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도어 신발과 의류를 생산하는 팀버랜드는 모든 제품에 성분을 기록한 라벨을 부착한다.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생산됐는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등의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알려주기 위함이다. 소비재 생산 다국적 기업인 프록터 앤드 갬블(P&G)은 물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의 저소득 주민들에게 식수정화용 분말을 봉지단위로 싸게 판매한다. 한 봉지 사면 10ℓ의 물을 정화해 마실 수 있다.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다농푸즈는 ‘한 컵의 요구르트로 세상을 구하자’는 취지로 저렴한 유제품을 만들어 빈민들에게 공급한다. 공정무역, 환경경영의 아이콘이었던 영국기업 바디샵은 빈곤국의 농산물을 제값을 주고 사들여 제품을 만든다.
이들 기업은 ‘사회적 비지니스 기업’으로 분류된다. 사회와 인간, 문화, 환경에 대한 보호와 공존의 책임을 소비자와 함께 짊어지는 것을 핵심가치로 삼는다. 이런 기업들이 주류가 되는 시대를 마케팅 분야의 석학 필립 코틀러는 ‘시장 3.0’으로 정의한다.
코틀러의 <마켓 3.0>(타임비즈)은 시장 3.0시대의 기업경영은 뿌리부터 변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우선 소비자들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와 네트워크의 성장으로 기업의 제품과 평판을 더욱 쉽게 간파하게 됐다. 기업 광고에 수동적으로 반응하기 보다는 동료 소비자들의 경험과 견해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저렴한 컴퓨터와 휴대전화, 저비용 인터넷, 오픈소스 등의 기술이 이런 변화를 추동했다.
시장 1.0시대는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기만 하면 팔렸고, 시장 2.0시대엔 물건을 팔아 남은 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조금 돌려줬다. 하지만 3.0시대에는 소비자의 영혼에 호소하는 진정성 있는 마케팅이 필요하다는 게 코틀러의 메시지다. 예를 들어 말로만 환경을 앞세우며 폐기물 처리를 소홀히하는 기업들은 시장 3.0시대에 설 자리가 없어진다. 제품의 사용가치는 물론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외면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존경과 청렴을 핵심가치로 내세우면서 속으론 회계부정을 저지른 엔론은 망했고, 반 환경기업의 대명사인 듀폰은 소비자의 냉대를 계기로 환골탈태했다. 기업도 기업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맞추려는 능동성이 요청된다.
코틀러가 제시한 기준으로 우리 기업들을 본다면? 삼성의 홈페이지엔 ‘사람과 환경을 존중하는 지속가능한 경영을 실천합니다’라는 글귀가 쓰여있다. 하지만 수십년째 노조결성을 막고,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집단 백혈병 사태를 은폐하는 ‘표리부동’으로 치면 3.0은 커녕 2.0에도 미달하지 않을까. 소비자의 눈을 속이거나 하청업체의 팔을 꺾다가도 연말만 되면 작업복 차림으로 달동네에서 연탄을 나르는 기업, 수출품과 내수품을 다르게 만들어 국내 소비자를 차별하는 기업들을 보며 이건 좀 아니다 싶다가도 “기업이 원래 저렇지”라고 체념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성찰해 보려는 기업인들도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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