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여적]비단섬

서의동 2019. 8. 4. 12:23

2018.07.01 

2002년 9월23일 북한은 전 세계가 깜짝 놀랄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서북쪽 국경도시 신의주 일대를 경제특구로 지정하고 독자적인 입법·사법·행정권을 부여하겠다는 ‘신의주 프로젝트’다. 초대 행정장관에는 화훼·부동산 사업으로 거부를 쌓은 중국계 양빈(楊斌) 어우야그룹 회장을 내정했다. 양빈은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초대 법무장관을 유럽인으로 임명하고 영어·중국어·한국어를 공용언어로 사용하며 달러를 공식화폐로 하겠다고 밝혔다. 신의주를 ‘북한의 홍콩’으로 만드는 파격적인 구상이었다.

 

발표 시점도 절묘했다. 일주일 전인 9월17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일 정상회담을 하고 조속한 국교 정상화에 합의한다. 다음날인 18일에는 경의선·동해선 연결공사 착공식이 휴전선 양측 지역에서 열리는 등 한반도 정세가 변화의 급물살을 타던 때다. 하지만 10월4일 중국 당국이 양빈을 탈세와 주가조작 등 혐의로 긴급 체포하면서 신의주 특구계획은 좌초했다. 16년이 지났지만 사태의 내막은 베일에 싸여 있다.

 

북한은 중국에 인접한 신의주 일대에 일찌감치 공을 들여왔다. 김일성 주석은 1958년 압록강 하구에 있는 신도, 마안도 등 5개의 섬과 무명평 일대의 간석지를 둑으로 연결해 여의도 7배 크기의 인공섬(면적 64㎢)을 만들고 ‘비단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비단섬과 황금평, 서호섬 등을 묶은 것이 신도군이다. 2006년 중국을 방문한 김정일 위원장은 신도군을 중국 경제특구처럼 개발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북한은 이어 2011년 6월 황금평·위화도를 ‘황금평 경제지대(특구)’로 지정하겠다는 구상을 내놓고 이듬해인 2012년 8월14일 북·중은 베이징에서 황금평 특구 착공식을 성대하게 열었다. 하지만 사업을 주도해온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 처형되면서 투자유치가 중단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30일과 1일에 걸쳐 신도군과 신의주를 방문했다. 세번째 방중(6월19~20일) 이후 첫 공개활동을 국경지역에서 한 것은 북·중 경제협력을 염두에 뒀다는 관측을 낳는다. 두차례 우여곡절을 겪은 북·중 특구계획의 세번째 도전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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