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오늘

[어제의 오늘]1996년 일본 배우 아쓰미 기요시 사망

서의동 2009. 8. 4. 00:20
ㆍ명절마다 열도의 심금 울린 ‘국민배우’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 최장기 시리즈 영화는 일본의 <남자는 괴로워>이다. 주인공 구루마 도라지로(車寅次郞)가 전
국을 떠돌며 겪는 에피소드를 내용으로 하는 이 영화는 1969년 쇼치쿠(松竹) 영화사가 첫회를 내보낸 뒤 1995년까지 36년간 48회에 걸쳐 제작되면서 일본을 대표하는 서민영화로 자리를 굳혔다.

일본의 국민배우격인 아쓰미 기요시(사진)가 분한 도라지로는 도쿄 북부의 서민 주거지역인 가쓰시카(葛飾)구 시바마타(柴又) 출신으로 16세때 부모님과 다투고 집을 뛰쳐나와 일본 전역을 떠돌아 다니는 방물장수다. 어이없는 말과 행동도 잘하고, 건달기도 있지만 본바탕은 인정을 품고 있는 인물형이다. 어느 날 불쑥 집에 돌아왔다가 다음날 훌쩍 가방 하나만 달랑 메고 유랑길을 떠난다. 여독에 지치면 여동생 사쿠라가 반겨주는 작은 아버지의 조그만 떡집으로 돌아온다. 동네 인쇄소 사장이나 근처 절의 스님들이 가끔씩 도라지로와 싸움을 하며 문제를 빚지만 이런 에피소드에서도 서민들 특유의 인정이 흐른다. 결코 미남이라 할 수 없는 도라지로는 유랑중 만난 미인들에게 연정을 느끼고, 여인들도 도라지로에게 호의를 갖지만 결실을 맺지 못한다. 때론 여인들이 매달릴 때도 있지만 도라지로는 여자의 행복을 빌며 길을 떠난다.

영화가 인기를 모은 것은 회사에 목을 매고 사는 보통의 일본사람들이 누리기 어려운 주인공의 자유분방함 때문이다. 전국을 떠도는 처지지만 돌아갈 따뜻한 가정이 있는 것도 관객들을 안심케 한다. 일본인들은 영화를 보며 인정과 로맨스, 자유로운 유랑의 미덕이 살아있던 지난날을 추억했다. 일본 각지에서 로케이션이 이뤄져 전국의 명승지들을 배경으로 한 것도 보는 재미를 더했다.

<남자는 괴로워> 시리즈는 1969년 8월 첫회가 시작된 뒤 1년에 한두차례씩 어김없이 제작됐고, 주로 설날이나 8월 명절 때 개봉돼 관객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했다. 영화가 인기를 모으면서 여동생으로 출연한 바이쇼 치에코(倍賞惠子)나 조카로 출연한 요시오카 히데타카(吉岡秀隆) 등도 국민배우의 반열에 올랐다.

주연을 맡은 아쓰미 기요시가 1996년 8월4일 폐암으로 68세에 죽었을 때 일본 정부는 그에게 국민영예상을 수여했다. 일본 매스컴은 “일본 서민들의 정서를 연기해 국민에게 기쁨과 온정을 주었다”며 경의를 표했다. <남자는 괴로워>의 무대가 된 시바마타역 앞에는 중절모를 쓰고 가방을 든 도라지로의 동상이 건립됐고, 다이샤쿠텐(帝釋天) 거리에는 영화와 각종 소도구들을 모은 도라 기념관이 세워져 관광객들을 불러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