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흥길의 소설 <완장>에서 땅투기로 돈을 번 최사장은 마을 저수지의 사용권을 따내 양어장을 만든 뒤 마을 한량 임종술에게 감시역을 맡긴다. 임종술은 노란 바탕에 ‘감독’이라는 파란 글씨를 새긴 비닐 완장을 찬 뒤부터 안하무인이 돼 마을 사람들에게 쥐꼬리만한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신분이나 지위를 나타내기 위해 팔에 두르는 완장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압제와 학정, 공포통치의 상징물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일본군 헌병들이 흰 천에 ‘憲兵(헌병)’을 붉은 글씨로 새긴 완장을 차고 ‘불령선인’들을 색출했다.
다음달 3일로 70년을 맞는 제주 4.3 당시 사진기록을 보면 한 학교 운동장에서 팔에 완장을 두른 정부측 심문반원이 주민들중 유격대 협력자를 가려내는 장면이 있다. 완장찬 이의 마음먹기에 따라 생사가 갈렸던 그 시절 주민들은 완장만 봐도 벌벌 떨었다.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과 국군이 공방을 벌이면서 주민들은 양측의 ‘완장’들에게 번갈아 시달렸다. 권력의 끄나풀들이 완장을 차고 우쭐해져서 과도한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SNS 공간에서는 ‘완장찼다’ ‘완장질’이란 말이 곧잘 쓰인다. 별 능력이나 권위가 없는데도, 월권행위를 비꼬는 말이다. 근현대의 역사적 기억이 함축된 단어다.
세계적으로도 권위주의 통치시기 완장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는 왼쪽 팔에 하켄 크로이츠 문양이 새겨진 붉은색 완장을 찼고, 친위대(슈츠슈타펠)와 청소년 조직인 히틀러 유겐트 대원들에게도 완장을 채웠다. 중국 문화대혁명에서 홍위병들에게 채워진 붉은 완장은 광기를 부추기는 에너지원이었다. 윤흥길의 <완장>에서 작부 부월은 완장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일깨운다. “눈에 뵈는 완장은 기중 벨볼일 없는 하빠리들이나 차는 게여! 진짜배기 완장은 눈에 뵈지도 않어! 권력중에서도 아무 실속없이 넘들이 흘린 뿌시레기나 주워먹는 핫질 중에 핫질이 바로 완장인 게여!”
최근 중국에서 아파트 경비원이나 대형건물 주차요원, 시내버스나 지하철 안내원들이 붉은 완장을 차기 시작했다고 한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절대권력을 쥐면서 권위주의 체제가 강화되는 흐름과 완장문화 확산이 무관치 않아 보인다. 중국인들이 윤흥길의 <완장>을 한번쯤 읽어보면 좋겠다.(2018년 3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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