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귀하신 몸’ 행세 사흘만에
들통
시사만화가 김성환 화백은 동아일보 1958년 1월23일자에 실린 네컷만화 ‘고바우 영감’으로 즉결심판에서 벌금형을 선 고받는다. ‘가짜 이강석 사건’으로 확인된 경무대의 위세를 비꼰 이 만화는 국내 언론사상 시사만화가 첫 필화사건으로도 기록된다.
그 전해인 57년 8월30일 밤. 한 청년이 대뜸 경주경찰서 서장실로 전화를 걸어왔다. “나, 이강석인데….” 국회의장 이기붕의 장남이자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인 이강석(李康石)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화들짝 놀란 경주서장은 청년이 기다리는 다방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귀하신 몸이 어찌 홀로 오셨나이까.” 황송해하며 연방 머리를 조아리던 서장에게 청년은 “아버지의 밀명으로 풍수해 상황을 시찰하고 공무원의 비리를 내사하러 왔다”며 천연스레 대꾸했다. 당시는 태풍 ‘아그네스’가 영호남 일대를 강타해 피해가 속출하던 무렵이었다.
경주서장은 청년을 최고급 숙소로 모셨고, 다음날 업무를 팽개친 채 경주시내 관광지로 그를 안내했다. 다음 행선지인 영천에서도 청년은 경찰서장의 극진한 환대를 받았고, 안동에서는 지방유지들로부터 여비와 수재의연금 명목으로 거액의 돈까지 챙겼다. 대구에서는 경북도경 사찰과장이 칠곡까지 마중나와 안내했고, 이 청년을 도지사 관사에서 묵게 했다. 하지만 청년을 미심쩍어하던 경북 도지사가 이강석과 동기동창인 아들을 불러 확인한 결과 가짜임이 확인됐다. 경북지역 관가를 발칵 뒤집어 놓은 가짜 이강석 소동은 사흘 만인 9월1일 마무리됐지만 이 사건으로 ‘귀하신 몸’이 유행어로 떠올랐다.
자식이 없던 이승만 대통령은 83세 생일이던 57년 3월26일 이강석을 양자로 입적했다. 당대 2인자의 장남에 대통령의 양자까지 된 이강석은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실세 중의 실세로 군림했다. 징역 10월이 선고된 ‘가짜 이강석’ 강성병(당시 22세)은 법정에서 “언젠가 신문을 보니 서울 명동파출소에서 이강석이 헌병의 뺨을 때리고 행패를 부려도 아무일이 없음을 알게 됐다. 이강석이라면 무엇이든 통하는 세상이라고 믿었다”고 진술했다.
진짜 이강석은 4·19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선언을 하던 60년 4월26일 아버지 이기붕과 어머니 박마리아, 동생 강욱 등 일가족을 권총으로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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