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후아나에서 1박하고 다음날 멕시코시티로 향했다.
티후아나 1층 바에서 데낄라 폭탄주로 한국인의 술문화를 과시한 주책도 부렸지만 별소동없이 잤다.
수출공단을 제외하면 티후아나는 구릉지역 판자집들이 즐비한 지저분한 도시다. 누군가 샌디에이고와 풀색깔도 다르다더니 그말이 정말 실감났다. 같은 사막기후지만 샌디에이고는 인공으로 물공급을 하고 이쪽은 그렇지 않다는 차이때문.
멕시코시티로 가기위해 공항에 갔는데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가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티후아나로 국경을 통과했을때 입국절차를 밟지 않은 것.입국신고서를 작성하지 않아 사실상 불법월경상태였던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샌디에이고에서 육로도 멕시코로 넘어간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육로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대부분 주말유흥을 즐기기 위해 넘어갔다 올뿐 멕시코로 넘어가 살것도 아니니까.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는 경우는 양쪽 당국이 신경을 써도 미국에서 멕시코로 건너가는 경우는 별로 신경을 안쓰는 것이다. 탈북자는 많아도 중국에서 북한으로 넘어가는 중국인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부랴부랴 입국신고서를 작성해 문제는 해결됐다.
에어로 멕시코 비행기를 탔는데 과달라하라를 거쳐 멕시코시티까지 가는데 4시간30분이나 걸렸다. 실제 비행시간은 세시간반인데 1시간 시차가 났기 때문. 멕시코 북서부에서 멕시코 중부로 가는데 이정도니... 멕시코도 적지않은 땅덩어리다.
멕시코 스튜디어스는 짙은 화장을 한 뚱보아줌마였다. 대한항공의 야리야리한 스튜디어스들만 보다 보니 눈이 적응하지 못하는 '시차현상'도 있었지만...
무뚝뚝한 표정으로 안전벨트 착용, 산소마스크 쓰는법등을 시연했는데 좀체 웃음이 없었다.
멕시코시티 공항에 도착, 짐을 찾고 나서니 벌서 어둠이 깔렸다. 마중나온 가이드가 멕시코 시티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소개했다. 재밌는게 멕시코 지하철은 고무바퀴란다. 그래서 기차빵꾸나 지각했다는 말이 멕시코에서 통한다는데 정말인지는 모르겠다.
폴크스바겐이 눈에 많이 띠었다. 가이드 말로는 문맹률이 25%나 돼 지하철표시를 그림으로 해놨단다. 또 가이드의 설명을 옮겨보면;
멕시코 시티는 원래 호수였는데 스페인이 정복후 매립을 했단다. 빈부격차가 심해 세계 10대부호중 2명이 멕시코 출신이라고 한다. 남미지역에 불어닥친 외환위기로 브라질, 아르헨, 페루 등에서 멕시코로 이주하는 한인들이 최근 2~3년사이에 급증했다고... 이중 90%가 옷장사를 한다고 한다.
이들중 상당수는 중국산 의류를 갖고 들어오다가 세관에서 적발돼 낭패를 본다고 한다. 이유인 즉슨 멕시코 섬유산업 육성정책때문에 중국산 의류는 수입규제품목이란다. 교민수가 4~5만명에 불과해 아직 코리아타운은 형성되지 않았다고...
멕시코에는 2대 조폭이 있는데 하나는 우리가 전날 묵었던 티후아나를 기반으로 하는 아레노스 형제들이고 또하나는 중부 국경도시인 몬터레이를 근거지로 하는 ~~~형제들이란다.(한국대사관 관계자 전언)
멕시코는 메스티조 인구가 70%가 넘는 메스티조 국가다. 과거에는 백인들과 메스티조간에 암묵적인 구분이 있었지만 지금은 스페인도 인디오 문화도 다 멕시코 문화라고 간주한단다. 메스티조는 코르테스의 아즈떼카 정복과정서 생겨나는데 역사자료에 따르면 아즈테카 멸망이후 30여년만에 메스티조가 50%에 달했다고 한다.
스페인 침략자들이 인디오 여성들을 얼마나 유린했는지
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멕시코에도 폭탄주가 있다는데 수부마린(잠수함)이라고 부른단다.
피라미드앞의 기념품행상
떼우띠우아깐이라는 멕시코판 피라밋을 관광했다. 떼우띠우아깐은 아즈떼까 제국이전 시대의 국가인데 멸망원인은 아직도 수수께끼라고 한다. 높이 67m에 이르는 피라미드에 올라갔다. (자세한 내용은 이성형씨의 '배를 타고 아바나를 떠날때'를 참조바람)
재밌는 것은 피라미드 입구에서 기념품 행상들이 관광객들을 붙잡고 호객행위를 하는데 이때 부른 가격이 피라미드를 보고 내려왔을때 가격의 4배나 된다는 것. 따라서 흥정은 피라밋을 다녀와서 하는게 요령이다.
한 상인은 일행중 한명에게 흑요석으로 된 데드마스크를 80달러에 불렀다가 결국 20달러만 받고 팔기도 했다.
별도로 기념품 전문점이 있긴 하지만 별로 물건에 하자가 없으니 흥정만 잘하면 싼 가격에 괜찮은 기념품을 살수 있으니 무조건 피하지는 말것.
기념품점옆에 애니깽(멕시코 선인장)이 꽃을 피웠다. 꽃이라 하지만 높이 4~5m나 되는 나무줄기 같은게 선인장 가운데서 솟아있다. 애니깽은 과거 멕시코인에게 매우 유용한 식물이었다. 애니깽즙으론 데낄라를 만들고 선인장 가시와 잎은 그대로 바늘과 실이 된다. 잎의 섬유소가 워낙 질겨 동아줄 재료로도 쓰인다는 것은 여러분도 아실 것. 애니깽 즙맛을 봤는데 달큼한 맛이 났다.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보는 멕시코거리 풍경은 티후아나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내 중심부는 그런데로 볼만 하지만 외곽에 들어찬 판자집 군락은 멕시코 어딜가나 볼 수 있는 풍광이다. 멕시코의 집들은 도색을 하지 않는게 특징이다. 마치 평양거리에 있는 아파트를 연상케 했다. 대사관 관계자들의 말은 돈이 없어 그렇다는데 이런 식으로 살다가 나중에 돈이 생기면 그때가서 페인트칠을 하는 경우도 간혹 있단다.
피라미드앞의 기념품행상
떼우띠우아깐이라는 멕시코판 피라밋을 관광했다. 떼우띠우아깐은 아즈떼까 제국이전 시대의 국가인데 멸망원인은 아직도 수수께끼라고 한다. 높이 67m에 이르는 피라미드에 올라갔다. (자세한 내용은 이성형씨의 '배를 타고 아바나를 떠날때'를 참조바람)
재밌는 것은 피라미드 입구에서 기념품 행상들이 관광객들을 붙잡고 호객행위를 하는데 이때 부른 가격이 피라미드를 보고 내려왔을때 가격의 4배나 된다는 것. 따라서 흥정은 피라밋을 다녀와서 하는게 요령이다.
한 상인은 일행중 한명에게 흑요석으로 된 데드마스크를 80달러에 불렀다가 결국 20달러만 받고 팔기도 했다.
별도로 기념품 전문점이 있긴 하지만 별로 물건에 하자가 없으니 흥정만 잘하면 싼 가격에 괜찮은 기념품을 살수 있으니 무조건 피하지는 말것.
기념품점옆에 애니깽(멕시코 선인장)이 꽃을 피웠다. 꽃이라 하지만 높이 4~5m나 되는 나무줄기 같은게 선인장 가운데서 솟아있다. 애니깽은 과거 멕시코인에게 매우 유용한 식물이었다. 애니깽즙으론 데낄라를 만들고 선인장 가시와 잎은 그대로 바늘과 실이 된다. 잎의 섬유소가 워낙 질겨 동아줄 재료로도 쓰인다는 것은 여러분도 아실 것. 애니깽 즙맛을 봤는데 달큼한 맛이 났다.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보는 멕시코거리 풍경은 티후아나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내 중심부는 그런데로 볼만 하지만 외곽에 들어찬 판자집 군락은 멕시코 어딜가나 볼 수 있는 풍광이다. 멕시코의 집들은 도색을 하지 않는게 특징이다. 마치 평양거리에 있는 아파트를 연상케 했다. 대사관 관계자들의 말은 돈이 없어 그렇다는데 이런 식으로 살다가 나중에 돈이 생기면 그때가서 페인트칠을 하는 경우도 간혹 있단다.
마리아치 공연은 못봤지만
멕시코 시티도착 첫날밤 만찬을 한뒤 민속공연 일정이 있었는데 마침 휴일이라 안한단다. 내심 말로만 듣던 마리아치의 감미로운 음악을 기대했는데... 마리아치란 챙이 엄청나게 긴 모자를 쓰고 망토를 걸친 전통복장의 음악밴드를 말한다. 기타와 첼로(인지 더블베이스인지)를 들고 나와 민속음악을 들려준다.
대신 재즈바에 가서 멕시코 밴드의 공연을 감상했다. 밴드들도 클래식기타(아마 나일론줄 대신 쇠줄을 감은 )와 일렉트릭 베이스기타, 조그만 기타, 올갠 등을 들고 나와 연주하는데 목소리도 좋고 노래도 좋았다. 귀에 익은 끼엔세라, 베사메무초, 라밤바 등의 노래도 불렀다.
그 좁은 바에 중년의 여성들이 진을 치고 기타반주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우리 중년 아줌마들이 드나드는 카바레와는 분위기가 틀리다. 그런대로 열심히 음악에 취해 몸을 흔드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멕시코의 반중감정
역시 대사관 관계자의 설명. 멕시코는 유일하게 차이나타운이 없는 나라란다. 중국에 대해 별로 감정이 좋지 않다는데 2001년 중국의 WTO가입때 마지막까지 반대했던 나라가 멕시코란다. 유래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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