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여적] 북한의 사과

서의동 2018. 4. 4. 19:08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빠른 속도로 복구와 재건에 성공했고, 1960년대에는 상당한 정도의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확립된 주체사상은 1990년대 경제난 심화로 위세를 잃었지만 여전히 북한의 유일지배 체제를 떠받치는 이념이다. 주체사상의 핵심 중 하나는 ‘수령은 오류가 없으므로 그의 교시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수령론이다. 천황을 ‘아라히토가미(現人神·사람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난 신)’라며 숭배하던 일본 군국주의 사상과 판박이다. 그런 북한에서 지배층이 고개를 숙이는 이변이 생겼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1월1일 조선중앙TV를 통해 방영된 육성 신년사에서 자신의 ‘능력부족’을 자책했다. 김정은은 “언제나 늘 마음 뿐이었고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 한 해를 보냈다”고 했다.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쇼와 천황이 ‘인간선언’을 한 것과 마찬가지다. 2014년 5월에는 평양 평천구역 아파트가 붕괴되자 최부일 인민보안부장은 피해가족과 시민들에게 “이 죄는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으며 용서받을 수 없다”며 사과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간부가 주민들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는 사진을 실었다. 

 

북한이 사과와 유감표명을 한 전례가 없지는 않다. 김일성 주석은 1972년 5월2일 평양을 극비 방문한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에게 1968년 1월 청와대 습격사건에 대해 “박 대통령께 대단히 미안한 사건이었다”고 사과했다. 1976년 8월 ‘판문점 도끼살인 사건’ 당시엔 김 주석이 유감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외관계가 아니라 주민들을 상대로 공개적으로 과오를 시인하고 자책한 사례를 찾기는 어렵다.

 

북한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남측 예술단의 평양 공연 당시 취재진의 공연장 입장이 제한된 것에 대해 지난 2일 사과했다. 김 부위원장은 취재진이 있는 고려호텔에 나타나 “북측 당국을 대표해서 이런 일이 잘못됐다는 것을 사죄라고 할까, 양해를 구한다”고 했다. 남측 언론에 대한 불신이 강해 과거에도 취재를 제한하며 애를 먹이기 일쑤이던 북한이 이처럼 신속하게 사과한 것은 처음이다. 이유야 어찌됐건 지금 북한은 ‘사과할 줄 아는 나라’가 됐다. (2018년 4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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