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堆·bank)는 대륙붕에서 불쑥 솟아 있는 해저지형이다. 육지의 고원처럼 윗부분이 평평하고 널찍하게 펼쳐져 있다. 동해 중앙부에 펼쳐진 대화퇴(大和堆)는 강원도와 경상북도를 합친 크기(3만600㎢)에 가장 얕은 곳이 236m에 불과하다. 동해의 최저수심이 3700m, 평균수심이 1700m이고 보면 꽤 높은 해저고원이다.
대화퇴는 영양염류가 풍부한 데다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는 조경수역이어서 오징어, 꽁치 등이 두루 잡히는 황금어장으로 꼽힌다. 독도에서 북동쪽으로 약 380㎞, 일본 이시카와(石川)현에서 서쪽으로 약 300~400㎞ 떨어진 대화퇴는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속하지만 1998년 한·일 신어업협정에서 중간수역의 동쪽 한계선이 동경 135도30분으로 그어지면서 일부가 한·일 공동수역으로 조정됐다. 속초·삼척·포항 등에서 500~650㎞ 떨어져 어선으로는 20시간 이상 걸리는 원양(遠洋)이지만 어획량이 많아 수지맞는 어장이다.
대화퇴는 북한, 러시아 해역과도 가까운 데다 최근에는 북한과 어로협정을 맺은 중국 어선들까지 나서면서 조업경쟁이 치열해졌다. 자연 각국 간 충돌이 잦은 ‘동북아의 화약고’가 돼가고 있다. 지난해 12월20일 발생한 한·일 ‘초계기 갈등’도 대화퇴 인근 해역에서 해군 광개토대왕함이 북한 어선 구조작업을 벌이던 중 일본 해상자위대 P-1 초계기가 저공위협 비행을 하면서 불거졌다. 지난 2월17일에는 이곳에서 조업하던 동진호가 러시아에 나포된 일도 있었다.
지난 7일 북한 어선과 일본 어업단속선이 대화퇴 해상에서 충돌해 어선이 침몰하고 북한 승조원 60명이 바다에 빠졌다가 구조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북·일 간 마찰이 주목받고 있다. 북한은 최근 들어 대화퇴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2일 북한이 발사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떨어진 곳도 대화퇴 인근 해역이다. 반면 일본은 이곳에서 조업하던 북한 어선들이 동해 쪽 일본 해안으로 표착하는 일이 빈발하면서 신경을 곤두세워왔다. 5개국이 각축을 벌이는 대화퇴는 동북아 지정학 불안정성의 표점(標點)이다. 대화퇴가 각국 어선들이 사이좋게 조업하는 평화수역이 될 가능성은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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