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0여년간 우리 사회가 좌표로 삼았던 나라는 미국이다. 사회구조가 비슷한 일본의 성장경험을 서둘러 좇으면서도 시선은 늘 태평양 건너편을
향하고 있었다.
이런 편향은 외환위기 이후 더 심해졌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경제관료들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때 일본 법령이나
제도를 참고하곤 했지만, 외환위기 이후에는 이런 일이 사라졌다. 참여정부 때는 '아메리칸 스탠더드'를 곁눈질할 게 아니라, 아예 송두리째
본받자며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로 찬란해 보이던 미국의 경제제도는 긴 꼬리를 끌며 어둠 저 편으로 사라질 처지가 됐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영향력은 예전과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축소됐고,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시장근본주의의 구각(舊殼)을 깨기 위해 팔을 걷고 있다.
우리도 새로운 좌표를 찾아나서야 할 처지가 됐다. 하지만 정부 관료들은 낡은 좌표를 버리려 하지 않는 것 같다. 금융위기와
경기침체 이후 한국 경제가 어떤 틀과 내용을 갖춰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최근 정책을 보면 고민의 흔적이라고 할 만한 게
엿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부동산 경기부양, 감세와 규제 완화, 영리병원 허용 등은 친재벌·부유층 정책이기도 하지만 미국에서 이미 실패로 드러난
정책이다.
왜 관료들은 실패한 '미국식 프레임'을 답습하려는 것인가. 임금을 깎고 비정규직을 늘려 '덜 받으며, 더 노동하는'
식으로 혹여 경제가 살아나더라도 삶의 질과 무관하다는 걸 모르지는 않을 텐데.
'루저(Loser)'들은 죽거나 말거나, 성장률이 오르고
기업이 잘되면 그걸로 족하다는 것인가. 두 동강난 사회를 보듬는 '국민통합형 경제정책'은 우리 여건상 더는 가능하지 않다고 보는 걸까.
수십년간의 '관성' 때문에 내친 걸음을 멈추지 않는 걸까. 아니면 정권이 그어놓은 선을 넘지 않으려다 보니 사고가 마비된 것인가.
전대미문의 위기라는 지금 관료들의 권한과 책임은 더 막중해졌다. 시장이 실패했으니 정부에 힘이 쏠리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이다.
최근에 만난 한 경제원로는 "관료는 창의력과 상상력이 풍부한 예술가가 돼야 한다"고 했다. 보수·진보의 도식이나 선입견에 구애받지 말고
필요하다면 좌파정책도 갖다 쓸 줄 아는 소신을 갖춰야 위기를 헤쳐갈 관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감세로
재정건전성이 위협받고 있는데도 집이 세 채가 넘는 부동산 부자들의 세금을 깎겠다거나, 파업이 없어야 자동차 세제지원을 하겠다는 볼썽사나운 정책이
속출하고 있다.
관료들이 좀더 폭넓은 시각에서 치열하게 우리 경제의 대안을 고민했으면 한다. '가지 않은 길'에서 지혜를 얻을 줄도, 생각이 다른
이들에게 말을 걸 줄도 알아야 한다. 위기의 시대에 타성으로만 움직이는 관료들을 더는 보고 싶지 않다. 한때 대한민국을 이끌어간다고 자부하던
그들 아닌가.
2009-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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