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여적]아베의 북 위협 부풀리기

서의동 2019. 8. 4. 12:27

2018.08.28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주민들은 지상전(오키나와 제외)은 면했지만, 미군의 공습에 시달려야 했다. 1945년 3월10일 도쿄대공습으로 8만3793명이 죽고, 4만918명이 다쳤으며 도쿄 동부지역 일대가 괴멸됐다. 심야에 도쿄 상공에 진입한 미군 B-29 폭격기 279대가 38만발의 소이탄과 네이팜탄을 퍼부어 목조가옥이 밀집한 ‘시타마치(下町)’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국제사회에선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투하의 기억이 강렬하지만 도쿄 주민들에게는 도쿄대공습이 더 원초적인 전쟁기억이다. ‘낯선 것이 공중에서 침입하는’ 공습(空襲)은 일본인들에게 근원적인 공포감으로 자리잡았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공습 트라우마’를 되살려 낸 건 북한의 미사일이었다. 1998년 8월31일 발사된 대포동 1호 미사일이 일본 쓰가루 해협 인근 태평양 해역에 떨어졌다. 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통과한 사실이 밝혀지자 일본 사회는 충격을 받았다. 장기 평화로 ‘안보불감증’이 만연했다는 보수우익들의 목소리가 커지며 재무장에 시동이 걸렸다. 북한 미사일 개발의 최대 수혜자는 단연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였다. 북한의 위협은 안보법안 통과, 공격형 무기 도입의 명분이 됐고, 스캔들로 곤경에 처한 아베를 번번이 구해냈다. 얼마 전까지 미사일 대피 훈련도 실시했다. 태평양전쟁 당시를 방불케 하는 경보시스템을 가동해 공포감을 자극하고 ‘전쟁감각’을 키우려는 속셈이 엿보인다.

 

올 들어 북한이 대화노선으로 전환했음에도 북한을 재무장 지렛대로 쓰려는 관성은 여전해 보인다. 28일 일본의 ‘2018년 방위백서’를 보면 북한에 대해 ‘전에 없는 중대하고 절박한 위협’ ‘지역 및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현저하게 손상’이라고 썼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개최와 핵 실험장 및 미사일 발사장 폐기조치 등 정세 격변에 비춰보면 과도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육상배치형 요격미사일 시스템 같은 첨단무기 도입을 위해서는 없는 위협이라도 만들어내야 하는 모양이다.

 

일본은 과거 동아시아 평화담론의 중심지였다. 이를 기억하는 한국인들도 적지 않다. 이제 일본도 한반도 평화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대외전략을 재검토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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