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한일비교 (18) 드라마 심야식당과 일본의 동네 술집

서의동 2015. 7. 4. 17:53
일본의 드라마 <심야식당>이 인기를 끌면서 영화화되고 국내에서도 개봉됐다. SBS에서도 일본 심야식당의 컨셉을 그대로 빌려 드라마를 시작했다. 심야식당은 신주쿠 뒷골목을 배경으로 했는데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맨 처음 음악과 함께 등장하는 거리가 신주쿠다.

1.동네마다 한두곳은 있는 '동네 사랑방' 

일본엔 동네마다 이런 술집겸 식당이 한두곳씩 있다. 영화처럼 새벽까지 하는 심야식당은 아니지만, 내가 살았던 도쿄 오타구 우리동네(미나미쿠가하라)에도 저녁 6시부터 11시까지 하는 비슷한 가게가 있었다. 가게 이름은 '시로(城)' . 10평도 채 안돼 보이는 허름한 동네술집이다. 술집 내부도 수십년은 된 듯한 포스타가 벽에 걸려 있고, 화장실은 주저앉아 볼일을 봐야하는 옛날 식이다. 그런데 이런 허름함이 손님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입구는 미닫이 식이고, 노렌(상호가 그려진 천으로 가게 입구에 걸어놓는 것)이 걸려 있다. 10시반쯤 되면 노렌을 걷는데, 그러면 장사가 끝나간다는 표시다. 

주인(마스타라고 부른다)은 오키나와 출신의 60대 아저씨고, 홀서빙하는 아주머니도 60대(이름은 스기짱). 영화와 달리 테이블이 4개 쯤 있고, 주방을 둘러싸고 대략 7~8명쯤 앉을 수 있는 카운터가 있다. 일행이 많거나 하면 모르지만 대개 단골들은 대개 카운터에 앉아 마스타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술과 안주를 먹는다. 주로 동네 주민들이 많지만 전철역 한두 정거장 떨어진 곳에 사는 이들도 일부러 이곳에 와서 먹는 이들도 있다. 


일본에 놀러온 친구와 이 술집에서 한잔.


단골들은 주로 혼자왔다가 옆자리 손님들과 떠들고 함께 술을 마신다. 메뉴는 주로 야키도리, 말고기회, 감자샐러드, '고야참푸루'(오키나와 요리), 비엔나 소시지 구이, 니꼬미로 불리는 고기스튜 같은 걸 안주로 판다. 술은 주로 생맥주와 소주, 사케이지만 마스타가 보기에 술이 약간 취했다 싶은 손님들에게는 더 술을 팔지 않고 다독여 돌려보낸다. 카운터도 비좁고, 테이블도 4개 정도 밖에 안된다. 자리가  다 차지 않았더라도 분위기 유지를 위해 낯선 손님들이 우루루 몰려오거나 하면 아예 받지 않는다

2. 술집에서 단골되기 

나도 이 동네에 체류한지 1년반쯤 지나서 이 술집에 다니게 됐다. 처음엔 동네 주민들 대화에 끼기 힘들었다. 대체로 사람들이 이곳에서 단골이 되는 과정을 잠깐 소개하면, 혼자 와서 술을 마시다 옆자리에 누가 오면 대개 간단하게 목례를 한다. 그러다 카운터 단골들이 뭔가를 주제로 이야기를 하면 슬쩍 끼어들어 말을 조금 섞는다. 그러면서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무슨 일을 하는지 등등 자기 소개를 한다. 통성명은 그 과정에서 적당한 기회에 한다. 손님들간의 대화를 부드럽게 이어주는 역할은 마스타가 한다. 서로 모르는 손님들이 마스타를 매개로 알게 되는 경우가 주로 많다. 그래서 마스타의 역할은 거의 절대적이다. 홀서빙을 하는 아주머니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처음에 갔을 땐 말을 섞기 힘들어서 카운터 구석에서 술만 마시다 돌아갔다. 내가 외국인이란 사실을 설명하는게 매우 귀찮기도 했지만 우선 손님들 이야기를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단골인 60대 남자들의 일본어는 잘 알아듣기 힘든데다 술까지 들어가면 무슨 소린지 거의 못알아듣는다.

그러다 우연히 근처에 사는 한국인을 이 술집에서 만나게 됐다. 의료기기 사업을 하는 이 한국인은 이 술집에 거의 1주일에 한두번 오는 단골로 많은 손님들과도 안면을 익혀둔 사이다. 그날도 구석 카운터에서 뻘쭘하게 술을 마시며 손님들 이야기를 엿듣고 있다가 약간 어색한 일본어 발음이 들려오길래 봤더니 한국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무튼 이 한국인 덕에 내가 한국인이란 사실이 발각(?)됐고, 술집에 정식 데뷰하게 됐다. (아마 마스타나 손님들은 이미 내가 외국인이란 건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일본을 떠나면서 인사하러 들렀다가 한컷. 뒷줄 가운데가 마스타, 앞의 여성이 홀 서빙을 맡는 스기짱. 오른쪽은 이집 단골인 동네의사 아저씨.

이후 점차 '조렌(常連)'으로 불리는 단골이 되면서 2~3주에 한번꼴로 들르게 됐다. 아는 술집이 생기니 편리한 것도 많았다. 우선 동네 돌아가는 이야기는 물론 생활정보도 많이 얻게 됐다. 예를 들어 자동차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아는 정비소를 소개받거나, 무릎이 관절염이 걸렸을 때 병원도 소개받았다. 일본 사회의 물정을 아는데도 도움이 꽤 됐다. 어디를 여행간다고 하면 그 동네의 어느 관광지가 유명하고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이 동네 술집이었다.

3. 동네술집의 핵심적 존재는 '마스타' 

단골들은 대부분 60~70대 아저씨들이 많지만 가끔씩 30~40대 여성들도 찾아온다. 직업도 다양해서 의사, 도편수, 샐러리맨, 중소기업 사장도 있다. 내가 한국인이고 신문사 특파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일관계를 물어보는 아저씨들도 꽤 있었다. 

한국과 거래하는 70대 중소기업 사장과는 따로 저녁을 얻어먹기도 했다. 오키나와 출신인 마스타와 오키나와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알다시피 오키나와는 1972년 일본에 반환이 됐는데 그전까지는 미군정이라 일본에 가려면 여권이 있어야 했다거나 미군이 오키나와의 초등학교에 굉장히 여러가지 지원을 잘해줘 고마움을 느낀다거나 하는, 우리가 잘 모르는 오키나와 사정도 들을 수 있었다. 3년간의 특파원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기 전에 이 술집에 들러 작별인사를 하고 왔는데 일본에 나중에 가면 반드시 들러 술한잔 하고 싶은 곳이다. 

귀국하면서 한국에도 이런 동네술집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그런 곳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결정적인 차이는 마스타가 있느냐 없느냐인 것 같다. 마스타란 술집의 주인이자, 요리사이자 분위기 메이커이다. 나이 지긋한 마스타들은 그 동네에 거주하면서 동네사정을 환히 꿰고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같이 술도 한잔한다. 사장 따로 종업원 따로라는 식이면 이런 분위기는 성립할 수 없다. 다시 말하자면 술집을 대표하는 '얼굴'이 버티고 있느냐 없느냐가 동네술집의 핵심적인 요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