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여적]고이즈미 부자의 ‘탈원전’(2019.9.16)

서의동 2019. 11. 3. 22:19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환경상 경향신문DB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정계은퇴 이후 행적은 일본의 정치사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친정인 자민당을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탈원전’ 소신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2014년 2월 도쿄도지사 선거에서는 탈원전을 내걸고 입후보한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를 지원했다. 5년5개월간 장수 총리를 지내며 은퇴한 그가 승산이 낮은 지방선거에 직접 출마도 아닌, 후보 지원에 나서 ‘정치적 제자’인 아베 신조 총리가 내세운 후보와 대결한 것은 ‘탈원전’ 소신 외에 달리 설명하기 힘들다.

 

고이즈미는 2013년 핀란드의 핵폐기물 최종처분장을 방문, 지하 400m의 암반에 구멍을 뚫어 만든 시설에 핵폐기물을 10만년간 보관해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각성한 고이즈미는 “자민당만 방침을 바꾸면 일본은 원전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기회 있을 때마다 탈원전을 주창했다.

 

이런 점에서 지난 11일 아베 정권 개각에서 그의 차남 고이즈미 신지로가 원자력방재담당상을 겸하는 환경상에 발탁된 것은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하다. 환경성은 원자력규제위원회를 외청으로 두는 등 원전정책과 밀접한 부처다. 신지로는 과거 후쿠시마 등을 자주 방문하면서 탈원전 의지를 다져왔고, 취임 일성으로 “어떻게 하면 원전을 유지할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없앨지를 연구하고 싶다”고 했다. 이튿날에는 후쿠시마 현지를 찾아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류가 불가피하다는 전임 환경상의 발언에 대해 사죄하면서 “다시는 원전사고를 일으켜서는 안된다. 한 나라에서 두 번이나 일어나면 끝장이다”라고 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일본 최고의 아지테이터(선동가)’로 불릴 정도로 대중 장악력이 뛰어났다. 신지로도 준수한 외모와 부친의 후광 등으로 대중적 인기가 높은 스타정치인으로, 총리가 되기에 유일한 약점이 ‘젊은 나이’(현재 38세)라는 평이 있을 정도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지난 15일 이바라키현 강연에서 신지로에 대해 “(원전 문제에 대해) 나보다 더 공부를 하고 있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고이즈미 부자의 ‘탈원전 콤비플레이’가 일본 정치의 관전포인트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