성한 의무임을 몸소 보여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화신이었다.
1835년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가난한 직공의 아들로 태어난 카네기는 1848년 가족과 미국으로 이민해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의 슬럼가에 정착한다. 13세부터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1853년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에 취직해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누리게 된다.
남북전쟁 이후 철강 수요의 증대를 예견한 그는 철도회사를 사직한 뒤 철강사업에 뛰어든다. 때마침 철도시대가 열리면서 철강산업이 대호황을 누리기 시작했고, 그의 사업도 승승장구했다. 1870년대에는 피츠버그의 제강소를 중심으로 석탄, 철광석, 광석운반용 철도, 선박 등을 수직계열화하는 철강트러스트를 만들고, 이어 1892년에는 세계 최대의 철강 트러스트인 카네기 철강회사를 설립했다. 66세가 되던 1901년 카네기는 나중에 US스틸이 되는 자신의 철강회사를 JP모건에 5억달러에 매각했다.
이후 사업 일선에서 은퇴한 카네기는 1919년 8월11일 세상을 떠나기까지 18년간 자선사업에 몰두했다. 뉴욕에 900만달러를 기부해 공공도서관을 세운 것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2509개의 도서관을 지었다. 또 미국의 과학발전을 위해 카네기 멜론대학의 전신인 카네기 과학연구원과 기술원을 설립한다. 시카고 대학 등 12개 종합대학과 12개 단과대학을 지어 사회에 기증했으며 각종 문화예술 분야에 거액을 쾌척했다. 자신이 평생 모은 재산 90%가량에 이르는 3억500만달러를 사회에 환원한 것이다. 그는 “많은 유산은 의타심과 나약함을 유발하고, 비창조적인 삶을 살게 한다”는 이유에서 부의 대물림을 혐오했다.
카네기의 자선활동은 ‘천민 자본주의’의 본산격이던 20세기 초 미국사회를 성숙시키는 데 일조했다. 미국에서 5만6000여개의 자선재단이 활동하고, 빌 게이츠 등 기업가들이 재산의 대부분을 자선활동에 쓰는 등 ‘기부 자본주의’가 미국에서 꽃피게 되는데 카네기의 영향은 지대했다. 카네기의 가르침이 가장 필요한 이들은 부의 대물림을 위해 불법도 서슴지 않는 한국의 재벌들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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