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쓴 글

재벌개혁 파수꾼 ‘경제개혁연대’… “소액주주운동 잇단 제동”

서의동 2009. 6. 16. 20:18
ㆍ“기업투명성 개선 물거품”
ㆍ“기업들 대놓고 자료제공 거부”
ㆍ“MB기업프렌들리 폐해 심각”


외환위기 이후 기업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전개돼온 소액주주운동이 10여년 만에 최대위기를 맞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이후 법원이 소액주주운동에 제동을 거는 판결을 잇달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대기업들이 주주명부 등 자료제공을 거부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참여정부 때만 해도 동사무소에서 민원서류 떼는 정도던 주주명부가 법정공방을 통해서도 얻기 어려워지면서 소액주주운동의 앞날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 12일 서울 운니동에 있는 경제개혁연대 사무실에서 만난 이승희 사무국장(41)과 신희진 연구원(37), 김주연 연구원(29) 등 상근 간사들도 이런 위기감을 감추지 않았다. 경제개혁연대는 기업 투명성 제고를 위한 소액주주운동 단체로 2006년 8월 참여연대에서 분리됐다.

이 국장은 “지난 10년 동안 기업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기반은 어느 정도 마련됐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는 소액주주운동의 취지에 역행하는 법원판결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이후 신세계, 삼성생명, 한화 등 대기업들을 상대로 경제개혁연대가 제기한 3건의 주주명부 열람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 의해 모두 기각됐다.

이 국장은 “참여정부 때만 해도 기업들에 주주명부 열람·등사를 요청하면 e메일을 통해 관련 자료의 파일을 보내줄 정도였다”며 “그러나 법원의 기각결정이 잇따르면서 자료제공을 거부하는 기업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회장 인선과정에 이 대통령 측근들이 개입한 의혹과 관련해 이사회 의사록 열람·등사요청을 거부한 포스코가 그렇고, 삼성카드도 뚜렷한 이유없이 자료 제공을 미루고 있다. 이런 분위기 탓에 현대자동차, 신세계, 제일모직 등을 상대로 제기한 주주대표 소송도 승소를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신 연구원은 “사법부의 보수화도 그렇지만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금산분리 완화 등 이명박 정부의 대기업 프렌들리 정책으로 기업 투명성에 ‘사각지대’가 생기고 있는 게 큰 문제”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도 “금융분야에서도 사후 규율을 강화한다며 사전 규제를 잇달아 풀고 있는데 금융감독당국이 그럴 만한 역량과 의지를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소액주주운동은 97년 3월 한보그룹 부도 사태 당시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 주주총회에서 처음 시작됐다. 당시 참여연대는 한보그룹에 대한 제일은행의 과잉대출이 은행 부실을 초래했다며 당시 은행감독원의 감독책임을 제기했다. 재벌그룹의 불투명한 경영이 외환위기의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소액주주운동이 활성화됐다. 기업공시 제도가 정비됐고,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 부당내부거래 조사활동이 활발해진 것은 소액주주운동이 거둔 성과로 꼽힌다.

이 국장은 “법원이 소액주주운동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재단하려는 시각을 거두지 않으면 소액주주 운동은 설자리를 잃게 된다”며 “국내 경제와 기업의 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게 하는 노력조차 수용되지 않는 분위기가 안타깝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