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자원이 부족한 한국경제가 대외신인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비교적 넉넉한 외환보유액과 건전한 재정여건 덕이다. 우리나라가 2008년 금융위기를 비교적 무난하게 넘긴 데는 이 두가지가 버팀목이 됐다는 이야기는 경제관료들이 심심치 않게 꺼내는 레파토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곳간은 점차 비어가고 있다.
이런 돈잔치에 민심이 흉흉해지자 한나라당에서 '소극'이 벌어지고 있다.
정두언 최고위원(사진)이 어느 토론회 자리에서 한 발언이 “강만수 갑자기 죽이고 싶어지네”라고 말했다. 안상수 대표가 어물쩡, 감세 철회 비스무리한 절충안을 내놓은 것도 심상치 않다.
한나라당과 여권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감세철회’ 논란이 꽤 심각한 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감세를 붙들고 있다간 표를 한꺼번에 잃어버릴까 전전긍긍하는 정치인들과 '감세귀신'이 들렸다(정두언 의원)는 강만수 청와대 경제특보 등 이명박 창업공신의 셈법이 다르다는 것도 확실하게 드러난다.
감세정책 논란은 한때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정치권의 수많은 이슈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나라의 곳간사정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단언컨대(단언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재정이 악화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이기 때문이다.
우선 금융위기 이후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리면서 지난해 재정적자가 발생했다. 고령화의 진전으로 복지지출은 자동으로 불어난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로 사회격차가 심화되면서 복지확대 요구도 커지고 있다. 이런 여건 속에서는 정부가 돈줄을 아무리 죄더라도 한계가 있다.
17대 국회에서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의 보좌관을 지낸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이 최근 펴낸 <대한민국 금고를 열다>를 보면 우리나라 국가재정 규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 비해 110조원이나 부족하다. 특히 소득세 비중은 GDP대비 4.4%로 OECD평균(9.4%)에 비해 무려 5%포인트(약 50조원)가 낮다. 재정건전성이 악화되는 원인은 낮은 소득세율에 있는 셈이다.
해법은 분명해진다. ‘부자감세’를 없었던 것으로 하면 재정균형은 곧바로 달성된다.
2012년에 시행토록 돼 있는 소득세,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를 철회하면 상당 정도의 재정확충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고소득자 감세철회라고 하지만 이미 고소득자들은 감세혜택을 볼만큼 봤다. 여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증세로 나가야 한다.
감세정책은 한나라당에 결코 득이 되지 않는다. 감세카드를 놓는다고 한나라당이 하루아침에 좌파로 몰릴 것도 아니다.
'유턴'의 명분은 얼마든지 들 수 있다. 금융위기라는 알기 쉬운 '사정 변경' 사유를 들면 된다. 이명박 정부는 이미 ‘7·4·7공약’을 금융위기를 핑계로 접은 전례가 있다. 그만큼 설명했는데도 등을 돌리는 지지자들은 그냥 떠나가게 놔둘 일이다.
감세가 부유층 소비 증가로 이어져 내수를 진작시킬 수 있다는 ‘트리클 다운’(Trickle-down·낙수) 이론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어느 나라 정책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낡은 유물’이 됐다.
영국은 연간수입이 15만 파운드를 넘는 납세자에 대한 소득세율을 40%에서 50%로 올렸다. 미국도 연 20만 달러 이상 고소득자에 대한 세율을 35%에서 39.6%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오바마 중간선거 패배로 약간 힘이 떨어지곤 있지만)
예송논쟁을 주도한 노론의 거두 송시열
신자유주의의 종주국에서 조차 부자증세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데 우리만 유독 감세에 집착하는 여권의 모습에서 성리학에 대해 이단적 견해를 밝힌 이들을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아 처단하던 조선시대가 연상된다.(이런 사문난적 분위기는 통상정책에서도 느껴진다. 이에 대해서는 다시 글을 쓸 기회가 있을 것 같다)
강만수 특보에게 정 의원과 소장파들은 사문난적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성리학이 폐쇄적인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조선이 몰락해갔던 역사를 강 특보가 좀 들여다봤으면 좋겠다.
'불현듯...'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와다 하루키 교수에 감사패 (0) | 2012.06.20 |
---|---|
큰 상은 받았지만 (1) | 2010.11.26 |
FTA 취재기자들을 위한 변명 (3) | 2010.11.12 |
통상관료들이 욕을 먹는 이유 (0) | 2010.10.29 |
요즘 대학생들과의 만남 (14) | 2010.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