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여적]‘질풍노도’ 노인세대

서의동 2019. 8. 4. 12:26

2018.08.23 

2007년 60대 어부가 남녀 대학생 4명을 잇따라 살해한 사건은 영화 소재가 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69세의 노인이 자신의 배에 탄 여대생을 상대로 성욕을 채우려고 악마로 돌변했다. 고령임에도 어부 특유의 완력으로 바다 환경에 익숙지 않은 청년들을 잔혹하게 유린해 ‘가해자=청년, 피해자=노인’이란 통념을 바꿔놨다. 이듬해 2008년 2월에는 토지보상에 불만을 품은 채모씨(70)가 국보 1호 숭례문을 불질러 전소시켰다. 2014년 5월 일어난 전남 장성 요양원 화재와 서울 지하철 3호선 도곡역 방화 사건의 범인도 70~80대 노인이었다. 이제 ‘질풍노도’는 청소년이 아니라 노년세대에 붙여야 할 수식어가 돼버린 건가.

 

노인범죄의 급증세는 통계로도 뒷받침된다. 최근 5년간(2012~2017년) 살인·강간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65세 이상 노인이 연평균 24% 증가했다. 전체 강력범죄 피의자 증가율(연평균 4.2%)의 6배다. 10~30대의 범죄건수는 줄어드는 반면 노인범죄는 가파른 상승세다. 분노와 갈등을 소통으로 풀지 못해 발생하는 범죄들이 특히 두드러진다. 지난 21일 경북지방에서 발생한 엽총 살인 사건의 범인 김모씨(77)는 경찰에서 “늙은이라고 무시하는 것 같아 죽이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4년 전 귀농한 김씨는 2년 전부터 이웃과 상수도 및 쓰레기 소각 문제로 갈등을 빚었고, 면사무소의 민원처리가 미온적인 것에 불만을 품어왔다고 한다. 집 마당에는 산탄총 탄피가 흩어져 있고, 구멍이 뚫린 종이상자도 발견됐다. 전원생활의 꿈을 이루기는커녕 마을에서 고립된 채 증오만 키워왔던 셈이다.

 

한국 사회의 노인들은 격변하는 시대의 가치관을 따라잡지 못하는 소외감과 나이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한 데 따른 불만이 크다. ‘장유유서’는 언감생심이고 ‘틀딱충’ 소리나 듣지 않으면 다행이다. 반면에 신체는 과거 40~50대와 맞먹을 만큼 건강하다. ‘행동하는 앵그리 실버(Angry Silver)’가 세를 키울 최적의 토양이다. ‘태극기 집회’가 1년 넘도록 이어지는 이유도 여기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노인 들의 질풍노도는 빠르게 고령화하는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또 다른 숙제다. 범사회적인 심층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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