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5년 단임제의 경제학

서의동 2009. 9. 21. 18:24
 국내총생산(GDP) 지표는 지난 수십년간 비판의 도마에 올랐지만 실은 GDP의 발명자인 사이먼 쿠즈네츠조차 이에 비판적이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쿠즈네츠는 이 지표가 남용되는 것을 개탄해 미국 연방의회에 “한 나라의 복지상태는 국가소득의 합계(GDP)에서 추정될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도 생전에 GDP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GDP에는 대기오염과 담배 광고, 앰뷸런스가 고속도로에서 사상자를 치우는 일, 삼나무 숲의 파괴와 슈피리어호의 죽음이 포함된다. 네이팜탄, 미사일, 핵탄두를 생산하면 GDP는 늘어나지만 가족의 건강, 교육의 질, 놀이의 즐거움은 포함되지 않는다. GDP는 다른 모든 것을 포함하지만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제외된다.”

GDP는 5년 단임 대통령제라는 기형적 권력구조를 가진 한국에서 그 폐해가 더 심각하다. 5년의 제한된 시간 내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 대통령들은 성장정책에 몰두한다. GDP의 수치를 올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은 안중에도 없고, 성장률을 빠르게 높이는 정책들에만 시선이 쏠린다. 이런 까닭에 수출 대기업 위주의 경제체제는 갈수록 공고해지고, 전체 고용의 80%를 수용하지만 수출기여도는 낮은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들은 외면받는다. 이명박 정부가 고환율 정책, 4대강 정비사업, 부동산 경기 부양에 그토록 매달려온 것도 어찌보면 GDP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기획재정부가 최근 상수원 인근에 회원제 골프장 건설을 허용키로 한 것은 GDP를 올리기 위해 부자들의 지갑을 열겠다는 성장지상주의의 표본이다. 상수원 보호는 GDP를 늘리는 것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도 GDP가 건 주술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균형발전이라는 국정 목표는 어느새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라는 숫자 구호에 자리를 내줬고, 참여정부 역시 대기업에 기반한 성장지상주의를 떨쳐버리지 못했다. 경제성장의 중심축을 수출에서 내수로 바꾸고, 성장-분배 간 연계를 강화하겠다던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못했다. GDP에서 수출비중은 2002년 36.6%에서 참여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47.7%로 더 높아졌고, 사회 양극화는 심화됐다.

정권에 주어진 5년은 경제체제의 불균형을 시정하는 ‘호흡 긴’ 정책을 추진하기엔 지나치게 짧은 기간이다. 이 기간에 총선거와 지방선거, 재·보선의 정치일정이 들어차 있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김대중 대통령의 구조개혁이 엉거주춤하게 마무리된 것은 2000년 4월 총선 때문이다. GDP와 5년 단임제는 최악의 조합이다. 이 조합 하에서는 정권이 성장률 높이기라는 쉬운 선택에 ‘올인’하는 악순환 구조가 깨지지 않고, 우리 경제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