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맛

첫인상이 깔끔한 칠레

서의동 2002. 5. 30. 10:38

대사관저에서 만찬을 마친뒤 밤 11시에 칠레행 비행기에 올랐다. '란칠레'의 보잉기였는데 들어가보니 에어로 멕시코와는 인상이 확 달랐다.(에어로멕시코는 국내선이라 비교하긴 그렇지만) 우선 모든 좌석에 TV모니터와 전화기겸용 리모콘이 설치돼 있다. 목을 길게 빼고 승무원의 비상시 요령을 지켜봐야하는 부담이 없다. 기내식도 그런데로 훌륭했다(기억은 나지 않지만) 오전 8시30분에 도착했으니 시차를 감안하더라도 8시간여동안 비행기를 탄 셈이다. 
5월하순의 산티아고는 매우 추웠다. 남반구라 늦가을인 셈인데 아침 기온이 영상 6도란다. 공항에 내리자 마자 서둘러 긴팔옷을 꺼내 입었다. 칠레 공항에서 산티아고 시내로 접어들자 바로 눈에 띠는 것은 정상부분이 하얗게 빛을 발하는 안데스 산맥의 모습. 산티아고 시내 어디서나 볼수 있단다. 
또하나 재밌는 건 우리가 탄 버스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신기해하는 것이다. 여학생들은 우리를 보자 손을 흔들고 자기들끼리 킥킥거리기 바빴다. 가이드말로는 동양인들이 떼로 몰려다니는 광경이 흔치 않기 때문이란다. 하긴 지구 반대편에 있으니 오기가 그리 쉽지 않은 땅아닌가.



"여느 남미국가와 다르다"

대사관 자료를 보면 칠레인구의 55%가 혼혈로 나와있어 여기도 메스티조가 많겠구나 했는데 실제론 메스티조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혼혈이 스페인+독일 등 유럽인들간의 혼혈을 의미하는 거란다. 
스페인 점령초기엔 인디오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학살,씨를 말렸고 남은 사람들은 한곳에 정착시켜 놨다고 한다. 깔끔한 첫인상 뒤엔 이런 비극의 역사가 숨어있었다. 
어쨌든 이곳사람들은 자기네 나라를 '남미의 유럽'이라며 자부심이 대단하다. 국민소득은 4천불 안팎이지만 농업국가의 국민소득은 공업국가의 2배의 가치가 있다고 가이드가 설명하던데 어떻게 해서 그런 계산법이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산티아고 시내는 적어도 유럽같은 분위기가 나긴 했다.(공항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엔 빈민가가 즐비했지만...) 도착 다음날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는데 웨이터가 칠레의 인상을 묻자 "과일이 유명한 나라"등등 칭찬의 말을 해줬더니 "칠레는 다른 남미국가들과 다르다"며 으쓱해한다.

모네다궁

경제부 차관인터뷰를 위해 시내 모네다궁으로 향했다. 
세계 최초로 선거에 의해 세워진 사회주의 정권의 대통령이었던 살바드로 아옌데의 흔적이 있는 곳이다. 다들 아시겠지만 73년 피노체트의 군부 쿠테다에 의해 사회주의 정권이 붕괴됐고 아옌데는 총을 들고 저항하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전사했다. 모네다궁 옆 건물 꼭대기엔 쿠데타 당시 모네다궁을 공격하기 위해 뚫린 포대의 흔적도 있고 정부군이 쏜 총탄자욱도 남아있다. 
피노체트는 89년 물러났지만 아직도 칠레사람들은 군부정권의 공포정치의 상처를 안고 산다. 칠레사람들이 말수가 많지 않은 것도 그런 탓이라고 어느책에서 읽은 것 같은데 선입견이어서 그런지 확실히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찾기 힘들다. 

상종가 치는 한국차 

칠레를 방문한 한국인들은 누구나 거리의 한국차 물결에 놀란다. 현대,기아,대우차 등 없는차가 없다. 특히 현대 소나타EF는 고급호텔에서 쓰는 전용차다. 거의 30%는 되는 것 같다. 한국산 가전제품도 시장점유율 수위라는데 직접 목격하진 못했다. 그러나 내년되면 EU차들이 무관세로 들어오고 아르헨,브라질 차들도 무관세 혜택을 입는다는데 가격경쟁력으로 승부해온 한국차들이 칠레 거리에서 점차 줄어드는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근데 워낙 칠레인구가 작아(1500만명) 큰 시장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우리와 칠레가 협상중인 FTA(자유무역협정)을 두고 하는 말인데 쟁점은 우리의 농산물 시장을 열고 대신 우리가 칠레에 공산품을 무관세로 수출하는 문제다. 우리 농업계는 칠레산 사과,배가 들어오면 과수농가가 큰 피해를 본다며 반대하고 있고 업계는 중남미 수출교두보로 삼기위해 칠레와 FTA협정을 꼭 체결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FTA를 체결해야 한다는 쪽은 농민,농업,농촌문제를 분리시켜 생각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우리나라 봉제산업이 사양산업이 됐듯, 농업도 사양산업임을 과감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신 농촌과 농민의 문제는 보조금을 주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다.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것 같지 않지만 수출로 먹고 살아온 우리 처지를 생각해보면 딱히 그른 말도 아니다. 통상환경이 점차 나빠지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니까.

칠레의 샘물 안데스 산맥 

칠레의 기후는 매우 쾌적하다. 일교차가 크긴 하지만 1년중 구름한점 없이 맑은 날이 300일이 넘는단다. 대신 강우량이 부족한데 부족한 물은 안데스 산맥이 보충해준다. 날씨가 맑으면 안데스산맥의 얼음이 녹으면서 그 물이 600만 산티아고 시민을 먹여 살린단다.

칠레과일이 경쟁력있는 것도 이런 천혜의 자연조건때문이다. 아시다시피 칠레는 남위 18~56도에 걸쳐 남북으로 길게 뻗은 나라라 온대에서 한대까지 온갖 기후대가 걸쳐 있어 각기 다른 기후대에서 다양한 과일을 생산할 수 있는 환경경쟁력이 있다. 

칠레는 남반구에 위치한 환경때문에 주로 인구가 몰려있는 북반구의 휴경기때 과일을 공급할 수 있는 조건도 갖춘 세계 2위의 과일수출국이다. 실제 칠레의 농산물시장을 방문해 보니 한국에서 볼 수 있는 후지사과랑 맛이 꼭같은 사과들이 한개 100원도 안되는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FTA가 체결되 무관세로 칠레산 사과들이 들어오면 우리 과수농가들은 얼마 못가 망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차원의 대비책을 단단히 마련하지 않으면 또한차례 파동이 불어닥칠 것 같다. 

세계적 휴양지인 비나 델 마르

산티아고에서 2시간여 남쪽으로 가면 'vina del mar'라는 세계적인 해변휴양지가 있다. 매년 2월 칠레 가요제가 이곳 해변에서 열리는데 남미에서 두번째로 큰 문화행사란다. 이곳엔 대통령 별장도 보인다. 그러나 공교롭게 날씨도 안좋고 제철이 아닌 탓에 명성에 걸맞는 감흥은 느끼지 못했다. 
식당에서 점심으로 해물탕 비슷한 걸 먹었는데(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걸쭉한 국물에 칠레 고추소스를 넣어 먹으니 얼큰한데 우리 매운탕과 맛이 비슷하다. 생선과 해물이 잔뜩 들어있어 입맛을 돋군다. 해변가에는 외지인들의 별장이 즐비한데 계단식 별장에서 레일을 이용해 올라가는 케이블카인 프리쿨라도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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