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거 본거

일본총리가 매년바뀌는 이유

서의동 2012. 4. 28. 17:40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는 정치인이 되기로 결심한 1986년부터 재무상으로 입각한 2010년 6월까지 집 근처 전철역 앞에서 25년간 매일 아침 마이크를 잡고 가두연설을 했다. 그가 총리가 되자 ‘역전 앞 학원은 노바, 역전 앞 연설은 노다’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일본 최대의 영어회화 학원 ‘노바’가 전철역 부근마다 있는 걸 빗댄 것이다. 노다 총리는 대학 졸업 후 정치인 양성기관인 마쓰시타(松下)정경숙을 거친 뒤 고향인 지바(千葉)현의 현의회 의원으로 정치생활을 시작해 국회의원이 됐다. 노다는 다른 분야의 경험없이 정치에 입문해 총리에 오른 첫 정치인이다. 


현 민주당 정권에는 노다 총리와 엇비슷한 경로를 통해 정치인이 된 이들이 많다.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외상도 대학 졸업→마쓰시타정경숙→현의회 의원→국회의원 코스를 밟았고,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민주당 정조회장도 마찬가지다. 대학을 나온 뒤 곧바로 정치 ‘프로’의 코스만을 밟아온 이들이 일본 정치권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의 출신 직업만 봐도 지방의회의원과 정치인의 비서, 정당직원의 비율이 압도적이다. 할아버지, 아버지의 뒤를 잇는 2세, 3세 정치인들이 많은 영향도 있다. 정치 입문 전에 다양한 경험과 실력을 쌓은 이들은 그만큼 적을 수밖에 없다. 출신 구성이 다양한 여타 국가들과 대조적이다. 

재무성 재무관(차관급)을 지낸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아오야마가쿠인(靑山學院)대학 교수가 펴낸 <일본 정치는 왜 이렇게까지 타락했나>(아사히신문출판)는 이처럼 정치인의 인재풀이 협량해진 것이 일본 정치 침체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2006년 이후 일본 총리가 1년 안팎에서 그만두고, 대신(장관)들은 더 자주 바뀌는 불안정한 구조에서 민주당이 내건 ‘관료주도에서 정치주도’는 실현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이런 정치 불안정은 정치인의 자질이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분석한다. 기업이나 관청 등에서 경험과 관록을 쌓은 뒤 정치에 입문하는 대신, 젊었을 때부터 정치가를 지망해 선거에 불필요한 힘을 집중시키거나 ‘정치기술’을 갈고 닦아 국회의원에 오르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정치역량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이 책의 부제가 ‘마쓰시타정경숙의 대죄’인 데서 드러나듯 저자는 프로정치인 양성기관이 정치인재의 풀을 좁히는 폐해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대기업인 파나소닉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가 1979년 설립한 마쓰시타정경숙에서 배출된 국회의원은 38명, 자치단체장 11명, 지방의원은 29명. 매년 7~8명의 소수인력을 뽑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실적을 거둔 셈이다. 하지만 저자는 마쓰시타를 경유하는 속성 정치코스가 혜안과 지도력을 갖춘 지도자를 길러냈다기보다는 사회와 동떨어진 ‘정치인들만의 세상’을 구축해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더 떨어뜨리고 있지 않으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저자의 주장은 논쟁 소지가 다분하다. 당장 정치하는 데 관료나 기업경험이 필수적이냐는 의문이 제기될 법하다. 일본 정치의 불안정은 경제의 만성적인 불황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정치인의 자질 탓만 할 수도 없다는 반론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일본 총리는 왜 1년마다 바뀌는지 궁금하다면 일독할 가치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