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여적]나토의 동진과 러시아(2019.4.4)

서의동 2019. 8. 9. 23:34

정교회 미사에서 성호를 긋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경향신문DB 

베를린 장벽 붕괴 두 달여 뒤인 1990년 1월31일 한스디트리히 겐셔 서독 외무장관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대해 “독일 통일 뒤 동쪽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동독에 주둔하던 소련군이 물러날 명분을 제공한 것이다. 미국도 ‘나토의 동진(東進)’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나토의 현상유지’ 약속은 몇년 지나지 않아 휴지조각이 돼버렸다. 폴란드, 헝가리, 체코, 루마니아 등 동유럽 국가들을 속속 나토에 가입시키며 동쪽으로 세력권을 넓힌 것이다. 급기야 러시아와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인 우크라이나까지 나토 가입을 추진하자 러시아가 실력행사에 나섰다. 러시아는 2008년 조지아 침공에 이어 2014년 3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양국의 공동영해 케르치 해협을 통과하려던 우크라이나 함정 3척을 나포했다.

 

우크라이나는 동슬라브족에게 문명의 고향이자 러시아의 뿌리와도 같은 곳이다. 5세기에 형성된 고도(古都) 키예프(우크라이나 수도)가 1240년 몽골 침입으로 쑥대밭이 되자 주민들이 동북부로 이주해 건설한 것이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다. 모스크바 공국에서 출발해 제국으로 성장한 러시아는 18세기에 우크라이나를 병합했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소련 붕괴로 독립했지만 크림반도에 러시아의 흑해함대 기지가 있고, 유럽을 잇는 가스관이 통과하는 등 러시아의 대유럽 관문이다. 역사문화적·지정학적·군사적 가치가 다양하게 얽혀있는 셈이다.

 

1949년 창설된 나토가 4일로 70주년을 맞았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지난 3일(현지시간) 미 의회 연설에서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 동맹을 강화하고, 방위비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은 방위비 분담 문제를 놓고 불협화음이 커지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이 유럽군 창설 논의에 나서고, 터키의 러시아제 미사일 도입 움직임도 미국을 자극하고 있다.

 

나토가 맞이한 시련은 냉전 종식으로 이미 존재의의를 상실한 ‘낡은 동맹’을 유지·확대하려는 욕심이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나토 현상유지’ 약속을 서방이 파기한 것이 불씨였다는 점에서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