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미국에서 공화당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한·미 외교가에서는 ‘ABC’라는 용어가 유행했다. ABC는 ‘Anything but Clinton(클린턴만 아니라면)’의 약자로, 전임 빌 클린턴 행정부의 정책은 일단 부정하고 보는 태도를 가리킨다. 클린턴 대통령과 궁합을 맞춰 대북 햇볕정책을 추진해온 김대중 정부에 네오콘(신보수주의)을 표방하는 부시의 집권은 재앙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부시는 9·11테러사건을 계기로 이라크, 이란과 함께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더니 클린턴 행정부의 ‘북·미 제네바 합의’를 파탄내고 2차 북핵위기를 촉발시켰다. 제네바 합의는 북한은 핵을 동결하고 미국은 그 대가로 경수로형 원자력발전소 2기를 건설해주는 한편 장기적으로 국교정상화를 하기로 한 합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전임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정책을 뒤집고 있다. 이른바 ‘ABO(Anything but Obama)’다. 트럼프는 5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및 독일이 이란과 2015년 체결한 ‘이란 핵협정’에서 지난해 5월 탈퇴했다. 이란이 핵개발을 포기하는 대가로 미국과 유럽연합이 이란에 부과한 제재를 해제하기로 한 합의다. 트럼프는 오바마 정부의 대이란 정책은 부정하면서도 오바마가 ‘전략적 인내’라는 명목으로 방치해온 북한과의 협상에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협정에서 탈퇴한 지 1년이 된 지난 8일 이란은 향후 60일 내 금융-석유제재를 풀지 않으면 핵합의 일부를 파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미국은 추가제재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을 즉각 발동하면서 강 대 강으로 치닫고 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까지 불사할 태세여서 미국의 중동정책이 도전에 직면했다.
북한도 미국과의 협상이 교착되자 지난 4일 단거리 발사체를 쏘아올리며 미국을 압박했지만 미국은 온건대응으로 넘어갔다. 이란, 북한 두 나라와의 동시 ‘핵갈등’을 트럼프 행정부는 부담스러워 할 것이다. 북한으로선 기회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란 핵협정이 불충분하다며 탈퇴한 트럼프가 북한과는 관대하게 협상을 마무리 지을까. 모를일이다. 물론 어느 쪽이든 다음 정권에 의해 뒤집힐 수 있다. ‘ABT(Anything but Trump)’가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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