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6월 항쟁’ 불지핀 지식인의 호소
1986년 6월2일 오전 서울 도봉구 수유5동 한신대학 수유리 캠퍼스에 모인 교수들은 장문의 선언문을 발표한다. 전국대학교교수단이라는 명의로 전국 23개 대학의 교수 265명이 뜻을 모은 ‘연합 시국선언’이다. 이 선언은 전두환 군부정권의 폭압적 통치에 맞서 한국사회의 총체적인 구조개혁을 요구하고 나서 당시 정국에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왔다.
전문과 정치, 경제, 사회, 대학 등 5개 부문으로 구성된 선언문은 “우리나라가 처한 위기의 본질은 정통성이 결여된 정권의 존속에 있으므로 정통성을 지닌 민간정부의 출현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밝혔다. ‘정치’부문에선 민주헌법의 제정과 직접선거가 필요하고 기본권이나 인권탄압은 종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적으로 “사회정의에 기초한 자주적 경제체제의 모색”과 사회적으로는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마련”을 요구했다.
당시 대학가는 개헌투쟁과 반미자주화 운동이 맞물리면서 4월28일 서울 관악구 신림사거리에서 서울대생 김세진·이재호씨가 ‘전방입소 결사반대 및 반전반핵 양키고홈’을 외치며 분신하는 등 대학생들의 분신·투신이 속출했다. 또 5·3 인천사태 등 도심시위가 끊이지 않으면서 정국이 긴장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수행(현 성공회대 석좌교수), 정운영(작고), 김상곤(현 경기도 교육감) 등 한신대 교수들이 중심이 돼 작성한 선언문은 당시의 진보적 논의를 총괄하면서 개헌국면에서 새 헌법이 담아야 할 내용을 구체화했고, 반외세 운동을 수용하는 등 변혁의 열망을 집약했다.
전두환 정권하에서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이날이 처음은 아니었다. 정부가 85년부터 이어져 온 개헌논의를 전면 부정하고 나서자 재야와 종교인, 학생들이 투쟁 수위를 높여가던 3월부터 시작됐다. 3월28일 고려대 교수 28명의 성명을 신호탄으로, 5월 중순까지 29개 대학에서 785명의 교수들이 대학별로 시국선언을 이어갔다.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이듬해 4월22일부터 5월말까지 재차 번지면서 87년 6월항쟁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다.
선언문엔 “국민이 폭력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우려한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학생들이 경찰의 최루탄에 돌과 화염병으로 맞서야 할 만큼 엄혹한 상황임을 교수들도 절감했던 것 같다. 그로부터 23년이 지난 지금 많은 이들이 그 엄혹함을 다시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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