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경향의 눈] ‘제2차 토지개혁’ 더 미룰 수 없다(경향신문 2020.8.6)

서의동 2020. 9. 15. 14:54

이승만 정부의 토지개혁은 불꽃이 튀면 금방이라도 폭발할 화약통’ ”(미 군정 정치고문 배닝호프) 같던 한국 사회를 진정시켰다. 이승만 대통령은 초대 농림부 장관에 사회주의자 조봉암을 파격 기용했고, 조봉암은 당시 정부가 용인 가능한 가장 급진적인 인물로 토지개혁팀을 구성했다. 농림부의 초안은 지주세력이 중심이던 민국당의 반발로 좌초했지만 이승만은 전국 각지에서 청문회를 개최하는 등 대중동원 선풍을 일으키며 지주들을 압박했고, 개혁은 모처럼 언론과 농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추진됐다.

 

인구의 70%가 농민이고 그중 80%가 소작인이던 당시 남한에서 토지문제는 가장 정치적인 의제였다. 토지개혁이 이승만 정부가 사회에 침투하고 지지를 이끌어내는 가장 중요한 자원이라는 평가(박명림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는 이후 농민은 (한국의) 강력한 안정요소라는 무초 주한 미대사의 보고로 뒷받침된다. 개혁의 완료시점 등은 좀 더 규명이 필요하지만, 민심과 거리가 멀었던 이승만이 토지개혁만큼은 열의를 보이면서 신생 한국은 위기를 넘기고 발전의 토대를 확보했다. 학자들은 1960~70년대 한국 고도성장의 주요 배경으로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실현한 토지개혁을 꼽는다. 높은 소작료 부담이 사라지면서 농민들의 삶이 안정됐고, 교육 수준의 향상으로 이어지면서 개천에서 용이 나기시작했다.

 

40년 뒤 노태우 정부가 시도한 토지개혁은 미완에 그쳤다. 1980년대 후반 3저 호황으로 시중 자금이 몰리며 땅값이 폭등하자 서민 불만은 임계점으로 치달았다. 6월 항쟁과 노동자대투쟁으로 기층 세력이 성장한데다 총선 참패로 정국 주도권이 약화된 노태우 정부는 개혁하지 않으면 혁명이 일어난다”(문희갑 당시 경제수석)고 여길 정도로 절박했다. 택지소유상한법, 토지초과이득세법, 개발이익환수법 등 토지공개념 3이 만들어졌고,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강제 매각 조치가 발동됐다. 하지만 토지공개념은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힘이 빠지더니 노무현 정부의 종합부동산세 정책으로 일부 계승되는 듯하다 보수정권 들어 폐기됐다. 이후 부동산은 성장률에 민감한 정권의 경기부양 수단으로 동원되면서 불가사리로 자라났다.

 

2020년 한국은 해방 후 지주-소작제가 부활한 듯한 형국이다. 문재인 정부 3년간 서울 주택가격은 34%가 올랐고, 아파트는 52% 상승했다. 직장인이 20년치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도 서울에서 가장 싼 아파트조차 살 수 없다. 반면 임대사업자들은 세금특혜까지 받아가며 수백채씩 집을 사들였다. 세입자들은 많게는 수입의 절반 이상을 주거비용으로 내야 하는 소작농신세다. 의욕적으로 창업한 청년들이 임대료에 채어 넘어지니, 학생들이 지주(건물주)를 꿈꾸는 것도 말리기 어렵다. 한때 노동의욕과 창의력, 기업가 정신이 이끌던 한국 자본주의는 건강을 잃었다. 토지모순을 해소하지 못하면 한국 자본주의의 엔진은 꺼져 버릴지 모른다. 코로나19 이후 뉴노멀 시대를 돌파하기 위해 정부는 한국판 뉴딜을 내놨지만, 더 시급한 것은 2차 토지개혁이다. 뒤늦게나마 정부·여당이 부동산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개혁은 좀 더 전복(顚覆)적이고, 전면적이어야 한다.

 

해법들은 이미 나와 있다. 다주택 소유를 규제해 처분토록 하면 공급부족은 간단히 풀린다. 하승수는 “3주택 소유자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 내에 처분하게 하고, 이후 국가가 사들이자고 제안한다.(<배를 돌려라-대한민국 대전환>) 정부가 발행한 채권을 국민연금기금에 매각해 마련한 재원으로 다주택자들이 처분한 집을 사들이는 방안도 있다. 이를 장기 공공임대주택으로 돌리면 서민 주거안정도 꾀할 수 있고, 국민연금기금도 월 임대료로 안정적인 수익을 거둘 수 있으니 주식투자보다 낫다. 종합부동산세는 전국 토지를 용도 구분 없이 과세하는 국토보유세로 강화하고, 이 세금은 공공임대주택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유력해 보인다.

 

이승만이 조봉암과 손을 잡고 지주세력을 고립시키며 농민 편향의 토지개혁을 밀어붙인 것이나, 노태우가 토지공개념을 강행한 이유는 정권 안위가 컸을 테지만, 그 결과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 공헌했다. 그러므로 ()시장적이니 편가르기니 하는 비판은 귀담아듣지 않아도 된다. 보수세력들이 국부(國父)로 숭앙하는 이승만도 토지개혁 당시 반시장적이었고, 편가르기의 귀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