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재일동포이야기(2) 자이니치와 '커밍아웃'

서의동 2014. 9. 14. 19:33

1편에서 재일동포의 진로가 야키니쿠, 빠친코, 야쿠자 등 세군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좁았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실제로는 연예계와 체육계에도 대거 진출해 있다. 다만 '커밍아웃'(재일동포임을 밝히는 것)을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이즈쓰 가즈유키 감독의 영화 <박치기2>를 보면 자이니치들이 연예계에 대거 포진해 있다는 대사가 나온다. 매년 12월31일 저녁 NHK가 방영하는 노래자랑 대결 '홍백가합전'도 자이니치가 없으면 성립이 안된다는 이야기는 업계의 정설처럼 돼 있다.


영화 <박치기>



특히 엔카가수 중에 재일동포들이 많다. 다만,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공개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일세를 풍미하던 유명한 엔카가수인 미야코 하루미(都はるみ)가 유일하게 자이니치임을 고백한 바 있다. 필자가 재일동포들을 상대로 확인한 결과 엔카가수인 이쓰키 히로시(五木ひろし)는 재일동포임이 확실시된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기무라 타쿠야(木村拓哉)가 속한 일본의 국민그룹  'SMAP' 멤버 중 상당수가 재일동포라는 설도 있지만 확인은 못했다.



오사카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프로야구팀 한신타이거즈 역시 재일동포가 아니면 유지가 되지 않을 정도라는 말이 나온다. 최근 은퇴한 한신의 베테랑 선수 가네모토 도모아키(金本知憲)는 재일동포 3세로 2001년 일본으로 귀화했다. 연예계와 체육계에 재일동포들이 많았던 것은 일반 기업에 취직하기 어려웠던 이유가 크다. 


연예인이나 체육인들이 재일동포가 많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동포사회가 의외로 좁아 금방 소문이 번지기 때문이다. 연예인이나 프로야구 선수들이 나오면 "아, 그 사람은 어디서 무슨 가게를 하는 누구네 집의 아들(딸)"이라는 식의 풍문이 재일동포 사회에서 도는데 대체로 사실에 부합한다고 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생모인 고영희도 재일동포로 그는 재일동포의 북송(귀국사업이라고 그들은 부른다)사업 당시 북한에 가족이 이주했다. 일본의 유명 가수겸 방송인인 와다 아키코(和田アキコ)의 어릴적 친구로도 유명하다. 재일동포들사이에서는 손마사요시(孫正義) 소프트뱅크 사장외에도 IT대기업 사장, 의류대기업 회장도 자이니치라는 풍문이 돈다. 


일본사회에서 활약중인 '숨은 재일동포'들이 많은 이유는 달리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의 통계를 보면 1945년 115만명에서 이듬해인 1946년 64만명으로 줄었다가 줄곧 50~60만명대를 유지해왔다. 2013년말 현재는 51만9737명이다.1944년 193만명에 달했던 재일동포들은 해방을 맞아 상당수가 한국으로 돌아갔고, 나머지 70만명 가까이는 일본땅에 정착해온 것이다. 물론 최근 통계에는 총련계열의 동포수가 제외돼 있음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어림잡아 70만명이 해방이후 70년가까이의 세월간 아이를 낳고 자손을 불려오면서 상당수가 귀화해 일본인으로 섞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일본 사회에서 재일동포라는 집단은 200만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일본인구의 2%가량을 차지하는 셈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각 분야에 자연스럽게 많은 재일동포들이 진출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들이 재일동포임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이니치로 알려지는 순간 받을 불이익이 두려운 것이다. 재일동포들이 특권을 갖고 있다고 착각하는 우익세력들의 시선도 부담이다.일본에서 최근 증오발언(헤이트 스피치)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자이톡카이(在特會)'는 '재일동포 특권을 용인하지 않는 시민모임'의 약자다. 이들은 재일동포들이 대부분의 상권을 쥐고 있는 파친코에 대해 정부가 규제를 강화할 것을 요구한다. 파친코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정치권을 지원한다는 의혹도 여전하다. 


생활상에서도 '커밍아웃'을 하기가 쉽지 않다. 불편할 뿐 더러 엄청난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한다. 일본의 재일동포 작가인 가네시로 가즈키(金城一紀)의 소설 <GO>를 보면 자이니치 고교생인 주인공이 사귀던 일본 여학생에게 재일동포임을 고백했다가 차이는 장면이 나온다.(물론 극단적인 예다) 이 여고생은 말한다. 


"우리 아버지가 그러는데 자이니치는 피가 더럽대." 


영화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극도로 예민한 사춘기에 이런 아픔을 겪는 사례들을 주변에서 흔히 봐온 재일동포들은 '커밍아웃'을 꺼린다. 학교에서는 본명 대신 일본이름을 쓸 수 있으니 일본이름으로 학교를 다니며 단짝친구에게도 좀처럼 '커밍아웃'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알고 지내던 재일동포는 고교 때까지 통명(일본명)으로 학교를 다니다 입학한 대학에서 통명을 쓰면 안된다는 규정 때문에 크게 쇼크를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어느 교수는 몇해전 아들을 잃었다. 자이니치로서 '정체성'을 고민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그가 정년을 몇년 앞두고 학교를 옮긴 데는 이 충격도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저런 사연을 접하다 보면 일본사회에서 한국명을 쓰고 당당하게 활동하는 재일동포들을 보면 존경의 마음이 저절로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