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용인에 갔다가 ‘그 유명한’ 용인 경전철을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 거대한 콘크리트 역사를 빠져나온 달랑 1량짜리 전동차가 고가선로를 달리는 모양이 어른 옷을 입은 아이처럼 어색해 보였다. 지난해 4월 개통된 용인 경전철은 하루 16만명이 이용할 것이라는 수요예측 보고서를 근거로 추진됐지만 개통 후 1년간 이용객은 하루 9000명이 고작이다. 경전철 건설로 막대한 적자를 지게 된 용인시는 직원 월급을 깎고 신규 사업을 중단해 버렸다. 용인뿐 아니라 경전철을 건설한 경기 의정부, 경남 김해도 사정은 엇비슷하다.
대중교통수단을 만들겠다며 대형토목사업을 일으켰다가 후유증을 남기는 사례는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형토목사업은 ‘관계자’들에게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우선 단체장은 치적거리가 생긴다. 건설업계는 대목을 맞는다. 지역경제에도 ‘낙수효과’가 생긴다. 자치단체로서도 관리하는 자리가 늘어나니 좋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관계자들 잔치’의 뒤치다꺼리는 지역주민들이 감당해야 한다. 주민 생활환경을 개선하거나 아이들 급식의 질을 높이는 데 쓰일 돈들이 건설비에 들어간다. 장기간의 공사에 따른 불편도 감내해야 한다. 더구나 자치단체가 수요예측을 부풀리고, 정부도 제대로 된 검토 없이 사업승인을 내준 탓에 결국 적자운행을 지속하면서 자치단체의 살림살이를 압박한다. 저출산으로 인구가 정체하고, 저성장으로 세수가 줄어드는 시대에 거대사업의 후유증은 더 커질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 새로 만들어진 대중교통수단들은 대체로 고령화 추세에 어울리지 않는다. 지하나 고가를 달리는 전동차는 노인과 장애인 등 교통약자가 이용하기 불편하다. 지하철역에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긴 하지만 충분치 않아 자칫하면 빙 둘러가야 이용할 수 있다. 그나마 심야에는 전력을 아낀다는 이유로 멈추는 일도 허다하다. 지하철역 계단에 장애인용 리프트가 설치돼 있지만 제대로 활용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지하철역 구내 에스컬레이터는 유모차의 접근이 금지돼 있다.
독일 자르브뤼켄 도심을 달리는 노면전차.
호주의 시드니는 1988년 건설해 25년간 운영해온 고가 모노레일을 지난해 철거했다. 승객이 적은 데 비해 유지비용이 많고, 타고 내리는 데 불편하기 때문이다. 사고 때 승객들이 탈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도 철거를 결정한 이유다. 대신 트램으로 불리는 노면전차를 도입할 계획이다. 트램은 지하철이나 고가 전철에 비해 건설비용이 싸다. 땅을 파거나 고가 구조물을 설치하는 대신 지상에 선로만 깔면 되니 공기도 짧다. 과거 노면전차와 달리 최근에는 휠체어나 유모차도 불편없이 승차할 수 있는 저상형이 보급돼 교통약자들이 이용하기 편리하다.
노면전차가 다니게 하려면 도로를 줄여야 한다. 자동차 운전자에게 저항감을 줄 수 있지만 도시정책이 사람에게 맞춰지려면 자동차가 불편을 감수할 필요가 있다. 유럽의 많은 도시들이 도로를 줄이고 노면전차를 도입한 것은 사람 위주로 도시정책을 바꾼 결과다. 노면전차가 다니면서 쇠락한 구도심이 다시 활성화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저출산·고령화와 저성장 시대를 동시에 맞고 있는 한국에서 새로운 대중교통수단의 도입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 신규사업을 최소화해야 하지만 불가피하다면 비용이 덜 들고 교통약자에게 편리한 수단을 도입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광주광역시의 선택은 실망스럽다. 광주는 도시철도 2호선 건설 여부를 5개월간 검토한 끝에 지하철을 건설하기로 했다. 1조9055억원에 달하는 건설비의 40%를 광주시가 부담한다. 150만명 남짓한 인구가 획기적으로 늘어날 것도 아니고, 재정여건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현실을 감안한 결정인지가 의문스럽다.
반면 광주와 인구 수가 엇비슷한 대전광역시는 도시철도 2호선의 기종으로 노면전차를 선택했다. 고가 자기부상 전철을 도입하자는 의견과 맞선 끝에 내려진 결정이다. 건설 비용이 6000억원가량으로 고가 자기부상 전철(1조3600억원)의 절반 이하다. 국내 광역도시를 순환하는 노면전차가 건설되는 것은 처음이다.
자동차 중심 도로체계에 노면전차를 도입하는 데는 시행착오도 있을 것이다. 벌써부터 도로잠식으로 교통체증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교통에 대한 철학과 발상을 바꾼다면 해봄직한 시도로 보인다. 수십년간 ‘자동차를 모셔온’ 한국사회도 이제 바뀔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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