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국민 경제의 실종

서의동 2006. 5. 22. 15:15
한덕수 부총리겸 재정경제부 장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정문수 대통령 청와대 경제보좌관. 현재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의 실권을 쥐고 있는 이 3인방의 머리속에는 국민경제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다. 대신 개방경제를 금과옥조처럼 맘속에 모시고 산다. 국민경제와 개방경제의 차이점은 여러가지지만 가장 큰 것은 개방경제는 서민경제에 대한 배려와 고용창출 의지가 희박하다는 점이다. 이들의 정책집행 과정을 살펴보면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대표적인 몇가지를 추려본다. 


1. KT&G(옛 담배인삼공사)사태 수수방관

세계적인 기업사냥꾼인 칼 아이칸이 KT&G의 주식을 매집하며 경영참여를 선언했다. 
그들은 한국인삼공사를 매각할 것을 요구하는 등 과도한 경영개선 요구를 하면서 KT&G를 압박, 결국 주식차익을 얻어내고 이사를 1명 진출시키는데 성공했다. 칼아이칸은 기업인수합병의 천국인 미국에서도 '토막살인자'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악명높은 기업사냥꾼이다. 이런 넘들이 대표적인 공기업을 노리면서 경제계에선 기업의 경영권 방어장치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심지어 퇴임한 박승 한은총재, 현직의 윤증현 금감위원장 등까지 경영권 방어장치 도입 목소리를 높였는데도 한덕수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고 현재 제도로도 충분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나 미국만 해도 엑슨-플로리어법이란게 있다. 이는 연방정부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에너지, 통신 등 기간산업이나 기업에 대해서는 외국인의 경영권 획득을 직권으로 봉쇄할 수 있는 제도다. 엄청 강력한 법이어서 두바이가 미국의 항만 운영권을 인수하려다 이 법에 걸려 포기했다. 유럽이나 일본도 황금주(단 1주만 가지고도 중요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식으로 주로 기간산업의 주식을 정부가 보유하고 있다)나 포이즌필(적대적 M&A가 일어날 경우 현행주주에게 신주를 할인된 가격으로 팔아 신 주주의 주식비율을 낮추는 장치) 등을 도입하고 있다. 

KT&G뿐 아니라 포스코, 국민은행,KT 등 공공성이 강한 우량기업들 상당수가 외국인 주식비율이 절반이 넘어 기업사냥꾼의 표적이 되고 있지만 정부는 수수방관이다. 

2. 한미 FTA

참여정부의 최대 현안이 되고 있고 여러가지 찬반논쟁이 붙고 있지만 국민경제 관점에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고용안정의 측면에서 보면 우선 경쟁력이 떨어지는 산업과 업종에서는 실업자가 양산될 것이다. 특히 맘먹고 큰 돈 빌려 농사에 뛰어든 대농들중 상당수가 몰락하게 된다. 또 제조업중 경쟁력이 떨어지는 업종은 구조조정의 피해를 입게 된다. 금융분야에서도 경쟁격화에 따라 대거 실업자들이 생겨날 가능성이 있다. 이들의 운명은 뻔하다. 정규직->임시직->일용직의 코스를 밟아 도시빈민층으로 편입된다. 
소비자 후생의 측면에서 볼때도 상황은 만만치 않다. 의료시장이 개방될 경우 사보험 도입, 국민건강보험 제도 붕괴의 우려가 크다.(정부는 막겠다고 하지만 어찌될지 봐야 한다)
법률시장에서 외국로펌이 진출해도 더 나은 서비스를 더 헐값에 받는다고 하지만 독일의 사례를 보면 오히려 변호사 수임료가 올라갔다는 사례가 있어 확실치 않다. 값싼 수입농산물이 들어온다지만 광우병에 GMO농산물 천국인 미국의 농산물을 맘편히 먹으 수 있겠는가. 교육서비스도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의 진출로 교육 가수요만 늘려 사교육비 부담증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수출이 확대된다고? 자동차의 경우만 보면 통상마찰(특히 미국이 반덤핑 제소를 남발하는 바람에)을 피해 국내 메이커들이 미국 현지에 공장을 세우는 방향으로 정책전환을 한 상태여서 관세인하에 따른 혜택은 거의 없다. 오히려 미국현지에 진출한 일본 자동차들이 국내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할 형편이다. 
가장 무서운 것은 FTA에서 투자보호조항이다. 정부가 오는 6월5일 워싱턴 1차 협상을 앞두고 마련한 투자관련 조항에는 '투자자의 이행의무 부과’를 금지토록 하고 있다. 즉 다국적기업들이 국내에 진출해 기업을 내거나 국내기업을 인수해 운영할 경우 고용승계나 장애인 의무고용 등을 하지 않다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6개월만에 견실한 중견기업을 청산해 1300명의 실업자를 낳게 한 외국자본의 오리온전기 인수와 같은 '고용무시, 자본이득 극대화후 단기청산'이라는 사례가 빈발할 우려가 크다. 론스타, 뉴브리지캐피탈 등등 정체불명의 펀드들이 횡행하면서 국내기업을 토막살인한 뒤 유유히 사라지는 행태가 투자보호라는 미명하에 합법적으로 이뤄지게 된다. 정부는 물론 세금도 걷고 하겠다고 하지만 멀쩡하게 잘 다니던 회사를 졸지에 그만둬야 하는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보상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FTA가 되면
공공기업의 민영화도 가속화될 것이다. 싱가포르와의 협상에서 미국은 공기업 민영화의 성과를 따낸 바가 있다. 공기업 민영화의 폐해야 잘 알 것이다. 전력, 통신, 가스 등 공공재의 민영화가 영국의 철도참사, 미국내 정전사태 등을 불러왔다는 점은 따로 설명하지 않겠다. 
자기네들이 개발한 특허신약의 제값을 받겠다는 명목으로 카피약품 생산 유통을 제한하려는 시도도 관심사다. 이럴 경우 약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가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크게 위협하게 된다. 이미 태국과의 FTA협상에서 미국이 자국에서 개발한 에이즈 치료약의 가격보장을 요구하면서 57만에 이르는 에이즈 환자들이 약값을 대지 못해 생명을 위협당할 처지에 놓여 반발한다는 외신보도가 있었지만 국내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금융시장의 개방도 겁나는 대목이다. 우리는 대체로 두가지 방향으로 개방을 계획중인데 신금융서비스와 국경간 거래 허용이다. 신금융서비스란 파생상품, 옵션상품, 선물거래 등 다양한 첨단금융기법으로 만든 금융상품을 원칙적으로 대폭 풀겠다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미국은 금융자본이 크게 발달한 나라여서 거기서 만들어내는 각종 파생금융상품도 첨단이다. 우리 금융기관은 상상하기도 힘든 상품들이 대거 소비자들을 끌어모으게 된다. 경쟁이 격화되면서 우리 금융기관들중 경쟁력이 약화되는 곳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

또 하나는 국경간 거래인데 이는 미국의 은행이나 투자증권회사가 국내에 지점이나 주재원을 두지 않고 인터넷 등을 통해 상품을 팔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우리 금융감독기관이 사실상 무력화된다. 만약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경우에도 제대로 구제받기도 힘들게 된다. 영국의 투기성 펀드인 헤르메스가 삼성물산의 주가조작에 가담한 사건때문에 금융감독원이 1년여동안 조사를 했는데 영국의 금융감독청에 가서 협조를 요청했지만 상당히 비협조적이어서 애를 먹었다고 한다. 앞으로 금융시장을 열어놓을 경우 제대로 리스크를 알리지 않은 상태로 소비자들을 현혹시킬 일이 숱하게 많을 것인데 그때마다 우리 금융감독원이 미국의 금융감독기관에 협조요청을 해야 할텐데 과연 원할히 되겠는가. 소비자들의 피해가 제대로 구제되겠는가 의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정부는 국경간 거래는 신중하게 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지만 협상과정에서 얼마나 관철될지가 의문이다. 

노무현 정부는 자칭 '신자유주의 좌파'라고 한다. 신자유주의는 금융자본주의이자 주주자본주의이다. 기본적으로 금융자본들은 경제고성장과 투자를 싫어한다. 실물투자가 활성화될 경우 자기들이 갖고 있는 돈가치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가 주주로 있는 기업이 사업을 확장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종업원을 자르고 사업부문을 매각해 수익성을 높이라고 한다. 앞서 언급한 칼 아이칸이 KT&G에 대해 한국인삼공사를 매각할 것을 주장한 것이 좋은 예이다. 
외국자본의 지분이 절반을 넘는 한 통신서비스업체는 통신망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는다. 주주들이 자본의 회수기간이 5년을 넘기는 사업투자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5년정도만 기다리면 투자의 결실을 볼 수 있는데도 그렇게 안한단다. 

우리 경제가 매년 4~5%의 저성장에 머물러 있는 것도 이런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주주자본주의가 판치고 있기 때문이다. (힐퍼딩이란 학자를 아는지)힐퍼딩에 따르면 금융이 실물보다 커지면 그 경제는 병든 경제인 것이다 . 경제의 혈맥이 자꾸 순환해줘야 하는데 한곳에 몰려있는 형국이다. 은행들은 사상최대의 수익을 지난해 거뒀다고 신문들이 대서특필하고 있지만 실상은 어떤가. 대부분 기업에 돈을 빌려주기 보다는 소매금융(부동산 담보대출)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증시가 좋아졌다고 하는게 경제지표가 될 수는 없다. 증시에 몰린 자본들도 고용창출로 이어지는 실물투자를 싫어한다. 인플레가 뒤따르고 돈가치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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