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토건’ 밀어붙이기… 일본 민주당 자기배반

서의동 2012. 4. 10. 17:20

ㆍ소비세 증세·댐 등 대형공사 잇따라… 공약 뒤집기

일본 민주당 정부가 서민층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소비세 증세법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한편 사업 타당성이 의문시되는 도로·철도·댐 등 대형 공공사업을 속속 착공하고 있다. ‘콘크리트에서 사람으로’라는 슬로건으로 집권한 민주당 정권이 ‘토건(土建)정권’으로 급속히 퇴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지난 6일 사업비 1조1000억엔(약 15조원)이 드는 신메이신(新名神) 고속도로(나고야~고베) 미착공 구간 2곳과 고속도로 6개 구간의 4차선 사업화 공사 재개를 공식 발표했다. 마에다 다케시(前田武志) 국토교통상은 “대지진의 교훈을 감안해 도로의 다중화가 필요할 경우 건설해나갈 방침”이라며 3·11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재난에 대비한 도로망 확충을 명분으로 내걸었다. 앞서 국토교통성의 자문기관인 ‘고속도로 검토 전문가회의’는 지난해 말 “향후 재해에 대비하기 위해 고속도로 네트워크를 조기에 완성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전문가회의는 국토교통성이 선정한 전문가가 비공개로 진행한 것이어서 제대로 된 의견수렴 없이 국토교통성의 의중만을 반영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은 2009년 집권 이후 국토교통성의 건설관련 자문 회의를 폐지하고 건설사업 타당성 여부를 투명성 있게 판단하는 조직을 만들겠다고 공언했으나 2년이 넘도록 만들지 않고 방치했다. 더구나 이번 도로 신규건설 결정은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내각이 제출한 소비세 증세법안의 국회 논의가 본격화되기 직전에 슬그머니 끼워 넣는 식으로 진행된 것이어서 눈총을 사고 있다. 

앞서 일본 정부와 민주당은 지난해 12월 일본 고속철도인 신칸센 홋카이도(北海道), 호쿠리쿠(北陸), 규슈(九州) 지역 3개 구간 착공을 허가하는 한편 도쿄 외곽순환도로 건설도 재개하기로 했다. 특히 일본판 ‘4대강 사업’으로 불리며 사업타당성 논란을 빚어왔던 군마(群馬)현 얀바(八ツ場)댐에 대해서도 지난해 말 공사재개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얀바댐은 1952년 건설계획이 확정된 초대형 다목적댐이지만 예산확보 지연과 찬반 논란 등으로 59년째 완공되지 못했다.

민주당은 2009년 총선에서 ‘콘크리트에서 사람으로’라는 슬로건 아래 불요불급한 대형 공공사업을 삭감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수십년간 지속된 개발 지상주의를 폐기하고 불요불급한 사업에 쓸 돈을 사람에게 돌리고 생활중심 정책을 펼치겠다는 주장이 여론의 지지를 받으며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정권을 잡은 지 불과 3년도 채 안돼 자민당 정권의 구태정치를 닮아가고 있다. 특히 재정건전성 회복과 사회보장 재원확보를 위해 소비세 증세가 필요하다며 목소리를 높여온 노다 내각하에서 이런 대형 토목사업들이 부활하자 비판의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 국민 부담이 늘어나는 소비세 증세보다 국회의원 정원 삭감과 불요불급한 재정지출 삭감 등이 선행돼야 한다는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민주당 간사장 등의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이 지난달 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소비세 증세 찬성이 37%인 반면 반대는 60%에 달했다. 아사히신문은 최근 사설에서 소비세 증세를 거론하면서 “가뜩이나 증세에 의문과 반대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도로 신규건설은) 국민의 반발을 초래할 뿐”이라며 “공사 재개 방침을 철회하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