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멈출 줄 모르는 엔고 행진

서의동 2011. 10. 26. 21:26
유럽의 재정불안과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가 겹치면서 일본 엔화가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일본은행은 추가적인 금융완화책을 서두르고 있으며 일본 정부도 외환시장 개입에 나서겠다는 강한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세계경제 불안으로 안전자산 수요가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보여 엔화 강세는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엔화 강세로 한국 대기업들은 수출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는 반면 부품·소재를 일본에 의존하는 중소기업들의 부담이 커지는 등 명암이 교차하고 있다.
 
 

26일 니혼게이자이 신문 등 일본언론에 따르면 전날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가 장중 달러 당 75.73엔까지 상승해 지난 21일 기록했던 사상 최고치 기록(75.78엔)을 갈아치웠다. 이날 도쿄 외환시장에서도 엔화는 한때 75.98엔까지 치솟았으나 일본 정부의 시장개입 경계감으로 76엔대로 하락했다.
 
아즈미 준(安住淳) 재무상은 이날 기자들에게 “엔고 현상이 실물경제를 전혀 반영하지 않는 매우 투기적인 움직임”이라며 “시장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한 뒤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해 시장개입 의사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엔화강세는 유럽 재정위기 극복을 위한 유럽연합(EU)의 합의가 늦어지면서 시장의 불신이 높아진 데다 미국 경제지표가 예상치를 밑돈데 따른 것이다. 25일 유럽연합 재무장관 회의가 연기되면서 채무위기 해법 마련이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론이 커졌다. 
 
여기에 미국의 신규주택 판매가 4개월 연속 감소하자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가 다음달 3차 금융완화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이 퍼지면서 엔화가 강세를 보였다.
 
엔화의 고공행진이 지속되자 3·11동일본대지진의 충격에서 벗어나 회복세를 보이는 일본 경제에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일본은행은 27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국채와 회사채 등을 사들이는 기금(현재 50조엔)을 5조엔 정도 증액하는 방안을 포함해 금융완화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엔화 강세는 일본과 경쟁하는 한국 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때문에 수출기업에는 호재인 반면 일본 수입의존도가 높은 부품·소재 부문 중소기업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엔·달러 환율이 1% 하락할 때 국내 기업들의 수출이 0.5% 증가하며 자동차와 화학·가전·정보기술(IT) 부문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 관광객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주력산업팀장은 “일본 기업들이 엔고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해외공장 건설이나 해외 직접조달을 늘리고 있어 지리적으로 가깝고 기술력을 갖춘 한국이 수혜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도요타·혼다·닛산 등 일본 완성차업체 11곳이 한국산 부품 구매를 위해 다음달 1~2일 한국을 방문한다.
 
하지만 부품·소재를 일본에서 수입하는 중소기업들은 경영압박이 커지고 있다. 연 2~3%대의 낮은 금리로 엔화 대출을 받았던 기업들의 부담도 증가할 전망이다. 김상기 한국은행 국제무역팀장은 “대일의존도가 높은 중견·중소기업들이 원가상승분을 거래 대기업에 전가하기 어려워 고통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