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리즘’이라는 용어는 어딘지 모르게 불편함을 주는 낱말이다. 지난 세기 발발한 2차례의 세계대전을 비롯해 수없는 전쟁에 내셔널리즘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대공황을 계기로 급속한 군국주의로 치달으며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으로서는 더욱 껄끄러운 용어다.
이런 일본 사회에서 ‘경제 내셔널리즘’이 필요하다는 다소 도발적인 주제의 책이 출간됐다. <국력이란 무엇인가-경제 내셔널리즘의 이론과 정책>(고단샤)는 경제산업성 관료출신인 나카노 다케시(中野剛志) 교토대 교수가 펴냈다.
그는 일본이 협상 참가 방침을 밝힌 환태평양경제협정(TPP)에 대한 대표적인 반대론자이기도 하다. 그가 지난해 출간한 <TPP망국론>은 일본 서점들의 베스트셀러 상위랭킹에 올라 있다.
‘경제 내셔널리즘’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런 것이다. 지금까지 경제의 글로벌화는 불가피한 역사의 흐름이며 국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구조개혁을 통해 적응하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화를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가 세계의 공통과제가 떠올랐다. 특히 동일본대지진을 겪은 일본은 복구·부흥을 위해 ‘국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 국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도록 하는 정치경제사상이 ‘경제 내셔널리즘’이라는 것이다.
내셔널리즘이 범한 역사적 과오 때문에 ‘경제 내셔널리즘’은 많은 오해를 초래했고, 실제로 폭주할 위험성도 있다는 점을 저자는 인정한다. 하지만 국력이 방출하는 에너지가 위기극복과 평화적인 질서유지를 위해 이용될 가능성까지 간과해선 안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사실 ‘경제 내셔널리즘’은 1930년대 대공황 당시 등장한 케인즈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케인즈주의도 국가의 힘을 발현해 공황으로부터 탈출하자는 취지의 정책이념이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화된 경제를 재차 국민국가의 영역속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에서도 내셔널리즘이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경제 내셔널리즘의 틀에서 보면 유럽연합(EU)의 위기가 제대로 수습되지 않고 장기화하는 이유가 쉽게 보인다. EU가맹국들은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의해 자율적인 국민경제의 운영이 엄격히 제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EU 자체가 국민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위기에 대처해 ‘국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일본은 90년대 거품경제가 붕괴된 뒤 디플레이션에 빠졌지만 일본 정부는 글로벌화에 적응하기 위한 구조개혁을 진행하며 디플레를 심화시켰다. 저자는 일본 경제가 살아남기 위해 대규모 공공지출로 수요를 만들어 디플레이션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게 필요하다고 보지만 일본 정부는 반대의 길을 나아가고 있다.
저자는 일본 사회에서 신화화된 ‘경제의 글로벌화’에 대한 시각교정과 아울러 ‘내셔널리즘’의 복권을 시도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각국의 움직임을 넓게 보면 ‘경제 내셔널리즘’으로 나아가고 있는 데 일본만 ‘글로벌화’에 집착하는 상황에 대한 저자의 초조함도 읽혀진다.
하지만 ‘전과’가 있는 일본이 내셔널리즘이라는 위험한 물건을 평화적으로만 다룰지 자신하기 어렵다. 그런 탓인지 저자의 논리 전개에는 아슬아슬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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