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이럴 바에야 차라리 내각제가

서의동 2007. 12. 19. 13:54
이번 선거를 보면서 드는 생각인데, 이럴 바에는 차라리 내각제가 나을 것 같다. 대통령제는 이제 우리 정치에서 수명이 다한 거 같다. 정책선거는 온데간데 없고 BBK만 갖고 찧고 까불고 난리도 아니다. 이렇게 해서 집권하면 5년간 꼼짝없이 '깜'안되는 인물한테 국정의 운명을 맡겨야 하는...싫다고 바꿀수도 없고 '오기정치'구조가 그대로 가는 식의 구조가 5년간 되풀이된다니 끔찍하다.

대통령제는 원래 총력안보나 총화단결 등 국민이 뭔가 똘똘뭉쳐 이뤄야 할 시대적 과제가 있거나 카리스마를 갖고 성취해 내야할 개혁작업이 있거나 할 때 유효한 권력구조다. 우리에게 시대적 과제라 하면 민주화나 통일 등일텐데 민주화는 이미 거의 달성됐고, 통일문제는 어차피 하루아침에 해결될 일도 아니다.(독일은 내각제하에서도 통일과업을 달성했지만) 사회도 엄청나게 다원화 다양화됐다. 그렇다고 개혁과제가 대통령제하에서 제대로 달성됐는가. 기업의 로비나 정치권내 타협으로 개혁법안은 늘 누더기가 되기 일쑤였다. 

대통령 선거는 늘 정책외 논쟁으로 일관돼 중요한 민생문제에 대해 진지한 토론이 오가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92년도에 색깔논쟁이 그랬고, 2002년도의 병역문제 등이 그랬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우리 운명을 5년간 믿고 맡길 큰 인물이 있는가. 그것도 아니기 때문에 투표장에 갈 맘들이 안나는 것이다. 큰 인물이 없다기 보다는 우리 사회가 그만큼 다원화, 다양화돼 만인의 공통적 지지를 받는 인물이 그만큼 줄어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대통령제는 한번 뽑아놓으면 5년간 꼼짝없이 그 사람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유연성이 없는 정치구조다. 그러니까 '오기정치'가 가능한 것이다. 국회의원들도 4년간 임기가 보장돼 있으니 놀고 먹어도 도덕적 비난은 받을 지언정 '해고'되는 일은 없다. 기업 노동시장은 고용의 유연화가 엄청나게 발전해 있는데 정치인력시장만 이렇게 고용보장의 경직된 구조인 것이다. 

내각제는 이런 장점이 있다. 우선 총리와 국회의원의 임기가 보장되지 않는 '비정규직(^^)'이다. 때문에 여론을 벗어난 독단정치를 하기 힘들다. 만약 그럴 경우 국회의 내각불신임-내각의 국회해산-총선거라는 절차를 밟아 다시 조각을 할 수 있다. 

둘째, 소수정당이 힘을 갖게 된다. 민주노동당을 보라. 첨엔 진보세력의 기대하에서 출범했지만 정권잡을 가능성이 애초부터 없으니까 갈수록 지지율이 떨어지게 된다. 만약 내각제라면 대통합민주신당과 손을 잡고 연립내각을 구성할 수 있다. 당당히 여당의 반열에 올라 국정을 행사하게 되고 소신에 따른 정책을 펼칠 기회를 얻게 된다. 일본의 공명당이 비록 재적의원수는 소수지만 자민당과 연립여당을 구성하는 모습을 보라. 민노당이 정권을 잡을 기회가 열리게 되면 우수한 인재들이 몰려들게 되고 더욱 정책추진에 탄력을 받게 된다. 

지금은 어떤가. 민감한 정치쟁점에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파워면에서는 거리에서 피켓팅하는 시민단체와 다를게 뭐 있나. 

세번째, 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더욱 풍부하게 된다. 대통령제하에서는 여야간 공약에 별차이가 없다. 무차별로 표를 긁어 모으려다 보니까 그소리가 그소리가 되는 것이다. 공약베끼기도 횡행한다. 하지만 내각제가 되면 각 정당이 자기의 정치적 스펙트럼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고 그 공약에 의해 표를 얻게 된다. 그런 뒤 정책방향이 엇비슷한 정당끼리 연립하면 된다. 이럴 경우 정치권이 보다 넓은 목소리를 제도권내에 수렴할 수 있게 된다. 한미 FTA때 거리투쟁이 그처럼 극심했던 것은 이런 여론을 수렴할 수 있는 정치구조가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각제를 도입하게 되면 정당결성의 문턱도 대폭 낮출 필요가 있다. 정당설립에 필요한 비용을 대폭 줄이고 절차도 간소하게 해 돈은 없지만 '좋은 뜻'을 가진 이들이 쉽게 정당을 만들어 의견수렴을 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이탈리아의 포르노 여배우 치치올리나가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식의 폐해가 일어날 수도 있지만) 정치를 하려면 돈이 드는 구조하에서는 필연적으로 부패할 수 밖에 없다. 또 비례대표제를 대폭 확대, 전문성을 갖췄지만 시간과 돈이 없는 이들이 원내에 많이 진출토록 해야 한다. 

내각제를 반대하는 이들은 내각제 하기에는 우리 국회의원들의 질이 너무 낮고, 기업의 로비가 노골화될 것이라고 반론을 제기한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의 수준은 권력구조가 바뀌면 달라진다. 지금처럼 대통령과 행정부가 독주하는 제도하에서는 국회의원들이 놀고 먹을 수 밖에 없다. 거수기 역할이나 하다가 끝나기 때문에 자연히 자질이 낮아진다. 하지만 그들도 원내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논두렁 정기'라도 받았던 이들이다. 권력구조가 바뀌고 정책대결이 치열해지는 구조가 된다면 자연히 공부를 안할 수 밖에 없다. 공부안하면 '해고'될 수도 있다. 

기업로비가 내각제하에서 더 횡행할 것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로비가 없나. 엄연히 있는 현실을 아닌척 못본척 하지말고 차라리 로비를 양성화하는 법안을 만드는 편이 백번 낫다. 

암튼 지금 대통령제는 아니다. 난 투표장 갈 맘도 없다. 회사에서 차몰고 30분씩이나 걸려 동사무소가서 투표할 만큼 맘에 드는 인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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