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치세에 붙이는 연호(年號)는 근대 이전의 동아시아에서 널리 사용돼 왔다. 중국은 한무제의 ‘건원(建元)’으로 시작해 청조 말까지 연호를 사용했다. 한국에서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영락(永樂)’으로 시작해 대한제국의 ‘광무(光武)’로 끝났다. ‘천황제’가 남아 있는 일본만이 서기 645년 도입한 이래 1400년 가까이 연호를 유지하고 있다.
왕이 바뀔 때마다 해를 세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우선 연호로는 미래나 과거를 표현하기가 곤란하다. 예컨대 서력 2048년은 연호로는 ‘헤이세이(平成) 60년’이 되지만 일왕 교체가 기정사실이 된 현재 시점에서는 쓸 수 없다. 그렇다고 다음달부터 시작되는 새 연호를 빌려 ‘레이와(令和) 30년’이라고 할 수도 없다. 서력으로는 먼 과거를 ‘기원전 50년’ 등으로 나타낼 수 있지만 서기 645년에 도입된 일본 연호로는 기원전을 특정할 수 없다.
왕이 바뀌는 해의 연호가 두 개인 것도 혼란스럽다. 메이지(明治) 일왕을 승계해 다이쇼(大正) 일왕이 즉위한 1912년은 다이쇼 원년이자 메이지 45년이다. 쇼와 일왕이 즉위하던 1926년은 다이쇼 일왕이 12월25일에 사망하는 바람에 쇼와 원년은 1주일 만에 끝났고, 1927년 1월부터는 쇼와 2년이 됐다. 이런 사정 때문에 ‘메이지 20년에서 헤이세이 10년까지’라고 하면 몇년이 지난 건지 계산이 복잡해진다.
일본 체류 외국인들은 외국인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을 만들 때 생소한 연호 탓에 한번씩 애를 먹는다. 대개의 행정서식은 연호만을 쓰도록 돼 있어 1966년생이라면 ‘쇼와(昭和) 41년’으로 표기해야 한다. 연호 사용은 법으로 의무화돼 있지 않지만 행정서식뿐 아니라 사문서에도 광범위하게 쓰여 사실상 강제나 다름없다.
일본인들조차 불편해하는 연호를 유지하는 이유는 ‘만세일계(萬世一系·일본 황실의 혈통이 단 한번도 단절된 적이 없다는 주장)’라는 ‘천황제’를 고수하려는 국수주의적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새 연호 ‘레이와’를 중국 고전이 아닌 일본 고대 시가집 <만요슈(万葉集)>에서 따온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전통을 고수하더라도 글로벌 시대에 맞게 연호와 서력의 병기를 의무화하는 정도의 유연성은 보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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