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여적]바둑과 한·일관계(2019.5.20)

서의동 2019. 8. 9. 23:37

조치훈 9단 경향신문DB

일본이 바둑의 최강국이던 1960~1970년대엔 한국의 바둑 인재들이 일본으로 줄줄이 유학을 떠났다. 1962년 세계 최연소(9세) 프로기사가 된 조훈현 9단(66·현 자유한국당 의원)도 열살이던 1963년 일본에 갔다. 당시 한·일 간 기력 차가 상당해 한국에서 프로 입단을 했는데도 일본에서는 연구생 4급으로 시작해야 했다. 조훈현은 원로인 세고에 겐사쿠 9단의 내제자가 됐다. 이국 생활의 어려움을 견뎌가며 바둑 공부에 정진해 일본 바둑계의 촉망받는 신예기사로 성장했다.

 

9년 만에 귀국한 조 9단은 얼마 안 가 국내 기전을 휩쓸며 정상에 올랐다. 동갑내기 국내파 서봉수 9단과 라이벌전을 펼치며 바둑팬들을 열광시켰고, 또 다른 ‘바둑계의 별’ 이창호 9단을 길러냈다. 한국 바둑은 어느덧 실력에서 일본을 압도하면서 이제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유학을 오고 있다. 일본의 8세 소녀 나카무라 스미레가 지난해 바둑유학을 왔다. 나카무라는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공부한 뒤 지난 4월 일본 기원에서 최연소로 프로에 입단했다.

 

한·일 바둑계에서 가장 독특한 존재는 조치훈 9단(62)이다. 6세인 1963년 일본에 건너간 그는 11세에 당시 최연소 프로 입단 기록을 세우더니 일본 바둑계의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며 ‘살아 있는 전설’이 됐다. 1987년 일본 7대 기전을 모두 석권하는 ‘그랜드 슬램’을 최초로 달성했고, 최상위 3대 기전인 기성, 명인, 본인방(本因坊) 타이틀을 한 해에 모두 거머쥐는 ‘대삼관’(大三冠)을 통산 4차례 달성했다. 1986년 기성 결승전을 며칠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에 중상을 입은 채로 투혼을 발휘한 ‘휠체어 대국’은 여전히 회자된다. 조 9단은 21일 일본 정부로부터 학술연구, 예술 분야 공로자에게 주는 자수(紫繡)포장을 받게 됐다. 그는 “(한·일 간의) 사이가 나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괴롭다”며 “(저의) 수상이 양국 사람들에게 행복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바둑은 서로 한 수씩 번갈아 두고, 먼저 두는 이가 덤을 지불하는 공정한 게임이다. 이런 공정함은 평화와도 연결된다. 서로 가르치고 이끌어 주는 데 인색하지 않았던 한·일 바둑교류사는 바둑의 평화정신을 새기게 한다. 한·일관계도 바둑을 닮아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