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련계 민족학교인 조선학교 학생들이 일본 고교 럭비대회에 출전해 분투하는 모습을 그린 <60만번의 트라이>가 국내에서 개봉됐다. 몇년전 홋카이도 민족학교 학생들의 생활상을 그린 다큐멘터리 <우리학교>가 크게 주목받은 적이 있지만, 두 영화 모두 '한국인'의 시선으로 본 재일동포들의 모습이다.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꽤나 이질적이면서도 신선한 감동으로 한국인들에게는 다가오는 것 같다.
다큐멘터리 <우리학교> 포스터
일본 체류기간 중 취재차 총련계 사람들을 여러차례 만나 그들의 생리를 조금쯤은 알 기회를 얻었다. 총련계 동포들은 대체로 조선학교를 나온다. 총련 활동가들로 분류되는 이들은 도쿄 근교에 있는 조선대학교를 졸업한다. 조선학교를 다닌 이들이 모두 총련 활동가가 아니냐고 오해하기 쉽지만 실상은 보통의 기업으로도 진출할 뿐 아니라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 조선대학교를 나온 이들중에서는 정식명칭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라는 조직에서 일을 하거나 조선학교 교사가 되거나 총련계 기관지인 <조선신보> 기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일본과 한국정부는 조선학교와 총련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물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재일동포들이 반드시 그런 이유로만 조선학교를 보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총련계 동포들에게 조선학교는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공동체'와 비슷한 존재로 보면 될 것 같다. 일본 각지에 조선학교 숫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조선학교에 다니는 동기들은 대부분 초중고교를 함께 한다. 언니나 오빠, 동생들도 10년 이상씩 같은 학교에서 보게 되기 때문에 이들간의 우애는 형제애에 버금갈 정도다.
학부모들도 대개는 어릴 적에 조선학교를 다녔기에 학교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때가 되면 열리는 동포들간의 축제는 동네에 있는 조선학교에서 열리는 것이 보통이다. 학생들의 춤, 노래를 보며 학부모들은 함께 캔맥주를 마시며 흥에 젖는다. 물론 학부모들도 예전에 같이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이다. 이런 '공동체'적인 분위기 때문에 <우리학교> <60만번의 트라이>가 한국팬들의 심금을 울리는 측면도 있을 것 같다.
일본에서는 총련계 학교를 둘러싼 신화가 있다. 그중 하나가 조선학교 학생들이 '주먹이 세다'는 것이다. 2011년 6월 도쿄 북쪽인 기타(北區)에 있는 도쿄조선고급학교(도쿄조고)의 축제를 취재한 적이 있다. 때마침 학교에서는 이웃 일본 데이쿄(帝京)고교와 공동 심포지엄이 열리고 있었다. 도쿄조고와 데이쿄고는 90년대까지만 해도 학생들간 집단 패싸움이 끊이지 않던 '견원지간'이었지만 2001년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으로 한·일 간 외교마찰이 빚어진 것을 계기로 ‘서로 만나 대화할 필요가 있다’며 교류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본 학생들에 조선학교 학생들은 '호전적'으로 비쳤던 것 같다. 2편에서 소개했던 영화 <박치기>를 보면 교토에 수학여행을 왔다가 조선학교 여학생들 놀리던 일본 고교생들이 조선학교 학생들에게 그야말로 '박살'이 나는 장면이 등장한다. 요즘도 "옛날에는 조선학교 학생들의 배지만 보면 일본애들이 겁을 먹었다"며 너스레를 떠는 재일동포들이 있지만, 생각해보면 차별속에서 단련돼온 이들이니 그럴 법 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건 12년간의 교육과정을 거친 만큼 총련계 사람들은 민단쪽 동포보다는 한국말(조선어)를 잘하는 편이다.(민단계열의 한국학교가 있긴 하지만 조선학교에 비해 숫자가 적고, 민단동포들의 상당수는 일본학교를 다닌다)
하지만 이들의 말은 엄밀히 말해 한국어와도, 북한에서 쓰는 말과도 다르다. <박치기>에서는 일본어로 '도시타노(どうしたの?)'라는 대사가 등장했는데 자막에 이를 '어떻게 했어?'라고 번역했다. '도시타노'는 한국말로 의역하면 '무슨 일이야?'쯤 된다. 하지만 이를 일본말 그대로 직역하면 '어떻게 했어'라는 의미불명의 말이 된다. 재일동포들 사이에선 통하지만 한국인들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이들의 언어는 오랜 기간 본국(남이든 북이든)으로부터 떨어진 상태에서 자체적으로 진화한 '갈라파고스적'인 언어라는 생각도 든다.
조선학교의 한 여학생이 일본 TV와 인터뷰하고 있다. "학교에선 조선말을 쓰는게 습관으로 돼 있습니다. 외국어를 쓴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조선학교 출신들이 민단 동포들에 비해 한국어 실력이 나으니 가끔 촌극이 벌어진다. 민단이 주최하는 한 행사장에 간 적이 있었다. 일본 내빈들과 한국 대사관 관계자들도 많았던 행사였는데 일본말과 한국말을 번갈아 하며 진행됐다. 그런데 두사람의 사회중 한국말을 담당하는 여성의 억양은 완전 북한식이어서 취재를 갔던 특파원들을 어리둥절케 했다. 이 여성은 어릴 적 조선학교를 다녔고, 그때 억양이 굳어졌던 것으로 추정됐다. (물론 민단계 동포들중에서 고교를 졸업한 뒤 한국 대학으로 진학한 이들도 적지 않고, 이들이 일본으로 돌아와 활동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민단 동포가 한국말에 서투르다는 것은 편견일지도 모른다)
조선학교를 나온 총련 동포들은 대체로 한국이름을 고수한다. 나중에 사정이 있어 총련을 이탈한 동포들도 대체로 한국이름을 쓴다. 반면 조선학교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에서 자라오다 보니 '우물안 개구리' 같은 문제도 있다고 한다. "가족같은 공동체의 테두리 내에서만 있다보니 세상물정에 어둡고, 일본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 조선신보의 자매지에서 일하다 수년전 일본 주간지로 직장을 옮긴 한 재일동포로부터 들은 말이다.
일본에서 민단과 총련의 대립을 마치 남북간의 대립과 갈등같은 것처럼 오해하는 경향이 없지 않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고려산천 내사랑>을 부른 재일 오페라가수 전월선은 총련출신이지만 한국에서도 활동하고 있다.도쿄에서 꽤 유명한 한국 요리집은 원래 총련계 음식점이지만, 한국인 유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일하기도 한다. 총련계 음식점과 한국인들이 차린 음식점은 메뉴에서 차이가 있고 조리법도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한국을 다녀온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한국식 메뉴를 도입하고, 한국인 손님들도 자주 찾고 있다.
조선학교에도 의외로 한국 국적자들이 많다. 자식교육 등을 이유로 한국국적을 취득하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총련 상공인단체의 간부들 중에도 자녀의 유학을 위해 한국국적을 취득한 이가 있는 것으로 정보당국자들은 전한다. 2012년 현재 일본내 73개 조선학교에 8000명 가량이 재학하고 있는데, 고교과정 재학생은 1800명 가량이며, 도쿄 조선중고급학교의 경우 470명의 재학생 가운데 53%가 한국 국적이다.
레이디스 코드 멤버로 교통사고로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권리세는 후쿠시마 출신의 재일동포 4세였다. 그는 총련계의 조선학교에 다녔고, 이 이력이 한국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권리세가 조선학교에서 우리말을 열심히 익힌 것이 한국에서 활동하는데 자산이 된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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