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관광선의 출항장면은) 매우 신기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1998년 11월21일 서울에서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기자회견에서 금강산 관광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클린턴은 11월18일 동해항에서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 등 826명의 승객을 태운 첫 배가 북한 장전항으로 향하던 장면을 호텔숙소에서 TV를 통해 지켜봤다. 전세계로 타전된 미 대통령의 이 한마디는 대북 강경론을 누그러뜨렸고, 한반도 상황을 우려하던 외국인투자자들을 안심케 했다.
11년 전 국민의 정부 출범 첫해의 상황은 매우 복잡했다. 취임 반년 만인 1998년 8월31일 북한은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에서 ‘대포동 1호’ 미사일을 발사했다. 미사일이 일본 열도를 넘어 1550㎞가량 날아가면서 미국과 일본여론은 끓어올랐다. 8월10일 북한의 금창리 지하 핵시설 의혹이 불거진 지 3주 만에 터진 2차 충격이었다.
대북 화해·협력 정책에 강력한 의지를 보여온 정부는 당혹해했지만 10월 금강산 관광사업을 승인했다. 외환·안보위기라는 이중의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금강산 관광이 순항하면서 대북정책에도 탄력이 붙었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6·15선언이 발표됐고, 2000년 8월 개성공단 사업합의도 성사됐다. 국제여론은 20세기 마지막 냉전지대 한반도에서 잇따라 발신되는 긴장완화 소식들에 주목했고, 한국의 투자 위험성도 자연스럽게 낮아졌다.
화해·협력정책은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긴장완화를 가져왔다. 장전항에 주둔해 있던 북한군 잠수함부대는 금강산 관광을 위해 원산항으로 후방 배치됐다. 임동원 당시 외교안보수석은 ‘피스메이커’에서 “북한군부가 강력하게 반대했으나 김정일 위원장의 결단으로 장전항이 개방됐다”고 회고했다. 개성공단 사업합의 이후 북한은 휴전선과 개성공단 사이에 있던 군부대를 14~20㎞가량 뒤쪽으로 물렸다. 개성공단이 유사시 서울방어를 위한 안전장치가 된 셈이다.
김 전 대통령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집권 10년 간 남북은 크고 작은 우여곡절에도 불구, 신뢰와 협력을 쌓았다. 그 결과 한반도 리스크는 크게 감소했다. 최근 북한의 돌출행동에도 금융시장 등이 별 영향을 받지 않고 있는 것은 지난 10년간의 세월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보수파들은 과거 정권이 ‘대북 퍼주기’에 치중했다고 비난하지만 화해·협력정책이 외환위기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을 극복하는 데 기여했음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관계는 긴장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업 프렌들리를 표방하고, 외국인 투자확대에 힘쓰겠다는 정부가 남북관계를 이런 식으로 끌고 가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어떤 정부가 진정한 ‘친기업’ 정부인지 묻고 싶다. 이명박 정부인가, 과거 두 정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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