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11
‘축지법 축지법 장군님 쓰신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천하를 쥐락펴락/ 방선천리 주름잡아 장군님 가신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축지법을 쓰며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는 북한 노래다. 황당무계하지만 그 정도로 북한에서 최고지도자 신격화는 심각했다. 김일성 주석이 항일투쟁 당시 일본군에 쫓기다 강에 가로막히자 가랑잎을 물에 띄워 타고 건넜고,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었다는 신화는 익히 알려져 있다. 이런 터무니없는 신격화는 김일성의 항일운동 경력까지 의심토록 하는 역효과를 낳았다.
스위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북한을 칭칭 동여맨 비정상적 관행에 거부감이 컸던 것 같다.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 한 해를 보냈다”며 고개를 숙인 2017년 신년사에서 허울에서 벗어날 뜻을 비쳤다. 지난해 북한군 창건기념일을 김일성이 항일유격대를 조직한 날(4월25일)에서 원래의 2월8일로 되돌린 것도 ‘비정상화의 정상화’의 한 예다.
지난달 27~28일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또 한번의 파격을 연출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단독회담장에서 ‘협상을 타결할 자신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나의 직감으로 보면 좋은 결과가 생길 거라고 믿는다”고 답변한 것이다. “김 위원장이 입을 열자 디즈니 만화 같던 허울이 사라졌다”(워싱턴포스트 데이비드 나카무라 기자)고 할 정도로 취재진들에겐 초현실적인 장면이었다.
김 위원장이 하노이에서 귀국한 뒤 첫 메시지에서 경제발전에 대한 강조와 함께 ‘수령 신비화’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 역시 예사롭지 않다. 지난 6~7일 당 초급선전일꾼대회에 보낸 서한에서 “수령은 인민과 동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인민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헌신하는 인민의 영도자”라며 “수령의 혁명활동과 풍모를 신비화하면 진실을 가리게 된다”고 했다. 최고지도자에 대한 신격화 관행을 없앨 것을 예고한 셈이다.
북·미 합의 무산 뒤 김 위원장은 평양행 열차 안에서 갖가지 상념에 휩싸였을 것이다. 그 58시간 여정 끝에 나온 첫 메시지가 정상국가로 한발짝 더 나아가겠다는 것이니 반길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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