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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본 편의점은 강한가?

서의동 2012. 2. 18. 17:46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편의점에 들르게 된다. 매일 아침 출근길엔 가벼운 아침거리와 음료수를 사기도 하고, 현금인출기에서 현금을 찾는다. 전기요금이나 의료보험료도 편의점에 내면 되고, 야구장이나 미술관 티켓을 사기도 한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산 물건을 사무실과 가까운 편의점에서 찾을 수도 있다. 일본인들에게 편의점은 물건만 파는 곳이 아니라 금융·우편·문화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사회 인프라’이다. 

일본의 편의점 실적은 장기불황에도 아랑곳없이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일본 프랜차이즈체인협회에 따르면 편의점 업계는 1988년 이후 매년 전년을 상회하는 매출실적을 기록했고, 2008년에는 백화점 업계 전체의 매출액을 앞질렀다. 최근 일본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 상위에 올라 있는 <왜 편의점만 강한가(コンビニだけが, なぜ强い?)>(아사히신문 출판)는 일본 편의점의 성장비결을 분석한 책이다.



저자인 요시오카 히데코(吉岡秀子)는 지난해 발생한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편의점이 강한 이유를 변화대응력, 상품력, 효율성, 오락성, 공공성 등 5가지로 나눠 분석했다. 변화대응력의 예를 보자. 일본에서 남녀고용균등법이 시행된 이듬해인 1987년 세븐일레븐은 전기·가스요금의 납부대행 서비스를 실시했다. 법 시행으로 여성취업이 늘어날 경우 집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는 사회변화를 한발 앞서 읽어낸 것이다. 

이후 로손, 패밀리마트 등 여타 경쟁업체들도 공공요금 납부 서비스를 도입했다. 일상적으로 고객들이 많이 들르는 편의점의 특성을 이용해 음료 등의 신상품을 편의점이 가장 먼저 판매하는 ‘편의점 선행판매’ 전략은 편의점의 상품력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저자는 또 일본의 편의점들이 ‘고밀도 다점포’ 전략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집에서 전철역까지 6분 걸리는 아침 출근길에 한 업체 편의점이 7곳이나 있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편의점을 집중배치할 경우 인지도가 높아지고, 고객이 점포를 찾는 빈도가 높아질 뿐 아니라 물류효율성도 향상되는 등 다양한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한곳에 모여 있을 경우 경쟁으로 매출이 분산될 것이라는 선입견을 뒤엎는 발상이다.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자 편의점들은 전국의 점포망을 활용해 재해지역에 상품공급을 강화하고, 교통망이 두절돼 귀가가 어려운 이들에게 화장실과 온수를 제공하는 등 지역사회의 응급시설 역할까지 톡톡하게 해냈다. 최근 들어 각 자치단체가 편의점들과 귀가곤란자 지원협정을 체결하는 등 사회 인프라로서의 편의점의 위상이 탄탄해지고 있다. 

일본의 편의점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최근 편의점엔 독신가구를 겨냥해 자른 야채, 채소, 냉동식품이 진열돼 있고, 속옷도 판다. 어떤 업체는 50~65세 연령층을 타깃으로 하는 점포를 도쿄 시내에 개설하기도 했다. 편의점이 젊은이들만의 전용공간이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3대 편의점 체인인 세븐일레븐 재팬, 로손, 패밀리마트의 최고경영자(CEO)들과 인터뷰했다. 내용도 충실하지만 세밀한 분야를 철저하게 파고든 저자의 노력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