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여적]코미디언 출신 대통령(2019.4.22)

서의동 2019. 8. 9. 23:35

코미디언 출신인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 경향신문DB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일본 미야자키(宮崎)현 지사를 지낸 히가시고쿠바루 히데오(東國原英夫·61)는 코미디언 출신이다. 기타노 다케시가 이끄는 ‘다케시 군단’에서 만담으로 인기를 얻은 그는 지사가 된 뒤에도 방송에 나와 구수한 입담으로 지역 홍보에 발 벗고 나섰다. 그 덕에 미야자키의 토산품 판매가 껑충 뛰었고, 그가 ‘태양의 달걀’이라고 이름 붙인 미야자키산 망고는 유명 브랜드가 됐다. 비효율적인 공공사업을 통폐합하는 등 혁신행정으로 지지율이 한때 90%까지 치솟았다.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 시장을 지낸 욘 그나르(52)는 정치인 풍자공연을 해오다가 친구들 권유로 ‘베스트당’을 창당했다. 그는 선거에서 시의 재정위기를 비꼰 무리수 공약을 내건 뒤 ‘공약을 지키지 않겠다’는 공약을 추가했는데 이유가 걸작이다. “다른 정당들이 거짓말을 숨기는 것과 달리, 우리는 그것을 숨기지 않을 거니까요.” 그는 4년간 시장직을 훌륭하게 수행한 뒤 정계를 떠났다.

 

정치에서 코미디언들의 약진은 세계적 현상인 듯하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풍자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는 ‘웃음정치’가 성공요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슬로베니아 총리에 취임한 마르얀 세렉(41)은 정치인 성대모사로 인기를 얻었다. 코미디 영화로 인기를 얻은 지미 모랄레스 과테말라 대통령(50)은 2015년 대선에 출마해 “20년간 사람들을 웃겨왔다. 최소한 국민들을 울리진 않겠다”고 했다. 우크라이나에서도 코미디언 출신 대통령이 탄생했다. TV드라마에서 평범한 학교 교사가 정부 부패에 열변을 토한 영상을 올렸다가 폭발적 지지로 대통령이 되는 과정을 열연한 배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41)가 21일(현지시간)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압승했다.

 

기성권력에 웃음은 위험하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 늙은 수도사 호르헤가 수도원 서고에서 발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 책장마다 독을 발라 다른 수도사들을 죽게 한 이유는 ‘웃음으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책의 주장이 가당찮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오직 고행과 수도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진리를 웃음으로도 도달할 수 있다니. 그런데 그 가당찮은 일이 정치에서 벌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