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메르스 사태 속 '원전 추가 건설' 계획

서의동 2015. 6. 8. 14:48

메르스로 온나라가 혼란에 휩싸여 있지만 이런 와중에 국가적 현안들이 졸속 처리될 가능성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이달중 확정할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5~2029년)도 그중 하나다. 전력수급계획은 정부가 향후 15년간 전력이 얼마나 필요한지와 어떤 방식으로 공급할지를 담는 것이다. 


신월성 1,2호기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회의에서 원전을 추가로 2기를 더 건설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지금도 발전소가 남아도는 데다 저성장 국면에서 원전을 추가로 짓겠다는 발상은 이해하기 어렵다. 오는 18일 관련 공청회가 열리지만 정부는 참석자가 많을 경우 ‘전력관련 업체, 유관단체·협회 대표자’ 등으로 참석대상을 제한하기로 해 의견수렴이 제대로 될지도 의문이다. 

 

잠시 원전의 문제점들을 살펴보자. 우선 사고 가능성이다. 한국은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겪은 일본과 달리 지진과 쓰나미가 없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국제원자력사고등급(INES) 평가에서 5등급 이상을 받은 대형사고는 대부분 자연재해와 무관했다. 1957년 10월 영국의 윈드스케일 원전은 수소폭탄 제조를 위해 필요한 삼중수소를 얻기 위해 원자로를 전용하다 화재가 발생한 인재(人災)였다. 1979년 3월 발생한 미국 스리마일 원전사고는 작업원의 실수, 1986년 4월 일어난 구 소련 체르노빌 원전사고도 기술자의 실수다.  

 

국내 원전에서도 크고 작은 안전사고와 고장, 비리가 끊이지 않았고, 이중 상당수는 은폐됐다. 2012년 2월 고리1호기에서 작업원의 실수로 12분간 전원이 완전히 차단되는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발전소장은 사고 발생 사실을 한달간 은폐했다. 2009년 3월 월성 1호기에서는 핵연료 교체과정에서 폐연료봉 다발이 파손되면서 연료봉 2개가 바닥과 수조에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치명적인 방사성물질이 누출됐지만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작업원 1명을 직접 현장에 들여보내 수습을 맡겼다. 작업원이 대량피폭을 당했을 개연성이 크고, 차폐문이 열리면서 방사성물질이 외부로 누출됐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한수원은 정부 보고는 물론 기록도 남기지 않은 채 5년간 은폐해왔다. 


2002년 4월에도 울진 원전 4호기에서는 원자로를 냉각시키는 증기발생기 전열관이 두동강 나면서 냉각수 45t이 13분간 유출됐다. 국내에서 가동 중인 원전 부품 중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경우는 지난해까지 2116건에 달한다. 지난해 12월에는 ‘원전반대그룹’을 자처한 해킹조직이 원전 운영사인 한수원을 공격하면서 내부자료가 유출됐다. 검찰은 지난 3월 “북한 해커조직의 소행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했을 뿐 수사는 미궁에 빠져있다.

 

가동 33년째를 맞은 월성1호기는 지난 2월 연장 가동이 결정됐지만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와 안전성평가보고서는 공개될 기약이 없다. 30년간 써온 수백만개의 부품과 170km에 달하는 배관, 1700km에 이르는 케이블이 온전하기만을 빌어야 한다.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는 처분장이 없어 못해 원전부지에 임시보관중이다. 지난 4월 타결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으로 사용후핵연료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건식재처리(파이로프로세싱)’ 연구의 길이 열렸다고는 하지만 건식재처리는 성공 전망이 불투명한 기술이다.  

 

핀란드의 온칼로에 있는 사용후핵연료 최종처분장 후보지는 단단한 암반을 지하로 400m나 파내려간 뒤 4㎢의 광장을 지어 만들었다. 하지만 다녀온 이들은 핵폐기물 영구처분의 희망을 갖기 보다 ‘보관기간이 최소 10만년 이상’이라는 아뜩한 현실에 절망한다. 2012년 이곳을 다녀온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일본 총리가 그랬다. “수천년전 피라미드에 새겨진 글자도 판독하기 어렵고, 수십년이 지나면 말뜻도 달라지는데 10만년 뒤의 후세에 ‘위험한 핵폐기물’이라는 경고를 과연 전달할 수 있을까?”(2013년 11월12일 일본 기자클럽 강연)

 

정부는 경제성을 내세워 원전을 더 지으려 하지만 폐로(廢爐)비용, 핵연료 사후처리비, 사고보상및 주민갈등 비용 등을 더하면 액화천연가스(LNG)발전보다도 비싸다. 원전이 온실가스는 화력·천연가스 발전보다 덜 배출할지 모르지만 인류에 치명적인 방사성물질과 핵폐기물을 양산한다. 원전을 더 지어야 할 실리도 명분도 없다. 정부는 메르스 사태를 틈타 얼렁뚱땅 처리할 생각말고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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