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월 수교 40년을 맞는 중·일관계가 중국 측 고위인사들의 일본 방문이 줄지어 취소되면서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후야오방(胡耀邦)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 아들인 후더핑(胡德平)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 상무위원이 28일 예정된 일본 방문을 취소했다고 중화권 매체들이 일본 교도통신을 인용해 27일 보도했다.
후더핑은 양국 우호활동을 위해 일본을 1주일간 방문할 계획이었다. 후야오방 전 총서기가 1980년대 일본 지도층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양국 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그의 아들의 일본 방문은 국교 정상화 40주년에 걸맞은 이벤트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일본 도쿄에서 중국이 반(反)중 조직으로 규정한 세계위구르회의가 열리자 후 위원의 방문을 취소한 것이다.
앞서 지난 21일에는 중국 군부 실력자인 궈보슝(郭伯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의 일본 방문 취소 소식이 전해졌다. 궈 부주석은 당초 4월 중순에 일본을 방문하려 했다가 북한의 로켓 발사 시기와 겹쳐 한 차례 미룬 뒤 결국 취소했다. 그의 방일 취소도 세계위구르대회와 직접적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밖에 지난 2월 가와무라 다카시(河村隆之) 일본 나고야 시장의 난징대학살 부정 발언을 시작으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지사의 센카쿠 열도(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 매입 추진 계획에 이르기까지 양국 간에는 악재가 겹치고 있다. 지난달에는 차기 총리로 유력한 리커창(李克强) 상무부총리가 일본행을 백지화했다.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중·일관계를 악화시키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9월 집권한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국의 부상은 일본에 위협이 아니라 기회”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이는 수사일 뿐 노다 내각의 외교는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협정(TPP) 참가 협상, 주일미군 재편 등 미·일관계에만 주력할 뿐 대중외교는 소홀히 한다는 인상을 심어왔다. 노다 총리는 지난 1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의 회담에서 시각장애 인권변호사 천광청(陳光誠) 문제를 염두에 둔 듯 “ ‘중·일 인권대화’ 협의체를 활용해 (인권문제에) 협력하자”며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하기도 했다.
노다 내각의 대중 태도 배경에는 집권 반년 만에 지지율이 20%대로 곤두박질치며 구심력이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중관계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경우 정권기반이 흔들릴지 모른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대중관계에 대한 장기적 비전이 확고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내 보수세력이 쳐둔 외교 가이드라인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포퓰리즘적 태도’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중국도 올가을 10년 만의 지도부 교체를 앞두고 있어 역사적 구원이 깊은 일본에 강경대응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베이징 외교소식통은 “보수적인 일본 국민들의 표를 얻기 위해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려는 일본 정치인들의 극우성 발언을 중국이 우려하는 것 같다”면서 “양국은 올해 수교 40주년을 맞아 분위기를 띄워야 하지만 현재의 악화된 관계가 단기간에 개선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리커창 부총리가 지난 25일 베이징을 방문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총리를 만나 세계위구르대회와 영토분쟁을 바라보는 중국의 입장을 전달해 주목된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상대적으로 중국 지도부와 긴밀한 접촉을 유지해온 민주당 출신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겠다고 밝히는 등 과거사 문제에서 진일보한 시각을 갖고 있다. 양국 간 관계 복원의 필요성에 대한 공통 인식이 형성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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