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인 전 청와대경제비서관이 FTA와 관련한 발언으로 화제를 부르고 있는데 정비서관과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 정도가 있을때만 해도 청와대 참모구성이 이렇게 경도돼 있진 않았다고 한다. 정비서관과 이정우 위원장이 날라간 이후 재경부 출신들과 미국 변호사 출신인 김현종 본부장이 그야말로 활개치는 양상이 됐다.
미국식 사고로 똘똘뭉친 이들은 교육,의료도 다 개방해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옳다. 그러나 개방와 사회양극화는 동전의 양면이란 사실은 별로 강조하지 않는다. 동네 구멍가게들이 홈플러스, 이마트 때문에 문을 닫고 동네 식당들도 할인점내 푸드코트에 밀려나고 있다. 물론 소비자들의 후생이 그만큼 증대했을 수 있다. 그러나 취약부문 종사자들이 하나둘씩 몰락하면서 내수가 줄어드는 것도 분명한 현실이다.
즉 개방을 할려면 실업, 사회양극화에 대한 안전망을 갖춰놓고 해야 한다. 전직프로그램도 있어야 한다. 적어도 시늉은 내야 한다. 정부는 한미 FTA를 비롯해 개방경제가 되면 양질의 버젓한 일자리가 많이 생긴다고 한다. 취약부문의 실업자들이 그쪽으로 재취업할 수 있다는 암시를 흘린다. 그러나 생각해보시라. 미국 농산물의 융단폭격으로 농사를 포기한 농부들이 몇개월 교육받고 금융회사의 직원이 될 수 있겠는가?
한양대의 한 교수와 같이 세미나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교수왈 "우리가 세계 자살 2위에 이혼율도 세계 상위권, 불완전고용률은 OECD 1위다. IMF이후 이라크전쟁보다 더 심각한 전쟁상태에 돌입해 있다"고 개탄하더라. 출산율이 1.08로 세계 최저수준(홍콩이 0.95로 최저)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IMF이후의 한국사회는 사실상의 전쟁상태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전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물론 그 효과가 서서히 오기 때문에 IMF처럼 충격적으로 체감되지는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FTA체결이후 10여년쯤 돼 돌아보면 우리가 얼마나 처참한 길을 걸어왔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결코 미국에 대해 "할말을 하겠다"는 식의 언사를 쓴 일이 없다. 그러면서도 남북협력은 물론 아세안+3라는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기반을 닦았다. 외환위기 상황을 반성하면서 역내 협력방안을 나름대로 모색해왔던 것이고 그 성과도 상당히 평가를 받았다. 결코 '반미'를 입밖에 안내면서 외교적으로 다변화를 꾀해왔다.
이런 자산은 노무현대에 들어 싸그리 날라갔다. 기본적으로 청와내 참모들중에서 동아시아 협력의 성과들을 이어받아 업그레이드시킬 만한 역량을 가진 존재가 없었던 것이다. (내 이야기가 아니라 대학교수의 말임) 동북아위원회라는 거창한 기구는 띄웠지만 동아시아 협력을 위해 한일은 별로 없다. 일본과 싸우기나 했지. 일본과 중국은 지금 동남아국가연합인 아세안에 구애경쟁이 치열하다. 참여정부도 뒤늦게 아세안과 FTA협상을 진행중이긴 하지만 적어도 외교에서 아시아를 중심으로 놓고 체계적인 그림을 그려가는 모습은 아니다. 반미를 이야기하며 동북아 중심국가론을 떠들어 대던 노무현 정부의 지금 외교모습은 어떤가. '친미'에 아시아 무시다.
박대표가 테러를 당한 것은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이는 80년대 중반이후 등장한 우리사회의 중산층이 몰락하고 양극화가 급진전되고 있는 현상과 연계해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중반에 이르던 시기는 전두환, 노태우 정권 등 정치적으론 암울했지만 우리사회에서 처음으로 중산층의 존재가 부각되던 시기였다. '3저 호황'이라는 특수에 힘입어 한국경제는 비약적인 성장을 했고 병영이나 다름없던 일터에서도 점차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자각이 싹트면서 87년 이후 우리 사회는 계층의 허리가 부풀어오르는 항아리형의 사회로 변화해 갔다.
당시엔 '개인택시'만 몰아도 중산층의 꿈을 이루던 시대였다. 우리사회에서 처음으로 '관용(똘레랑스)'이라는 미덕이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던 때이기도 했다. 회사에 들어가면 종신고용 형태로 적어도 50대 후반~60세 정도까지는 고용이 보장됐다. 사회보장제도의 미비를 '기업복지'라는 특이한(우리와 일본만 있는) 제도가 대신해 줌으로써 생활에 안정감도 실어주던 시기였다.
지금처럼 사교육이 심각하지도 않았고 집이 못살아도 고등학교때 열심히 공부하면 명문대에 들어가기가 지금보다 훨씬 쉬웠다.(전두환이 교육정책 하나는 잘 만들었다) 자신의 노력여하에 따라 신분상승이 (제한적이나마) 가능하던 시절이었다. 꿈이 있었고, 꿈이 이뤄졌다. 당시에도 빈민계층의 존재는 있었지만 지금처럼 규모가 크지는 않았다. 사회의 공통의 가치(당시엔 민주화)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사회적 커뮤니티'의식이 점차 싹트던 시대였다.
그러나 중산층은 97년 외환위기 이후 급속히 붕괴됐고 지금은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승자독식의 세계가 됐다. 삼성 임원진의 연봉이 평균 80억원대라는 발표가, 어느 은행장이 스톡옵션으로 수억원을 벌었다느니 등등 부유층의 동정에 대한 가십성 기사가 신문경제면이나 인터넷의 주요뉴스로 등장한다. 이들과 일반 평사원들와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기만 한다.
지금은 꿈이 없는 시절이다. 소득양극화는 사회적으로 공동체 의식을 파괴한다. 자기와 다른 계층을 부러워 하면서도 열심히 노력해 저쪽으로 진입해야지 라는 꿈은 망상에 불과하다. 꿈이 깨진 자리에 적대감이 파고든다. 박대표를 피습한 자의 머리속에는 무슨 생각이 있었을까.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열성당원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그보단 꿈을 잃어버린 이들이 사회를 향한 분노와 적개심이 이런 사태를 불러온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불행히도 앞으론 이런 사회적 갈등이나 폭력사태가 더 심각해질 것이다. 이제 부유층들이 사는 동네에는 브라질 처럼 장벽이 드리워지고 사설경찰이 24시간 출입자를 감시하는 날이 올지 모른다. 노무현이 주창한 '좌파 신자유주의'와 그 빌어먹을 이념하에 집행되는 각종 정책은 이런 사태를 앞당길지도 모른다. 계층이 서로를 적대시하고 그 적대감이 정치적으로 확대재생산되는 지금 시대에선 나와 내 가족의 신변안전이 늘 위협에 시달리게 된다.(내가 꼼양에게 무술을 가르치려는 것도 이런 이유와 관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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