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후쿠시마100일] 탈원전 여론 치솟고 절전·방재 생활패턴 각광

서의동 2011. 6. 20. 13:45
도쿄도 아라카와구는 21일부터 오는 9월말까지 구청이 운영하는 공공시설 30여곳을 ‘거리의 피서지’로 정해 주민에게 무료로 개방하기로 했다. 주민들이 집안의 에어컨을 끄고 공공시설의 냉방으로 더위를 견디도록 하기 위해서다. 야마모토 이에이치 아라카와구 환경과장은 “주민들의 전력사용을 줄이자는 차원이지만, 절전의식이 강한 노인들이 집안에서 에어컨을 켜지 않은 채 지내다 열중증(고온으로 체온조절이 흐트러지는 병)에 걸릴 위험을 감소시키는 효과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 참사 이후 100일이 지나면서 일본사회에 커다란 변화가 일고 있다. 전력부족이 우려되면서 다양한 절전 아이디어들이 모아지고, 생활패턴도 ‘재난대응형’으로 변모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따른 방사능 공포가 ‘반원전’ 의식을 일깨운 계기가 된 셈이다. 좀처럼 사회적 발언에 소극적이던 일본인들이 목소리를 내는 경향도 두드러진다.

지난 16일 도쿄도 고토구에서 열린 ‘2011 도쿄 장난감쇼’에서는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에코토이’들이 단연 주목을 받았다. 완구 제조업체인 메가하우스가 내놓은 ‘에코로’ 미니카는 차를 손으로 만지면 내장모터가 자가발전해 전지를 쓰지 않고도 작동한다. 전력을 쓰지 않는 보드게임과 퍼즐 등도 눈길을 끌었다. 세계 최고높이의 방송송신탑(634m)으로 내년 2월 개장 예정인 ‘스카이트리’ 지하에는 절전대책으로 25m짜리 수영장 17개 용량의 대형수조가 들어선다. 전력사용량이 적은 심야에 물을 식히거나 데운 뒤 일과 시간에 순환시켜 냉난방을 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연간 소비전력의 44%를 줄일 수 있다.

기업들이 절전대책으로 휴가 기간을 늘릴 방침을 세우자 장기투어 상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JTB는 산악지대인 나가노현에서 한 달 동안 체재할 수 있는 여행상품을 내놨다. 체류 중 대학생들이 5회까지 가정교사로 아이들의 숙제를 도와주는 서비스도 포함된다. 프린스호텔은 가루이자와와 하코네 등 휴양지에서 최대 70박까지 머무를 수 있는 상품을 선보였다. 반면 지난달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50.4%로 줄면서 관광대국 일본의 체면은 완전히 구겨진 상태다.

동일본대지진 당시 통학거리가 멀어 자녀들이 귀가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최근 사립학교 입시설명회에서는 명문 사립보다 집에서 가깝고 방재대책이 확실한 학교를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만일의 사태를 위해 주부들이 통조림과 레토르트 등 장기보존 식품을 사서 모아놓는 관행도 정착되는 추세다. 슈퍼체인 ‘서미트’의 지난달 통조림 판매량은 전년 대비 10%이상 늘어났다고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보도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방사능 오염공포가 점차 확산되면서 반원전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2007년 28% 수준이던 탈원전 찬성 여론은 82%(일본여론조사회 6월11~12일 조사)까지 치솟았다. 지난 11일 전국 150개 지역에서 원전폐지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는 등 한동안 외면받던 집회·시위의 가치가 주목받는 것도 새로운 트렌드다.

반면, 국가적 재난의 와중에도 정쟁에만 매달리고 있는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커지고 있다. 아사히신문이 이달 중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내각지지율은 22%에 머물렀다. 대지진 이전 1.5%로 예상됐던 일본의 올해 실질 경제성장률은 0.2%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개인소비가 급감한 데다 재난에 따른 생산타격으로 수출증가율이 둔화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